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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 제국 30년

덩샤오핑 제국 30년

  • 롼밍
  • |
  • 한울아카데미
  • |
  • 2016-02-19 출간
  • |
  • 477페이지
  • |
  • 163 X 230 X 30 mm /809g
  • |
  • ISBN 9788946058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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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개혁의 선구자라는 찬사 뒤 숨겨진 덩샤오핑의 이면,
민주와 자유를 두려워한 독재자의 실체를 폭로하다


이 책은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이 실은 얼마나 자유화에 반대한 보수적인 인물이었는지를 파헤친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은 단지 경제 영역에만 한정되었을 뿐, 그는 다른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보수파였다. 덩샤오핑 제국의 형성 과정을 직접 목격한 저자는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덩샤오핑의 정치적 책모와 현대 중국 정치사의 복잡한 이면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또한 높이 평가되는 경제 영역에서의 개혁·개방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심도 있게 비판하면서, 오늘날의 중국은 ‘개방’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지닌 ‘공산노예제도’라고 강조한다. 덩샤오핑을 재조명한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덩샤오핑의 진가를 더욱 여실히 증명하고 인간 덩샤오핑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을 더욱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한다.

개방적인 형태의 민족주의 독재국가, 덩샤오핑 제국

‘오늘날 중국을 있게 만든 장본인’, ‘중국 인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지도자’, ‘개혁ㆍ개방의 총설계사’. 이는 덩샤오핑에게 흔히 붙는 수식어다. 덩샤오핑에 대한 평가는 유독 관대해 유혈 진압으로 수많은 인명이 학살된 6ㆍ4 천안문 사태마저도 ‘덩샤오핑의 어쩔 수 없는 결단’으로 포장되곤 한다. 과연 그는 그토록 위대한 지도자였을까?
이 책은 개혁ㆍ개방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이 실은 자유와 민주를 얼마나 두려워한 보수적인 독재자였는지를 파헤친다. 천안문 학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천안문 사태는 당시 전 세계적 조류였던 민주화를 막기 위해 자행한, 철저히 계산된 덩샤오핑의 대전략이었다. 그가 주도한 개혁ㆍ개방은 단지 경제 영역에만 한정되었을 뿐, 그는 다른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보수파였다. 처음에는 당내 민주개혁의 대표주자인 후야오방을 등용했다가 경제 영역에서의 개혁이 자리 잡고 나자 이 개혁의 바람이 정치ㆍ사상ㆍ문화 영역으로 확대될까 봐 후야오방은 물론 당내 민주개혁파를 철저하게 제거한 데서도 이를 잘 알 수 있다. 저자는 이처럼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덩샤오핑의 정치적 책모와 현대 중국 정치사의 복잡한 이면을 보여준다.

‘경제=개혁주의’, ‘정치=보수주의’의 양면 수법을 추구하다

저자는 사람들이 그토록 높이 평가하는 경제 영역에서의 개혁ㆍ개방에 대해서도 냉철하고 심도 있게 비판한다. 흔히 덩샤오핑의 개혁ㆍ개방으로 중국이 지금처럼 부상하게 되었다고 여기지만, 저자는 오늘날의 중국은 ‘개방’이라는 새로운 형태를 지닌 ‘공산노예제도’에 불과하다고 일갈한다. 즉, “국가는 큰 몫을 갖고, 집단은 가운데 몫을 갖고, 개인은 작은 몫을 갖는다”라던 전면 보수파 천윈의 공식을 변형해 ‘국가와 외자는 큰 몫을 갖고, 탐관오리와 중산계급 집권자는 중간 몫을 가지며, 수억 명의 노동자는 작은 몫을 갖는’ 것으로 바꾼 데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주와 자본가의 산물을 공유하던 이전의 공산주의에서 농민과 노동자의 산물을 공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점에서 보면 덩샤오핑 제국은 이전보다 나아진 것이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정확하게 보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맹렬하게 손을 쓴, 노련한 정치 고수

1997년 2월 19일 덩샤오핑이 사망한 이래 20여 년이 지나도록 중국은 덩샤오핑의 지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의 중국의 이해하려면 덩샤오핑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저자 롼밍은 중국공산당 총서기 후야오방의 책사형 비서로서 이른바 덩샤오핑 제국의 형성 과정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고, 장제스의 장남인 장징궈 등 중국국민당과도 유기적인 관계를 맺었으며, 타이완 민주진보당의 지도자로 총통에 오른 천수이볜의 국책고문으로 활동한 사람이다. 정무ㆍ당무ㆍ국무 감각을 지닌 뛰어난 참모이자 역사의 산증인으로서 현대 중국 정치의 역동적인 궤적을 대변하는 삶을 살았던 저자는 생생한 증언과 날카로운 분석을 통해 덩샤오핑 제국의 진면목을 파헤친다.
덩샤오핑을 재조명한 이 책은, 역설적으로 정치가 덩샤오핑의 진가를 더욱 여실히 증명하기도 한다. 우파인 후야오방과 자오쯔양의 창의력과 이상주의를 자신의 제국을 건설하는 데 철저히 이용한 후 자신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지점에서 내친 것이나, 기득권 세력이던 덩리췬 등의 좌파 원로 역시 자신의 노선을 비판하지 못하도록 노련하게 배척한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정치 고수였는지를 잘 알 수 있다. 상황에 대한 판단력과 사람을 다스리는 능력을 토대로 자신의 뜻한 바를 관철해나가는 카리스마 면에서만큼은 저자도 인정하는 뛰어난 실력자였다.
이 책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 덩샤오핑이 아닌, 정치적 격동 속에서 자신의 신념이 흔들리기도 하고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누군가를 철저히 이용하기도 하는 인간 덩샤오핑의 생생한 모습을 확인함으로써 더욱 객관적인 시각에서 덩샤오핑을 평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하나의 제국이 흥기할 때에는 후야오방, 핑춰왕제같이 이상주의와 창조적 정신을 가진 선봉장이 장애물을 제거해 역사가 전진할 수 있도록 도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러나 옛 제국에 잔류된 장애가 이미 제거되어 새로운 제국이 스스로 장애를 만들어낼 때에는 이상주의와 창조적 정신을 지닌 선봉이 새로운 권력자가 개인 통치를 공고히 하는 데 금기가 되므로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된다. _330쪽

그는 자유를 두려워했고, 민주를 두려워했으며, 인권을 두려워했고, 대자보를 두려워했다. 또한 당연히 민족구역 자치를 두려워했고, 티베트인과 신장인의 자유 및 자주권을 두려워했다. 티베트 사람과 신장 사람에게 자유와 자주권을 주면 전국 인민이 따라 일어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전국의 ‘자산계급 자유화’와 ‘평화적 전복’에 해당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_336쪽

만약 덩샤오핑이 없었다면 중국의 개혁?개방도 이루어지지 못했을까? 당연히 아니다. 만약 11기 3중전회 이후에 덩샤오핑, 천윈, 후야오방, 자오쯔양이 아니라 화궈펑, 후야오방, 자오쯔양이 공동 통치하고 덩샤오핑이 스스로 받아들였던 보조적인 위치에 있으면서 시어머니 또는 핵심 세력을 자처하지 않았다면 중국의 개혁?개방은 오늘보다 훨씬 나은 모습을 보여주었을 것이다. _371쪽

혹자는 나폴레옹이 중국을 가리켜 “잠자는 사자가 깨어났다”라고 비유한 것을 들면서 오늘날의 ‘중국의 부상’을 묘사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제로 깨어난 것은 서방 자본주의로 분장해서 동방 노예제도하의 사람들을 잡아먹는 야수로서, 그 야수가 서방 자본주의의 젖과 중국 인민의 피땀을 빨아 먹으며 성장했다는 사실을 아직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_377쪽

오늘날 중국은 이미 다른 노예제도 국가와 연대해 전 세계 민주 물결의 확장을 격퇴하고 있으며, 전 세계의 자유민주국가는 중국의 노예제도가 전 세계로 확장되는 것을 거부하면서도 동시에 환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1930년대 뮌헨 및 1940년대 얄타에서 히틀러의 나치 노예제도와 스탈린의 전통적인 공산 노예제도를 거부하면서도 환영한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적 과오로부터의 교훈을 기억하기란 그렇게나 어려운 일인가? _377쪽

덩샤오핑 제국이라는 이 깨어난 사자의 오늘날 실력을 전 세계 자유?민주 역량과 비교해보면 처음 일어난 나치와 전후 상처를 입은 소련과 마찬가지로 매우 작다. 따라서 자유?민주 역량이 완전히 연합하면 중국이 인민을 노예로 만들거나 지구를 오염시키는 것을 저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경각심을 갖지 않고 이 사자의 몸집이 두 배로 커지도록 내버려두면 전 세계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7%에서 28%로 미국을 뛰어넘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저지하려 해도 때는 이미 늦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에 인류와 지구가 치러야 할 대가는 뮌헨과 얄타에 대해 지불했던 대가보다 훨씬 클 것이다. _378쪽

학생과 민중은 보수파가 자유민주운동을 진압하려는 결심과 능력을 낮게 평가했다. 베이징의 민중이 천안문광장으로 진입하는 군대를 막고 있을 당시 머리 위에 이고 있던 포대의 천 조각에는 “당신에게는 11억 명의 군대가 있습니까?”라고 쓰여 있었고, 혹자는 심지어 총알이 가슴을 관통해 피를 흘리며 땅에 쓰러지기 전까지 자신이 맞은 것은 고무 총탄이라고 생각했다. _410쪽

누가 6?4 학살에 승리자가 없다고 했는가? 승리자는 덩샤오핑이다. 덩샤오핑은 자오쯔양을 숙청함으로써 자신과 보수파의 연맹을 달성해 세계 대기후와 중국 소기후를 물리쳤으며, 전 세계 제3차 민주화의 물결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저지하고 6?4 학살의 피바다 위에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를 공고히 했다. 그리고 개방적인 형태의 새로운 공산 노예제도하에서 중국을 전 세계에서 부상시키기 시작했다. _418쪽

혹자는 후진타오가 중국공산당 제17차 당대회 보고에서 41차례나 민주를 반복해서 말했다고 보도하지 않았던가?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가 말한 민주는 중국공산당이 영도하는 민주이자 인민민주독재의 민주이며, 마르크스?레닌주의, 마오쩌둥주의의 민주이자 민주집중제의 민주다. 다시 말해 언론의 자유가 없고, 야당이 없으며, 사법독립이 없고, 권력 균형이 없는, 모든 권력이 한 명의 지도자, 하나의 당, 하나의 사상하에 돌아가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인 것이다! 천안문 학살은 바로 이러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민주의 산물이다. _421쪽

후야오방 그리고 자유 가치를 인정하는 모든 사람들의 견지에서 볼 때는 사람이 목적이고, 사람이 제1위이며, 사람이 국가의 주인으로, 사람이 있어야만 국가가 있는 것이다. 국가는 단지 사람의 자유, 행복,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덩샤오핑은 이와 반대였다. 국가가 목적이며, 사람은 단지 유용한 도구였다. 따라서 덩샤오핑의 관점에서 볼 때 사람은 사용하기 좋지 않을 때에는 버리고 폐기할 수 있었는데, 산아제한 계획으로 없애거나 군대의 탱크를 보내 소멸시킬 수도 있었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것을 “국가에 가장 이로운 일”이라고 보았고 “국가가 부강해지는 길을 찾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을까? _438쪽

덩샤오핑 제국은 바로 개방적인 형태의 민족주의 독재국가다. 1945년 이전에는 자유의 주된 적이 파시즘이었으나 1945년부터 1989년까지는 공산주의였다. 그리고 1989년 이후에는 바로 민족주의다. 중국 인민이 인류의 자유 시대에 진정으로 발 딛고 서려 한다면 반드시 덩샤오핑의 민족혼을 초월해 각 개인이 자유를 확보하고 모든 사람이 자유를 누리는 조건이 되는 자유혼을 되찾아야 한다. _439쪽

마오쩌둥은 ‘계급투쟁을 강령으로 삼는 것’과 ‘무산계급 독재하의 계속혁명’으로 공포에 가난을 더한 마오쩌둥 제국을 건립했다. 덩샤오핑은 ‘4항 기본원칙의 견지’와 ‘특권계급 독재하의 개혁?개방’으로 공포에 부패를 더한 덩샤오핑 제국을 재건했다. _451쪽

정확하게 보고, 신속하게 움직이며, 맹렬하게 손을 쓴다는 점에서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을 뛰어넘으며, 이는 덩샤오핑 제국이 3세대에 걸쳐 계속 이어지고 있는 비결이기도 하다. _454쪽

그러나 역사에는 끝이 없어서, 공산주의를 대신해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대항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불타고 남은 재에 다시 불붙어 살아나기 시작했으니, 바로 민족주의다. 이는 사실상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다. 히틀러의 게르만 민족주의, 레닌의 러시아 민족주의, 마오쩌둥의 마르크스주의의 중국화, 덩샤오핑의 중국적 특색을 지닌 사회주의는 모두 민족주의로 포장된 강권주의다. _459쪽

목차

머리말. 덩샤오핑을 알아야 중국을 알 수 있다
1장. 도고일척 마고일장
2장. 마오쩌둥 제국에서 덩샤오핑 제국으로
3장. 후야오방과 보수파의 대분열
4장. 경제에서 후야오방을 내쫓고 정치에서 저우양을 타격하다
5장. 덩샤오핑과 후야오방의 최후 결렬
6장. 중국 인민의 운명적인 비극
7장. 피비린내 나는 비바람 속에 후계자를 다시 바꾸다
8장. 덩샤오핑과 장징궈가 벌인 세기의 대결
9장. 덩샤오핑 제국의 이론적 기초
10장. 덩샤오핑 없는 덩샤오핑 제국
11장. 장쩌민에서 후진타오까지
12장. 민족주의 신노예제도 제국의 부상
13장. 덩샤오핑 제국의 변강 정책
14장. 덩샤오핑 제국의 글로벌 전략
15장. 자유제도와 노예제도 간의 최후 일전
보론1. 천안문 학살이 남긴 역사적 교훈
보론2. 역사는 위대한 인물의 전기가 결코 아니다
보론3. 제18차 당대회 개최와 함께 캄캄한 중국에 동이 트다

저자소개

저자 롼밍은
중국 상하이 출생(1931)
중국공산당 가입(1946)
옌징대(燕京大, 베이징대의 전신) 입학(1948)
중국공산주의청년단 중앙위원회 후보위원(1957)
베이징일보(北京日報) 문교부 부주임 및 이론부 주임(1958~1961)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소속으로 업무에 종사함(1961~1967)
닝샤회족자치구(寧夏回族自治區) 허란현(賀蘭縣) 농장으로 하방됨(1967~1973)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학술위원회 위원 겸 이론연구실 부주임(1977)
중공중앙(中共中央) 제5호 문건의 기초를 주관함(1984)
중국공산당 당적 박탈(1985)
미국 하버드대, 콜럼비아대, 미시건대 등에서 방문연구 및 강의(1988)
프린스턴대 동아시아학과 ‘Princeton China Initiative’에서 연구(1990)
타이완(중화민국) 단장대(淡江大) 대륙연구소 방문연구원(1997)
타이완(중화민국) 국적 취득(2002)
타이완(중화민국) 총통부(總統府) 국책고문(國策顧問)(2004~2006)
현재 미국과 타이완(중화민국) 등 해외에서의 중국 민주화운동에 참여

저서: 『歷史轉折點上的胡耀邦』(1991), 『中共人物傳』(1994), 『民主在台灣』(2000), 『歷史的錯誤: 美中台關係探源』(2006), 『我看台灣人與台灣』(2009) 외 다수

도서소개

개혁의 선구자라는 찬사 뒤 숨겨진 덩샤오핑의 이면을 파헤치는『덩샤오핑 제국 30년』.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평가받는 덩샤오핑이 실은 얼마나 자유화에 반대한 보수적인 인물이였는지 파헤친다. 덩샤오핑이 주도한 개혁·개방은 단지 경제 영역에만 한정되었을 뿐, 그는 다른 영역에서는 철저하게 보수파였다. 덩샤오핑 제국의 형성 과정을 직접 목격한 저자는 그동안 국내에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덩샤오핑의 정치적 책모와 현대 중국 정치사의 복잡한 이면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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