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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전쟁

스파이전쟁

  • Robert David Booth
  • |
  • 박영사
  • |
  • 2017-01-20 출간
  • |
  • 준비중
  • |
  • ISBN 9791130304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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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신사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지 않는다.
-헨리 L. 스팀슨
미 국무부 장관, 1929년

방첩의 과거와 현재
1914년 8월,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우드로우 윌슨은 미합중국이 중립을 지킬 것을 공식적으로 맹세했고, 유럽 전역에서는 세계대전을 알리는 일제공격이 시작됐다. 독일의 비밀요원들은 미국의 산업시설을 파괴하고, 군수품 제조공장의 노조 파업을 선동하며, 언론매체에 평화주의적 프로파간다를 퍼트리기 위해 이미 미국으로 건너간 상태였다. 미국 인구 3분의 1은 온전히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외국계 혈통으로 제5열 군대를 위해 만들어진 기성품처럼 최적화된 상태였다. 적어도 독일의 최고 사령부는 그렇게 희망했다. 비밀리에 워싱턴 DC 외곽에 생화학 전쟁 연구소를 운영한다는 대담한 계획을 위해 독일 요원들이 소집되었다. 이 연구소의 목적은 프랑스 북부의 교전지역을 향해 이동하는 미국산 말과 당나귀를 탄저균에 감염시키기 위한 감염전파체계를 구축하기 위함이었다. 그 외의 보다 덜 대담한 역정보 작전, 방해공작 음모, 간첩행위 사례들은 등은 보다 성공적이었다.

독일제국의 비밀요원들은 미국 본토에서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무사히 대서양을 건너게 해줄 위조가 쉬운 ‘진본 미국 여권’을 필요로 했다. 진본처럼 보이는 여행문서는 이들이 영국의 보안기관, 그리고 이제 막 활동을 시작한 미국의 방첩기관의 탐지를 피하기 위한 절대적인 필수품이었다. 당시 미합중국과 미군에는 조직적이고 응집력 있는 방첩체계가 없었다. 미국연방수사국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이하FBI은 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다른 연방기관들 마저도 스파이 행위와 관련된 여권위조 상황에 대처하기엔 미처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였다. 더욱이 당시 미국의 연방법에는 자국 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스파이들을 체포하고 죄를 물을 수 있는 조항이 마련되어있지 않았다. 이러한 조항은 이후 1917년 제정된 간첩법the Espionage Act of 1917에 의해 형태가 갖추어졌다.

1916년까지는 독일 스파이들이 자신들이 사용할 미국 여권을 구할 목적으로, 미국 국내와 독일내의 부주의한 미국시민들을 대상으로 삼은 다수의 계략에 독일 황제 휘하의 총참모부 정치 분과가 적극 개입했음이 분명했다. 이와 같은 새로운 위협에 맞서 싸우기 위해 미 국무장관인 로버트 랜싱은 비밀정보국을 설치하고 허위로 미국시민권을 취득하여 미국 내에 체류하고 있는 사람들을 파악하고 조사했다.
조셉 “빌” 나이이하 나이요원는 미 국무부의 첫 특수요원 수장으로 임명되어, 국무장관을 보좌하여 국무부 내 모든 안보 및 기밀관련 사항을 다루는 임무를 맡았다. 소수의 비밀요원과 장관들과 함께 나이 요원은 여권 발급시 사진을 포함, 좀 더 구체적으로 미국시민임을 증빙하도록 하는 보호 장치를 도입하는 등 변화를 추진하였다. 랜싱 국무장관은 또한 나이 요원이 주미 독일대사의 전화선을 도청하여 매일 통화기록을 보고할 수 있도록 승인하였다. 비밀정보부 요원들이 독일 외교관과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들의 행동을 감시하기 위해 미국 비밀경호국 및 미국 우편검열국 등과 긴밀히 협력해야 함에 따라 각각 워싱턴 DC와 뉴욕, 이렇게 두 곳에 현장사무소가 개소되었다.

1920년대 중반 들어 비밀정보부는-오늘날 “세력”으로 통칭되는-독일의 여권위조 사건들을 다루던 전문수사능력을 활용하여, 당시 신설 된 FBI와 함께 미국에 불법 입국하여 스파이행위를 시도하려던 러시아의 NKVD 요원들을 적발, 송환하게 된다. 당시 미국정부는 볼셰비키의 체제전복주의자들에 대해 크게 우려하여 미국의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여권발급을 거부하였다. 미국 정부는 미국 시민이 러시아를 방문하여 혁명훈련을 받고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유효한 여권을 NKVD에 넘겨주고, 이를 러시아 요원들이 여권의 본래 소유자 신분으로 가장하여 미국에 입국하는데 사용될 것을 우려하였다. 비밀정보부 요원들은 국무부에 취업하려는 지원자들에 대한 신원조사를 맡았고, 미국 비밀경호국과 함께 미국을 방문하는 공식 초청객 및 미국 영토 내에서 열리는 국제 컨퍼런스의 참석 인사들에 대한 경호 임무를 분담했다.

1929년 국무장관인 헨리 L. 스팀슨은 “신사는 다른 사람의 편지를 읽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당시 암호해독을 담당하던 국무부의 암호해독 부서를 해체한다. 세계 제1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1919년 국제연맹이 창설되어, 집단안전보장, 무기감축, 중재를 통한 국제분쟁의 조율 등을 통해 더 이상의 전쟁을 방지할 것을 도모한다.주류 백인들과 정직하기만 한 “신사”들의 모임인 국제연맹은 이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국제연맹은 히틀러나 무솔리니와 같이 정규 구성원임에도 규정에 따를 것을 거부하는 인물의 출현을 예상치 못했다. 결국 몇몇 수상한 “신사”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악행을 저지르기 시작하며 세계 제2차 대전을 위한 준비수순을 밟게 되고, 실패로 돌아간 국제연맹은 1933년 그 막을 내리게 된다.

아마도 스팀슨 미 국무장관은 신사가 그토록 파렴치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차마 믿지 못한 것뿐일 수도 있다. 어쨌든 미 국무부 암호해독 부서의 업무는 미 육군 신호정보부에 의해 승계되었다. 암호해독 부서가 결코 비밀정보부의 일부는 아니었으나 암호해독부서의 소멸은 국무부 중요 정보자산을 제거해버린 결과를 낳았다.

세계 제2차 대전의 종식과 함께 비밀정보부는 안보실the Office of Security, SY로 명칭을 변경하게 된다. 안보실은 소수의 요원들에게 유럽 대사관들의 안보작전을 담당하도록 배정하고, 국내담당 직원들은 계속해서 여권과 비자위조에 대한 수사 및 외국사절의 방문 시 경호와 고용 전 신원조사 등을 담당하도록 하게했다.

안보실SY은 스파이문제를 우려하여 방첩팀을 구성해 NKVD와 같은 외국의 스파이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다. 앨거 히스, 노엘 필드, 로렌스 더간과 같은 국무부 직원들은 1940년대 말 소련을 위한 스파이 혐의로 조사받았다. 1960년에서 1975년까지 SY는 해외 공관에 보안 요원들을 파견하여 그 활동영역을 확장했고, 해외 국가원수들이 미국을 방문할 때 경호임무를 맡는 것은 물론, 방첩조사 또한 활발히 수행했다.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 사이 3명의 국무부 직원들이 스파이혐의로 조사받았다. 스티븐 라라스는 그리스를 위한 스파이 혐의로, 제네바 존스는 아프리카의 저널리스트에게 기밀정보를 유출한 혐의로 조사받았다. 비엔나 주재 미국 대사관의 차관이었던 펠릭스 블록은 러시아의 KGBKomitet Gosudarstvennoy Bezopasnosti-국가안보위원회가 암호화된 전화회선을 이용해 모든 스파이행위를 중지하라는 경고를 한 덕분에 기소를 피할 수 있었다. 블록을 보호해준 인물은 다름 아닌 로버트 한센이었다. FBI의 배신자로 악명 높은 그는 정보기관이 블록을 주시하고 있음을 SVRSluzhba Vneshnoy Razvedki-러시아 해외정보국에 알렸다.
국무부 안보실SY은 1985년에 외교안보국the Bureau of Diplomatic Security으로 명칭을 바꿨다. 외교안보국의 특수요원들은 외교안보부the Diplomatic Security Service 소속기관이었지만 안보국과 안보부의 명칭이 함께 사용되었다. Diplomatic Security라는 명칭은 보통 DS로 줄여서 사용되며, 안보국과 안보부 관련사항이나 기관, 소속 직원 모두에게 사용된다.

DS에는 현재 800명이 넘는 특수요원과,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인원의 공무원과 계약 공무원들이 근무하고 있으며, 이들은 지금은 전쟁으로 폐허가 된 바그다드와 카불을 포함, 해외 285곳의 외교공관에 파견된 국무부 직원들을 대상으로 물리적 인적 보호 작전을 담당하고 있다. 물론, 미국 전역의 여권사무소와, 외교사무소, 그리고 25곳의 지역사무소 등 국내업무도 담당하고 있다.

오늘날, DS의 방첩부서DS Counterintelligence Division, DS/CI는 국무부 소속 직원과 시설, 그리고 전 세계에서 진행 중인 미국의 외교 전략을 노리는 외국 정보기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이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활발한 방첩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다른 미국정부기관들과 함께 공격적인 방첩임무를 실시하고 대간첩 수사 활동counterespionage investigations을 담당하고 있다. 모든 대간첩 수사 활동은 스파이행위나 혐의에 대한 기소권이 있는 FBI와의 긴밀한 공조를 통해 실시된다. 또한 해외로 나가는 장관급 관료 및 수행직원 등 미국 정부직원을 위한 방첩 및 보안 브리핑을 실시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DS 부서는 테러리스트 조직들과 외국 정보기관들과 연루된 근로자를 이용하여 미 대사관으로 침투하려는 시도를 적발한 매우 성공적인 업적으로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을 지원했다.

DS/CI는 국무부 건물 및 특정 주택에 기술적 침투를 시도하는 타국 정보기관들에 대응하기 위해 보안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이들은 벽에 설치된 간단한 도청장치부터 최첨단 기술을 사용한 도청장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침투장비를 탐지한다. 이를 위해 보안 전문가들이 전 세계에 퍼져있는 국무부 시설내 제한구역과 기타 민감한 구역에 대해 정기적으로 도청장치 점검을 실시하고 있다.DS가 담당하는 여러 가지 임무 중 90년이 넘도록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기밀 외교정보를 DS 요원들이 무단유출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이다.

스파이행위와는 달리 언론사에 정보가 흘러들어가는 것은 꽤 흔한 일로, 국무부 내외의 정책에 대한 반대견해를 홍보하는데 가장 자주 쓰이는 방법이기도 하다. 의도와 합리적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직원들이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은 국무부 직원으로써의 맹세와, 기밀엄수에 관한 동의를 위반하는 행위이다. 무단정보공개가 형사사건으로 다루어지는 일은 극히 드문 경우로, 대부분 규정위반에 따른 행정상의 징계대상이 된다.

국무부 자체는 물론 국내외에서 활동하는 국무부 직원들은 여러 국가의 정보기관들이 노리는 목표물이 되기 쉽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렸음에도 이러한 분위기는 변하지 않았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의 민감한 외교관계를 캐내어 이를 자신들의 안보적 이점으로 사용하려 하는 한 우리의 국가 안보에는 언제나 위험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기술의 첨단화에 따라 정보화 시대가 열리고, 이로 인해 기밀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새로운 방법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어떤 국가의 계획과 의도를 파악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은 여전히 인적자원, 즉 스파이라고 할 수 있다. 스파이들은 비판적 관점과 맥락, 그리고 직감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2010년 여름, 러시아의 “슬리퍼sleeper” 스파이 12명이 러시아로 송환되었다. 이 사건은 아직도 미국에 정보 위협이 존재하고 있음을 미국인들에게 일깨워줬다. 하지만 여기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사실은 이들 12명의 슬리퍼 스파이들과 접촉한 국무부 직원들의 규모였다. 이들과 같은 존재들은 아직도 국무부 주변을 배회하고 있으며, 애석하게도 우리는 종종 이들의 출입을 허락하고 있다.

약간의 허풍이 섞인 진실
1974년 10월 7일, 난 미국 내외의 모든 적들로부터 미국의 헌법을 수호하고 지지할 것을 맹세하는 충성서약을 했던 때만 해도 난 내가 기밀정보의 무단공개를 수사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지는 않았다. 이제 막 국무부 보안부서에 들어온 21살 새내기 특수요원이었던 나는, 외국의 귀빈들을 보호하고 형사사건을 조사하며 외국의 공관에 파견되어 안보담당관Security officer으로 일하게 될 것이라고 꿈꾸고 있었다.
워싱턴 사무소에서 처음 10개월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난, 이후 6년간 베이징, 제네바, 그리고 도쿄의 외교공관에서 안보담당관으로 근무했다. 나에게는 모두 매우 귀중한 경험들이었다. 2차 대전 후 북한을 탈출한 22명의 미군들이 있었는데, 베이징에서 근무하던 당시 난 미국 정부직원으로는 이들 중 한 명을 상대로 디브리핑을 실시했었다. 그는 중국에 정착하여 작은 공장에서 일하며, 중국 국적자와 결혼한 상태였는데, 미국에 있는 모친을 만나러가기 위해 미국 공관에 여권발급을 신청하러 방문했었다.

스위스에서 근무하던 시절 난 미국 공관의 해병대 사무실 금고에 보관되어있던 해병대 자선기금 도난사건의 수사를 맡기도 했고, 일본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러시아의 저널리스트로 위장해 활동하던 SVR의 비밀정보요원이 변절한 사실을 소비에트 인들이 눈치 채기 전에 미국으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은 CIA의 동료를 돕기도 했다. 일반적인 보안업무와 더불어 이러한 경험들은 내가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1980년, 미국으로 돌아간 나는 에드먼드 머스키 장관과 알렉산더 하이그 장관을 경호하는 일을 맡게 되었고, 18개월 동안 전혀 다른 성격의 이 두 사람들이 경호원으로 근무하게 되었다. 지루한 임무는 아니었지만 여유시간이 꽤 주어졌던 때였다. 하지만 평범하던 내 삶에 큰 변화가 찾아왔다.

1982년에서 1986년까지 난 특수조사부Sperical Investigation Branch, SIB에 발령받았다. 여기에서 난 정보유출이나 기밀문서 분실과 스파이로 의심되는 사건들의 수사에 참여했었다. 1985년, 지난 55년간 국무부의 기밀문서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언론에 공개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때로는 외국 대사관이나 비행기, 열차 안, 호텔 등지에서 고의로 분실되기도 하고, 타국의 정보기관에 의해 유출되었다. 계획에 따라 정보가 유출되기도 했지만, 실수로 인한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사건에는 항상 공통분모가 있었으니, 바로 실수를 저지른 국무부 직원이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거짓을 만들어냈다는 점이었다. 국무부에서는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얼버무리는 경우가 종종 목격되었다. 사건에 연루된 국무부 직원들의 이름들은 저 멀리 잊혀 진 채 수사기록 속에 묻혀 지기도 했다. 이렇게 분실된 국무부의 기밀정보들은 책임자의 이름과 함께 사라져갔다.
SIB에서 근무하던 시절, 난 미국의 언론사들이 구미가 당기는 외교계의 뒷이야기-기밀정보가 담긴 특종기사거리-를 얻기 위해 국무부 관료들을 얼마나 끈질기게 쫓아다니는지를 목격했었다. 월스트리트 저널에서 내보낸 기사가 남미의 어떤 국가와의 외교관계에 얼마나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 지켜보기도 했다. 애틀랜틱 신문이 1983년 5월에 내보낸 기사에서 국무부 기밀전송 내용을 문자 그대로 인용한 사건의 수사를 이끈 일이 있었다. 이 이사로 인해 현지의 미국 공관은 연루된 국가의 외교부로부터 힐책받기도 했다. 난 당시 로버트 노박 기자에게 어떤 관료가 이토록 민감한 국무부의 기밀자료를 유출했는지 파악하는 데에 주력했다. 노박 기자는 유출된 기밀자료를 바탕으로 1984년 “Evans and Noval” 기사를 내보냈다.노박 기자는 나중에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차관이 유출한 비밀정보를 바탕으로 작성한 2003년 7월의 기사에서 Valerie Plame이 CIA 요원임을 드러내어 질타를 받기도 했다
1986년에서 1987년까지 난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지역안보담당관으로 근무했었는데, 이때 아이티에서 일하던 미국인 의사, 폴 알렉산더의 살인 사건과, 미 대사관 정책담당관의 부인이 영사부 주차장에서 칼에 찔린 사건, 작멜 근처에서 젊은 평화봉사단 단원이 강간당한 사건, 평화봉사단 단원이 다리를 다친 사건, 거주경비원이 칼에 찔려 사망한 사건, 그리고 대사관 직원들에게 아이티 인들이 살해위협을 했던 사건 3건 등의 수사를 맡았었다. 이와는 별도로 엄청난 양의 여권과 비자위조사건, 직원보안수사와 현지의 불안정한 치안질서로 인한 위협으로부터 대사관과 직원들을 보호하는 임무가 더해졌었다. 여기에, 하이티 해방 기구Haitian Liberation Organization로부터 살해위협을 받은 맥킨리 미국 대사를 120일간 경호하게 된 DS 요원 3명을 관리감독하기도 했었다. 꽤 재미있는 임무였다.

아이티에서의 근무경험과 그 외 해외근무이력, 그리고 프랑스어 능력을 인정받은 난 1997년 2월 다시 포르토프랭스로 돌아가 Jean-Bertrand Aristide 아이티 대통령 경호를 맡게 된 미국 보안요원들을 감독하고, 앞으로 대통령 경호를 맡게 될 아이티 보안요원들의 훈련 또한 담당했다.

1990년, 난 SIB로 돌아가 국장으로 부임했고, 50건의 기밀문서 무단유출 사건의 수사를 감독하고 언론에 정보를 유출하거나 기밀문서를 분실한 국무부 직원들을 직접 심문하기도 했다. 또한 FBI와 긴밀히 협력하여 의도치 않게 또는 고의적으로 외부인에게 기밀정보를 제공한 직원들을 파악했다.

1992년부터 1995년까지 나는 파리주재 미국 대사관에서 안보담당관으로 근무했었는데, SVR의 비밀요원과 관계를 구축할 기회를 가졌고, 프랑스 정보기관으로부터 미국의 보호를 원하는 러시아의 전직 해군장교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또한 과거에 대사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소련의 침투요원인 미국 시민권자 두 명을 적발하기도 했고, 성폭행 피해자였던 미국 시민을 조사하던 프랑스 경찰을 위해 통역으로 돕기도 했으며, 클린턴 대통령이 종전 5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를 방문했을 당시 경호국의 경호활동을 보조하기도 했다.

1996년 말, 난 국무부 외교안보국의 방첩부서인 DS/CI의 부국장으로 임명되었다. 이곳에서 7년간 근무하면서 난 1999년 러시아가 국무부 내에 설치한 도청장치를 발견했던 사건수사에 깊이 관여했었고, 2001년에 로버트 필립 한센이 체포되기 전, 이를 위해 수사를 진행하던 FBI에게 조력을 제공하기도 했었다. DS/CI는 CIA, DOD, FBI, NSA 등과 긴밀한 공조를 통해 타국의 정보기관에 기밀정보를 유출하는 미 정부직원을 적발해냈다. 2002년 1월, 그해 연말로 예정된 퇴직을 준비하던 때였다. DS/CI의 새 국장의 부임이 늦어진다는 소식이 전달되었고, 9개월간의 공백기간 동안 난 국장대행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9월에 접어들면서 난 지난 28년간 다뤄왔던 수많은 형사, 안보사건들의 추억에 잠기게 되었다. DS가 국가의 기밀을 지키기 위해 때로는 성공적으로, 때로는 실패를 경험해야 했던 역사들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남아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아쉽게만 느껴졌다. 특히 퇴직한 정부 관료들이 자서전을 통해 역사적 사건가운데 있었던 자신의, 또는 기관의 공적을 늘어놓을 때 DS의 성과가 크게 간과되거나 축소되는 것을 보았을 때 더욱 아쉬움이 더했고, 그래서 이 책을 집필하기에 이르렀다.
발레리 플레임의 정보유출 전설이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난 국무부에서 은퇴했다. 발레리 플레임의 사건에 대해 논쟁이 오가는 것을 보며 난 이 사건에 대해 내 개인적 의견을 펼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보유출에 관한 전반적인 폭로”라는 글을 써 2003년 10월 22일자 뉴욕타임즈에 기고했다. 몇 가지 아픈 곳을 지적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음에도 운 좋게도 내 지인들에게 너그러운 평가를 얻어냈다.
기고문을 올린 지 일 년이 채 되지 않은 어느 날, 법무부는 국무부 EAP의 수석 부차관보인 도널드 카이저가 타이완의 비밀정보요원 두 명과 함께 FBI에 구속된 사실을 발표했다. 우연스럽게도 카이저와 난 1976년부터 1977년까지 베이징 미국 연락사무소와, 1979년부터 1980년까지 도쿄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함께 근무한 일이 있었고, 그 후 25년간, 자주는 아니었지만 간간히 업무적 교류가 있었던 사이였다. 카이저는 이들 비밀정보요원들과의 관계로 인해 곧 심각한 파문을 겪게 될 것이다. 그리고 2004년, 외교안보국은 나를 DS/CI 고문으로 초빙하여 주 2일씩 근무하는 계약을 맺었고, 나는 DS와 FBI 동료들과 재회하게 되었다. 이후 난 국무부에서 근무하던 쿠바의 비밀요원-미국시민권자로 피델 카스트로를 위한 가장 위협적인 스파이-을 적발하기 위해 수년간 이어진 대간첩 수사에서 중심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책은 국무부의 스파이 사건이나 무단공개사건을 종합적으로 담은 사건모음집이 아니다. 이 책은 지난 35년간 내가 국무부에서 일하면서 쌓은 경험에서 나온 산물이다. 물론 일부 나만의 관점이나 편견들이 이 책속에 담겨 있을 수도 있지만, 모든 사건들을 가능한 한 정확하게 담으려고 최선을 다했다는 점을 밝혀두고 싶다.

간단히 말해서 이 책은, 국무부의 정보누설, 스파이들, 거짓들, 그리고 여기에 함께했던 관료적 권모술수들이 우리의 국가안보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를 내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이다. 당신이 이 책을 즐겁게 읽기를 바란다.

국가는 인류공영이나 국제규범 또는 평화와 인권 등과 같은 어떤 추상적인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국가는 스스로의 생존과 번영, 그리고 그 국가에 속한 구성원들의 안전과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존재한다. 국제사회는 이러한 이기적인 국가와 국가가 충돌하는 전장이다. 1, 2차 세계대전이나 한국전쟁과 같은 전쟁의 모습을 띠지 않더라도 늘 국가와 국가는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충돌하며 경쟁한다. 국제사회는 국가들 간의 계속되는 전쟁터이며 국가들은 이러한 지속적인 전쟁 상황에서 스스로의 생존과 이익을 위해 투쟁한다.

물론 때때로 전쟁과 같은 무력충돌이 발생하면 이러한 국가들 간의 실존적 상황은 적나라하게 대중들 앞에 드러난다. 피와 피가 맞부딪히고 철과 의지가 충돌한다. 국가들은 스스로의 생존과 이익수호를 위해 불굴의 의지로 다른 국가들의 도전에 응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 이러한 국가들 간의 갈등이라는 실존적 상황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는다. 마치 국가들은 우호적이고 협력적이며, 평화적인 존재들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국가들을 둘러싼 평화스러운 화장의 얇은 꺼풀을 벗겨내면 우리는 국가들이 생존과 이익을 위해 치열하게 속고 속이는, 투쟁하는 숨은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여기서 국가를 위해 전장에선 전사는 군복을 입은 병사가 아니라 일상적 복장을 한 스파이가 된다. 서로 속고 속이며 훔치고 막고 염탐하고 체포하는 다른 모습의 전쟁 상황이 연출된다. 이를 우리는 정규전과 대비하여 스파이 전쟁이라 부른다. 마치 물위에 고요히 떠 있기 위해 백조가 바삐 물장구를 치듯 국가의 일상적 평온함은 수면 아래의 스파이로 불리는 또 다른 모습의 전사들의 헌신과 땀과 눈물과 희생의 대가이다.

이 책은 미 국무부 방첩요원의 국가에 대한 헌신과 투쟁의 기록이다. 미국의 일상의 평온함과 영광은 그와 같은 이름 없는 많은 스파이 전사들의 피와 헌신의 대가이다. 미 국민들이 CIA,Central Intelligence Agency NSA,National Security Agency FBI,Federal Bureau of Investigation DSS,Diplomatic Security Service 등과 같은 정보공동체에 보내는 신뢰와 존경은 그러한 노고에 대한 감사이다.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스파이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며, 스파이 전사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역자가 지난 10년 간 테러와 안보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만났던 세계 여러 국가의 스파이 전사들은 대체로 비슷한 이야기들을 갖고 있다. 미국 비밀정보국 전직 요원, 이스라엘 보안기관의 비밀작전 요원, 독일 보안국의 정보분석관, 민간 보안회사인 Kroll Associates의 러시아 지부에서 근무했던 전직 담당자, 역시 국제적 보안회사인 Control Risk의 싱가포르 지부 담당자 등은 스파이 전쟁에 참여한 각자의 그러나 유사한 경험들을 알려주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업무를 자랑스러워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자신들의 헌신에 대한 긍지를 가졌다. 물론 누구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역자가 아는 몇몇 우리나라 정보기관의 요원들도 해외의 요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업무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국가와 국민을 위한 소리 없는 헌신을 명예롭게 여긴다. 우리 국가 내에 잠입한 적대적 스파이 전사들과 치열한 일상의 전투를 수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장을 조금이라도 들여다본다면 우리 국가와 국민이 즐기는 이 평화로움이 얼마나 긴박한 위기와 취약함 위에 서 있는지를 알게 된다. 하지만 국가기밀이라는 전제 때문에 이들의 스토리는 대부분 대중들에게는 알려지지 않고 묻혀진다. 이 책에서 보여주는 미국 요원의 경험적 이야기는 그러한 우리 요원들의 헌신을 간접적으로나마 소개하는 통로가 되길 바란다. 이 책에 나타나는 스파이 전쟁의 스토리와 우리 스파이 전사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스토리는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은 여전히 우리사회에서 스파이 기관과 스파이 전사들에 대해 부정적 선입관과 편견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지금보다는 좀 더 자신들이 정당하게 받아야할 존경과 감사를 받아야 한다. 물론 과거의 유산과 현재의 이따금 나타나는 스캔들은 비판의 정당한 명분을 제공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몇몇 오점들 때문에 이들이 정당하게 평가받아야 할 국가와 국민에 대한 헌신의 기록들이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전쟁에서 군의 헌신 없이 국가와 국민의 생존이 불가능한 것처럼 정보기관 없이 스파이 전쟁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이 보호받을 길은 없다. 정보기관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것과 정보기관과 그 요원들의 역할의 필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그 헌신에 대해 감사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우리 국가는 오늘 이 시간도 생존과 이익을 위해 치열한 싸움의 가운데 있으며 우리의 스파이 전사들은 그 전장터 한 가운데 서 있다.

목차

들어가며 i
역자서문 xiii

Part 1 쿠바커넥션
Part 2 타이완 팜므파탈
Part 3 정보유출과 정보분실
Part 4 성 안에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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