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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랭드 플랑시 문서철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콜랭드 플랑시 문서철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
  • 소명출판
  • |
  • 2017-06-15 출간
  • |
  • 318페이지
  • |
  • 160 X 233 X 29 mm /718g
  • |
  • ISBN 979115905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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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동양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 평전과 서한자료집

‘한국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의 초상

전 세계 동양학자들이 선구자로 받드는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1865~1935)은 한국에서도 『직지심체요절』 을 유럽에 처음 알린 『한국서지』 의 저자로, 또 한국도서의 존재를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자 한국학을 개척한 선구자로 기억되고 있다.

『콜랭 드 플랑시 문서철』 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에서는 동양학의 선구자이자 한국학의 선구자, 모리스 쿠랑의 평전과 모리스 쿠랑의 서한을 수록하여 외교관, 한국학 전문가, 유럽 동양학자였던 그의 세 가지 초상을 그려내고 있다.

먼저 제 1부에서는 모리스 쿠랑을 ‘한국학의 선구자’로 인식하고 그의 한국학 저술을 살피게 된 가장 큰 계기로 쿠랑을 잇는 또 다른 재외의 한국학자, 다니엘 부셰 교수의 ‘모리스 쿠랑 평전’을 수록하고 있다. 다니엘 부셰 교수는 그가 주목하기 전까지 한국과 프랑스 양측에 묻혀 있던 모리스 쿠랑이란 존재를 발굴했으며 모리스 쿠랑의 초상을 ‘한국학의 선구자’로 재조명하고 그의 한국학 논저를 집성하여 학계에 널리 알린 가장 큰 공헌자이다.

다니엘 부셰 교수의 ‘모리스 쿠랑 평전’은 쿠랑 관련 신 자료의 발굴과 쿠랑의 한국학 저술 전반에 대한 면밀한 엄선 및 실증적 고찰을 통해 작성된 중요한 학술적인 연구 성과이며, 30여년 지난 오늘날의 눈으로 보아도 여전히 유효한 훌륭한 수작이다. 즉, 부셰 교수는 쿠랑이 남긴 『한국서지』 를 비롯한 그의 한국학 전반이 지닌 공과를 엄정한 시선에서 평가했다. 또한 모리스 쿠랑의 평전에서는 쿠랑이 출판한 주요 중국?일본 연구와 그가 리옹에서 35년간 담당했던 강의도 취급하고 있다. 더욱이 참고로 제시한 자료는 불중 ? 불일 관계에 관해 현재까지 거의 연구되지 않았던 몇 가지 외교문제를 명확히 해주고 있다. 1919년 쿠랑의 도쿄 파견이 그 한 예이며, 특히 리옹중법대학[里昴中法大學, Institut franco-chinois de Lyon]의 창립과 운영에 그가 담당한 역할은 중국 사학자들의 관심을 끌 만한 문제이다. 이처럼 다니엘 부셰 교수의 ‘모리스 쿠랑 평전’은 오늘날 쿠랑의 한국학 저술을 검토할 때 반드시 참고해야 될 큰 영향력과 비중을 지닌 선행연구이다.

다니엘 부셰가 남긴 평전은 또한 한 편의 학술적 논문으로 전달되지 않는 매력적인 힘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한국서지』 를 비롯한 그의 한국학 저술로는 잘 포착되지 않는 다양한 그의 초상들과 삶의 노정이 그려져 살아 있는 듯 생생하게 묘사된 모리스 쿠랑의 초상이다.

다니엘 부셰의 모리스 쿠랑의 평전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모리스 쿠랑의 한국문명에 대한 사랑과 그로 인해 결코 녹녹하지 않았던 한국학자로서의 삶을 대면하게 되며, 그를 외국인이 아니라 우리가 상속하고 갚아야 할 부채를 전해준 한 사람의 한국학자로 재인식하게 된다.

프랑스 외무부 문서고에 잠들어 있던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이렇듯 부셰 교수가 쿠랑의 초상을 복원할 수 있었던 큰 원동력은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검토되지 않은 쿠랑이 남겨놓은 유물 때문이었다. 이 유물은 부셰 교수에게 큰 영감을 제공해준 자료로, 쿠랑이 주한프랑스공사 플랑시에게 보낸 서한문이다. 이 자료는 부셰 교수의 발굴 이후에도 프랑스파리 외무부 문서고에 여전히 잠들어 있었다.

2013년 이 자료를 입수한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 점필재연구소는 프랑스외무부 문서고에 소장된 모리스 쿠랑이 콜랭 드 플랑시에게 보낸 육필 서한 33종을 콜레주 드 프랑스 한국학연구소와 공동작업을 통해, 재구[입력 및 전자화] 및 번역작업을 마무리하여 그 결과물을 이 책 『『콜랭 드 플랑시 문서절』 에 새겨진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에 담았다.

쿠랑의 서한 속에는 1905년 을사늑약 즉, 대한제국 멸망 이전까지 한국학 연구와 논저집필을 간절히 염원했던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이 보존되어 있다. 이는 『한국서지』 만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쿠랑의 초상이며, 더불어 『한국서지』 를 통해 (재)발견해야 할 쿠랑의 초상 나아가 한국고전의 가능성이기도 하다. 쿠랑의 서한문에 담긴 그의 초상은 한국학이 제도적이며 학술적으로 부재했던 시대의 ‘한국학자의 초상’이며 동시에 우리가 한국의 근대학술사 안에 끌어안아야 할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인 것이다.

목차

발간사 _ 김인택
발간사 _ 정출헌
발간사 _ 알랭 들리센(Alain Delissen)

제1부 모리스 쿠랑 평전?다니엘 부셰Daniel Bouchez | 전수연 옮김
잊혀진 동양학자, 모리스 쿠랑
한중일 동양순회와 『한국서지』
1) 쿠랑과 파리 동양어학교
2) 한국주재 프랑스공사, 콜랭 드 플랑시
3) 한국인 조력자들과 뮈텔 주교
4) 『한국서지』 의 공동저자
5) 『한국서지』 의 학술사적 의의
6) 쿠랑의 미출간 명저, 『한국관직역대총람』 (1882)
7) 한국복귀의 소망과 『한국서지』 의 출판
전문적 학자의 길과 한국학 저술
1) 전문적 학문연구의 길
2) 파리국립도서관의 중국서목 작업
3) 『한국서지』 의 출판과 그 반향
4) 한국학을 향한 소망과 한국학 저술들
5) 파리 동양어학교 취직의 좌절
리옹대학 중국어과 교수임용과 동양학 저술
1) 리옹 ‘중국어 강좌’ 개설의 움직임
2) 리옹 지역 정착과 리옹대학의 중국학 강좌
3) 쿠랑의 학문적 역량과 그의 동양학 저술
4) 한국학 논저들 그리고 유럽과 극동의 관계
5) 국가박사학위 논문
6) 리옹대학 교수임용과 불운의 사고
리옹대학 교수로서의 족적과 리옹중법대학[里昴中法大學]
1) 일본 내 프랑스대학 건립 시도, 마지막 한국방문, 가정 문제
2) 리옹중법대학 건립과 리스청[李石曾], 차이위안페이[蔡元培]
3) 리옹중법대학 건립의 재정문제와 리스청의 제안
4) 쿠랑의 반대안과 중국-프랑스의 협상과정
5) 중국인 근로학생 입학거부 사건
6) 리옹중법대학의 운영과 쿠랑의 역할
유럽 최초의 ‘한국사 강의’와 이루지 못한 동양학자의 꿈

제2부 모리스 쿠랑 서한문
|해제| 모리스 쿠랑의 서한과 한국학자의 세 가지 초상
1. 프랑스 외무부 문서고에 잠들어 있던 젊은 한국학자의 영혼
2. 한국고전의 새로운 문화생태와 젊은 ‘외교관’의 초상?한국, 서울에서 보낸 편지(1891.7.3~1892.2.25)
1) 자료개괄
2) 주한프랑스공사관과 젊은 외교관의 초상
3) 한국 도서의 수집과 조사
4) 『한국서지』 의 집필현황 및 출간계획
3. 『한국서지』 의 출간과 ‘한국학 전문가’의 탄생?중국, 일본, 프랑스에서 보낸 편지(1892.6.1~1899.12.18)
1) 자료개괄
2) 『한국서지』 의 출간과정과 재외의 동양학 학술네트워크
3) 한국문명의 가능성과 한국의 외교적 현실
4) 『한국서지』 의 완간과 한국학 연구를 향한 염원
4. 미완의 한국학 기획과 ‘유럽 동양학자’의 초상?프랑스 리옹에서 보낸 편지(1902.7.14~1921.4.24)
1) 자료개괄
2) 유럽 동양학자의 초상과 한국
3) 동양을 보는 수평적 시선
4) 미완의 한국학 저술 기획서와 한국의 고전 세계
5. 쿠랑의 유물에 새겨진 근대 초기 한국학자의 세 가지 초상
|자료|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에게 보낸 모리스 쿠랑의 서한문
1. 한국, 서울에서(1891.7.3~1892.2.25)
1891년 7월 3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7월 16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8월 14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8월 27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9월 9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10월 10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11월 6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12월 17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1년 12월 24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2년 1월 21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2년 2월 25일, 서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2. 중국, 일본 그리고 프랑스에서(1892.6.1~1899.12.19)
1892년 6월 1일, 베이징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3년 9월 14일, 라 크루아(La Croix)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4년 3월 23일, 도쿄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4년 7월 10일, 도쿄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5년 8월 2일, 톈진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7년 2월 5일, 데보르드 발모르 38번가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7년 4월 9일, 파리 데보르드 발모르 38번가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7년 9월 20일, 라 크루아-생-알방 성(사부아)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8년 6월 26일, 샹티이 방면(우아즈), 비뇌이에서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899년 12월 18일, 샹티이 방면(우아즈), 비뇌이에서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3. 프랑스, 리옹에서(1902.7.14~1921.4.24)
1902년 7월 14일, 에퀼리(론)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903년 3월 1일, 에퀼리(론)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903년 7월 17일, 에퀼리(론)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909년 2월 4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909년 4월 20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 콜랭 드 플랑시 공사님
1909년 12월 28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론)
1909년 12월 29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론) 콜랭 드 플랑시 전권대사님
1918년 4월 27일, 에퀼리 친애하는 벗, 전권대사님께
1919년 1월 7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론) 친애하는 벗, 전권대사님
1920년 2월 4일, 에퀼리, 그랑보 길 전권대사님
1921년 1월 5일, 리옹, 문과대학
1921년 4월 24일, 에퀼리, 샹슬리에 3번 길(론) 친애하는 벗, 전권대사님
4. 계획표

참고문헌
1. 자료
2. 논저
3. 초출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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