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바구니 담기 close

장바구니에 상품을 담았습니다.

이순신의 7년 6

이순신의 7년 6

  • 정찬주
  • |
  • 작가정신
  • |
  • 2017-08-30 출간
  • |
  • 344페이지
  • |
  • 141 X 205 X 21 mm /495g
  • |
  • ISBN 9788972885863
판매가

15,000원

즉시할인가

13,500

배송비

2,300원

(제주/도서산간 배송 추가비용:3,000원)

수량
+ -
총주문금액
13,500

※ 스프링제본 상품은 반품/교환/환불이 불가능하므로 신중하게 선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사서평

▣ 이순신의 7년. 6 주요내용

한산도 둘포로 진을 옮긴 이순신, 조총의 개발에 성공하다
거제 남쪽 삼십 리 떨어진 한산도 둘포는 배를 감출 수 있는 포구로, 둘포 앞바다는 왜선들이 전라도로 가려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길목이다. 이순신은 진을 옮기고 앓아눕는다. 진주성이 사투 끝에 함락되었고 광양, 순천 등지에서 민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접하고였다. 이순신은 왜의 조총을 연구시켜 드디어 총을 만드는 데 성공하고 삼도수군통제사로서 명실상부한 수장이 되지만 조정 대신들의 편견과 무지함으로 파직당하는 용맹한 장수들과 굶어 죽어가는 피난민들까지 근심해야 하는 고단함에 처한다. 영남은 초토화되다시피 하였으므로 초근목피로도 연명이 되지 않아 시체를 먹고 사람을 잡아먹는 일까지 일어났으나 아전들이 구휼미를 착복하니 생지옥이 따로 없다.

금토패문과 이순신의 진해, 당항포 해전의 승리
선조의 유서는 왜군을 섬멸하라는 것. 명나라 총병 유정은 왜적 토벌을 금한다는 것. 이순신은 두 번에 걸친 명의 금토패문에도 불구하고 진해와 당항포 싸움에서 완벽한 승리를 거둔다. 이순신은 명의 선유도사 담종인이 보내온 금토패문이 실은 왜장의 농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진해와 당항포에서 전선 서른한 척을 잃은 왜장 고니시는 조선 수군의 공격은 강화 협상 위반이라는 억지 항의를 명의 총병 유정에게 보낸다. 명나라가 왜국과의 강화 협상에 매달리는 것은 대륙에 혹심한 흉년이 들어 군량미도 댈 수 없고 더 이상 군사도 동원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의승장 유정은 왜장 가토에게 조선은 그 어떤 경우에도 왕자를 보내달라는 요구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왜국이 군사를 돌려 돌아가는 것만이 협상의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왜장 고니시는 조선의 도공, 세공 인쇄쟁이들을 붙잡아 왜국으로 실어보낸다. 총사령관인 우키다는 궁궐과 사대부 저택의 서적들을 약탈하고 가토는 산중 고찰의 신라와 고려 범종에서부터 불상, 석탑까지 뜯어간다. 구로다 나가마사는 아예 절 한 채를 통째로 해체해 반출하였고 다치바나 무네시게는 태백산맥에 자생하는 어린 소나무들을 대량으로 뽑아갔다. 심지어 히데요시의 밥상에 조선의 호랑이가 놓였으니 그 약탈의 심대함이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체찰사 이원익과 이순신의 휴가 청원
체찰사 이원익은 이순신의 건의에 따라 피폐해진 여러 섬의 진들을 통폐합하고 삼도 수군 통제영이 있는 한산도를 시찰하면서 이순신 장군의 지략과 풍모에 탄복한다. 이순신이야말로 조선 수군에 없어서는 안 될 장수임을 깨닫는다. 이순신은 진주에 머무르고 있는 이원익에게 휴가를 청원한다. 이번에는 어쩐지 어머니를 꼭 봬야 될 것 같아서였다. 이원익은 대놓고 허락할 수 없어 전라도로 시찰을 떠난다고 답한다. 이심전심. 이순신은 이원익의 전라도 점고길에 동행하면서 경상도의 바다와 물목의 형세를 파악하고 양민들의 처참한 참사에 가슴 아파한다. 이원익 체찰사 일행은 이순신이 농사를 짓도록 한 도양 둔전에 풍년이 든 것을 보고는 감격한다. 도강현(현 강진)에 도착한 체찰사 일행과 이순신은 전라 병마절도사로 승진한 원균의 허장성세와 천박함에 실망하고 체찰부사 한효순은 선조의 원균에 대한 편애와 조정의 이순신에 대한 오해를 근심한다.

요시라의 반간계反間計와 암군 선조의 교지 ‘이순신을 잡아들이라’
이순신은 전라 우수영에서 울돌목이 전략적으로 탁월한 바다 물목임을 확인하고는 ‘작은 군사로 큰 군사를 이길 수 있는 바다’라고 확신한다. 이순신은 좌수영 본영에서 어머니 초계 변씨의 뒤늦은 생일상을 차려드리고는 마지막 생일잔치가 될 것 같은 직감에 눈시울을 적신다. 한편 조정에서는 선조가 히데요시의 재침을 두려워하여 해주 행궁의 장태?胎를 살피러 가겠다고 핑계를 대자 모처럼 반대 의견들을 낸다. 재침하면 해주보다는 강화가 낫다고 선조를 달랜다. 그사이 경상 우병사 김응서는 이중 첩자 요시라(시치다유)에게서 첩보를 얻어내지만 도리어 왜적의 반간계(이간책)에 넘어가 아군의 전략을 노출시키고 만다. 이순신은 요시라의 이간책이 자신을 함정에 몰아넣으려는 술책임을 뻔히 알지만 김응서의 직속상관인 권율조차도 선조가 신임하는 김응서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으므로 부산포로 출진하는 경상 우수영 배에 김응서가 타고 있는 것을 용인한다. 드디어 사헌부까지 나서서 이순신을 잡아들이자는 상소를 선조에게 올린다.

‘영웅 이순신’이 아닌 ‘인간 이순신’
“지는 지댈 디 ?는 백성덜의 신하가 되구 싶구먼유.”

『이순신의 7년』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어머니를 모시지 못하는 변방의 장수로서 회한에 찬 이순신, 뛰어난 전략과 용맹함 이면의 불안과 두려움에 불면의 밤을 보내는 이순신, 군사의 목숨을 책임진 장군으로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이순신, 전쟁에 쫓기고 굶주린 양민의 생계까지도 근심하는 이순신의 입체적인 면모를 보여준다. 이러한 이순신의 모습은 충청도 아산 사투리에 묻어나면서 친근하고 인간미 넘치는 인물로 되살아난다. 서울 건천동에서 태어나 여덟 살부터 서른두 살에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충청도 아산에서 살았던 이순신이 서울말을 쓰는 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을까. 그것은 이 소설의 근간을 이루는 호남의 의병군들이 당연히 호남 사투리를 쓰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나는 신격화된 이순신이 아니라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던,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말하는 인간 이순신을 그려낼 것이다. 임금과 대신들은 부끄럽게도 의주로 도망쳤지만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았던 당시 백성들의 분투를 복원해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헌정하는 소설이 되게 하고 싶다.” _작가의 말 중에서

위기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우리 민족의 혼과 기백
“바람이 강할수록 파도는 더욱 살아난다.”

『이순신의 7년』은 임진왜란이라는 전쟁 한복판에서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는다. 전운을 감지하고 병사들과 함께 전쟁에 대비하는 이순신을 먼저 만나게 된다. 이야기의 절정만을 향해 치닫는 다른 소설과의 차이점이다.
이순신은 지인에게 ‘호남이 없다면 국가가 없소이다若無湖南 是無國家’라고 단언했다고 한다. 이 말은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던 호남이 없었다면 위기를 극복해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말이며, 이 점에 주목하여 이순신이라는 영웅을 있게 한 선비, 장수, 승려, 천민 들의 의기와 충절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시대를 떠받들어온 조선 백성의 삶을 재조명하고, 알게 모르게 우리를 잠식한 패배주의 식민사관을 극복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쉽고 안타까운 사실이 하나 있다. 남도 백성들의 역할이 정당하게 대접받고 있지 않다는 현실이다. 의병장들은 물론이고, 관군과 의병장들에게 목숨을 맡겼던 민초들의 절절한 사연도 역사 뒤편에 묻히어진 느낌이다. 목탁 대신 칼을 들었던 화엄사, 흥국사 승려들로 구성된 의승 수군義僧水軍의 호국 의식이나, 대부분이 남도 출신인 이순신 휘하 장수들의 피 끓는 충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색할 뿐이다. 성웅 이순신이라는 눈부신 광휘光輝로 말미암아 그들의 진면이 퇴색해버린 것은 아닐까.” _작가의 말 중에서

10여 년의 취재와 철저한 고증!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해 더욱 풍부해진 이야기

『이순신의 7년』은 작가가 직접 발로 현장을 누비고, 역사서는 물론 문중의 족보까지 샅샅이 뒤져가며 기나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탄생한 소설이다.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현장에 대한 사실적인 묘사가 두드러진다. 군 체계 및 병사들이 사용하는 화살의 종류와 쓰임새, 무기나 장비들, 적의 조총과 활 공격을 막으면서 동시에 화포를 쏠 수 있는 돌격용 전선인 거북선 건조 과정, 물의 흐름에 따라 바뀌는 전술 변화, 조정 대신들의 당파 싸움 및 명나라와의 역학관계 등 전쟁과 관련된 것은 물론이거니와 등장인물들이 생생한 지역 사투리로 말하고 닭장떡국, 퉁퉁장, 서대회 무침, 갓김치, 고들빼기, 벌떡게장 등 특히 호남의 음식 문화 및 풍속을 아우르고 있는 것은 이 소설의 빼어난 특장이다. 전 7권으로 2018년 2월 완간 예정이다.

1권 주요내용: 나, 이순신은 임금의 신하가 아니라 백성의 신하다
이순신은 왜구의 노략질로 인한 남해안 촌민들의 처참한 모습을 본 뒤, 문관으로 입신하여 임금의 신하가 되기보다는 무장이 되어 변방 백성의 신하가 되기로 맹세한다. 선조 24년(1591) 전라 좌수사로 부임한 이순신은 수군들을 훈련시키고 화살과 화약을 만들며 소포 바다에 철쇄를 설치하는 등 전란에 철저하게 대비한다. 특히 비밀리에 거북선을 건조하여 임란 직전에 함포 사격 훈련까지 마친다. 며칠 후, 임진년(1592) 4월 15일(음력) 이순신이 예감한 대로 부산포 앞 절영도 바다에 왜선 구십 척이 출현하면서 가장 참혹했던 전쟁의 서막이 오른다.

“지는 지댈 디 ?는 백성덜의 신하가 되구 싶구먼유.
무장이 되어 변방 백성덜을 지켜주는 신하가 되겄슈.?

2권 주요내용: 거북선, 조선 수군을 이기는 군사로 이끌다
조선군은 부산과 동래 연안 바다에서부터 왜군을 막지 못했고, 잇따른 관군의 패배 소식에 선조는 한양 도성을 버리고 쏟아지는 빗속에 파천 길을 떠난다. 조정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휩싸인 가운데 이순신 함대는 옥포 해전, 합포 해전, 적진포 해전에서 승리하고, 사천 해전에서는 드디어 비밀 병선 거북선으로 왜 수군 장졸들을 혼비백산시켜 승전한다. 그리고 잇달아 당포 해전,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에서 크게 이김으로써 남해 바다를 지킨다.

“거북선 군사덜은 어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허구만요.”
“그러니께 이기는 군사가 돼야 허는 겨.
우덜의 숙명은 적과 싸우다 이기고 죽는 겨.”

3권 주요 내용 : 이순신 함대의 연전연승에 의병들 충의로 일어나다
이순신이 당항포 해전, 율포 해전에서도 연이어 승리를 거두니 연전연승의 자신감으로 조선 수군의 사기가 충천한다. 그러나 육군이 연전연패하면서 선조는 또다시 피난길에 나서고 임금이 떠난 평양성은 맥없이 함락된다.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고자 조선 최초로 의병을 일으킨 곽재우 등 선비들이 붓 대신 칼을 들고 민초들은 목숨을 내걸고 의병이 되어 일어선다. 이광이 이끄는 오만 명 삼도 근왕군은 용인 전투에서 무모한 작전으로 참패하지만, 고경명의 담양 의병군이 운암 전투에서 승리하고 호남 최초로 거병한 김천일이 이끄는 나주 의병군이 독성산 전투에서 승리한다. 이어 곰티재 전투에서 김제 군수 정담이 이끄는 관군과 의병장 황박이 이끄는 의병군이 왜군과 치열한 접전을 치르고 금산 전투에서 고경명이 분전하여 호남의 보루인 전주를 지켜내기에 이른다. 그 과정에서 정담, 고경명 등과 같은 걸출한 여러 의병장과 많은 의병들이 순절한다. 이순신은 3차 출진을 하여 한산도 해전에서 커다란 승리를 거둠으로써 왜 수군의 보급로를 끊고 조선의 남해와 호남을 지켜낸다.

“1차 방어선에서 왜넘덜을 사즉생으로 막어불라요.
사즉생인디
왜넘덜이 우리덜을 으짜게 넘어가불겄소?”

4권 주요 내용 :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고 육지에는 의병군이 있었다
이순신이 안골포 해전에서도 대승을 거두자 나고야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자신이 조선으로 출전할 터이니 그때까지 조선 수군과의 해전을 중지하고 육지에 성을 쌓으라는 지시를 내린다. 조선 사람을 다 죽이고 군수물자를 조선에서 충당하라고 한다. 그것은 조선에 들어와 있는 왜군의 보급선을 끊겠다는 것이다. 본토에서 보내줘야 할 군량미와 무기를 만들 쇠붙이가 바닥났기 때문이다. 한편 명나라의 첫 원병은 평양성 전투에서 왜군에 참패하고 명의 장수 조승훈은 잔여 군사를 이끌고 요동으로 돌아간다. 청주성을 수복한 조헌 의병장과 승장 영규가 고경명이 전사한 금산으로 내려가 치열한 백병전을 치르고 장렬히 전사한다. 또한 전라 감사 권율은 배티재를 선점하고 왜장 고바야카와와 일대 혈전을 벌여 전주를 지킨다. 4차 출진을 한 이순신은 부산포에 숨어 있는 왜 수군의 숨통을 끊어 남해의 제해권을 틀어쥐고 이순신의 연전연승과 여러 의병장의 순절로 일어선 임계영 전라 좌의병과 최경회의 전라 우의병이 남원에 결집한다. 이어 경상도를 지원, 곽재우 의병군, 고성, 합천 의병군 등과 합세하여 진주성의 김시민 목사를 후방에서 지원한다. 1차 진주성 전투에서 김시민과 의병군은 승리하지만 조선은 담대하고 전술에 뛰어난 용장 김시민을 잃는다.

“호남도 우리나라 땅이요, 영남도 우리나라 땅이 아닌가!
의를 위해 장수가 된 사람이
어찌 멀고 가차운 것을 따져 싸우려고 하는가!”

5권 주요 내용 : 이순신, 임금에게 죄주기를 청하다
청허대사의 격문으로 오천 명 승려들이 의승군으로 나선다. 사명대사는 삼천 의승군을 이끌고 군사훈련을 하지만 명의 심유경이 왜적과 화의를 도모하느라 평양성 공격은 미루어진다. 드디어 이여송이 오만 대군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오고 조명연합군은 의승군의 모란봉 점령에 힘입어 평양성을 수복하지만 명군의 노략질이 왜적 못지않다. 선조는 이순신에게 왜군의 퇴로를 끊어 섬멸하라는 유서를 내린다. 이순신은 의승군을 불러, 웅천 왜성과 포구의 왜선들을 한꺼번에 치는 수륙병진 작전을 편다. 원균은 전공에 집착하고 명군은 왜와의 강화를 위해 조선 수군의 작전권까지 통제한다. 한편, 진주성 성주의 목을 가져오라는 히데요시의 명으로 십만여 왜군이 진주성에 집결한다. 김천일, 최경회의 의병군과 관민 육만여 명이 죽기를 각오하니 망망대해에 외로운 돛단배 같은 진주성에서 열흘을 독전, 치열한 혈전 끝에 순성장 황진, 진주 목사 장윤, 김해 부사 이종인 등이 전사하면서 수많은 의병군과 관민이 도륙당한다.

“장수란 말여, 명을 내리기두 하지만
책임을 지는 사람인 겨!”

[책 속으로 추가]
도양 둔전은 녹도진 가는 길에 있었다. 이기남은 둔전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체찰사 일행과 이순신을 맞이했다. 둔전을 바라보는 체찰사 이원익과 체찰부사 한효순의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두 사람은 신천지에 들어선 듯 기쁨을 주체하지 못했다.
“이 공, 정녕 이곳이 우리나라 땅이란 말이오?”
“전라 좌수영 관내 도양 둔전이구먼유.”
“어찌 여기만 이렇게 풍년이 들 수 있단 말이오.”
이원익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한효순도 감탄했다.
-194쪽

한효순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이순신은 마음이 무거웠다. 선조가 자신을 신임하지 않고 불신하는 것까지는 참고 견딜 수 있으나 왜적과 싸움 한번 해보지 않은 신하가 이러쿵저러쿵 논하는 것에 심한 괴리감이 들었다. 수군이 거제만 점령하면 왜군의 보급로가 끊어질 것이라는 둥, 명과 왜가 강화 협상을 벌이느라고 큰 싸움이 없는데도 왜군이 대포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서 싸움이 소강상태라고 하는 둥 조정의 임금과 신하들의 판단과 인식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230쪽

이순신은 해남과 진도 사이를 소리치며 흐르는 울돌목의 바닷물을 유심히 보면서 걷기만 했다. 상념에 빠져서인지 이정충이 하는 말을 건성으로 듣는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이윽고 이순신이 한마디 뱉어냈다.
“작은 군사로 큰 군사를 이길 수 있는 바다구먼.”
“워째서 그랍니까유.”
“물살이 이렇게 쎈 디는 우리나라에 ?을 겨. 바다 폭이 좁은
것두 그렇구.”
“왜놈덜을 뜰채루다가 낙지잽이 허듯 잡으믄 되겄구먼유.”
-255~256쪽

닷새 후.
선조는 며칠 동안의 고민 끝에 내시 중에서 왕명을 전하는 승전색承傳色을 시켜 승정원에 비망기를 전했다. 대신들을 별전에 불러놓고 전명傳命하지 않고 굳이 비망기를 내려보낸 까닭은 뻔했다. 자신의 입장이 떳떳하지 못했고, 대신들 간에 이견이 분분할 수도 있어서였다. 비망기의 요지는 임시로 한양을 떠나겠다는 것이었다. 왜군이 재침해 올 경우를 대비한 파천 계책이었다. 임진년처럼 허둥지둥 파천하지 않겠다는 선조 나름대로의 군색하기 짝이 없는 대책이었다.
-306쪽

“쯧쯧쯧.”
“지도 요로코롬 지저분헌 싸움은 첨이그만요.”
“그려.”
“적장과 내통하고 있는 김응서 모가지를 댕강 잘라불고 잡그만이라우.”
“에러운 일이여. 임금님은 물론이구 윤두수, 이산해 같은 대신덜이 김응서의 장계를 지달리고 있다니께 말여.”
“요시라 이중 첩자질에 모다 놀아나는 꼴이그만요.”
“그러니께 우덜이라두 정신 바짝 차려야 혀.”
-337쪽

목차

호남이 없다면 7
생지옥 20
금토패문 32
정탐 1 44
정탐 2 56
새해 첫 눈물 71
약탈 85
체찰사 이원익 97
관등觀燈 109
휴가 청원 122
어머니 133
그리운 본영 145
광양 참상 158
말먹이꾼 피리 171
둔전 농사의 기쁨 184
명궁수 오언룡 196
선연과 악연 209
암군의 편견 222
해남 길 234
우수영 태평정 246
여진과 귀지 259
문병 272
마지막 잔치 284
감도는 전운 298
요시라의 반간계 310
망측한 싸움 328

저자소개

저자 정찬주는 1953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불교적 사유가 배어 있는 글쓰기로 오랜 기간 소설과 명상적 산문을 발표해왔다. 법정 스님은 저자를 재가제자로 받아들여 ‘세속에 있되 물들지 말라’는 뜻으로 무염無染이란 법명을 내렸다. 현재 전남 화순 계당산 산자락 이불재耳佛齋에서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펴낸 책으로 장편소설 『단군의 아들』, 『천강에 비친 달』, 『인연 1, 2』, 『조선에서 온 붉은 승려』, 『다산의 사랑』, 『소설 무소유』, 『산은 산 물은 물』, 『가야산 정진불 1, 2』, 『다불』, 『만행』, 『대백제왕』, 『야반삼경에 촛불춤을 추어라』, 산문집 『길 끝나는 곳에 길이 있다』, 『부처님 8대 인연 이야기』, 『암자로 가는 길』, 『자기를 속이지 말라』, 『선방 가는 길』, 『돈황 가는 길』, 『나를 찾는 붓다 기행』, 『정찬주의 다인기행』, 『뜰 앞의 잣나무』, 『불국기행』, 그리고 어른을 위한 동화 『눈부처』, 『마음을 담는 그릇』, 『바보 동자』 등이 있다. 1996년 행원문
학상, 2010년 동국문학상, 2011년 화쟁문화대상을 수상했다.

도서소개

『이순신의 7년』 6권은 여수 본영에서 한산도 둘포로 진을 옮긴 이순신이 군관 정사준으로 하여금 왜의 조총을 연구, 새로운 조총을 만드는 데 성공하는 데서부터 시작된다.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이순신은 굶어 죽어가는 양민들을 위해 둔전에 농사를 짓게 해달라는 장계까지 올리지만 호조의 대답은 없고 시체의 살을 베어 먹고 심지어 사람을 잡아먹었다는 소문이 횡행하는 가운데 구제소에서는 서리들이 구휼 곡식을 빼돌린다. 그야말로 나라가 생지옥이다. 명나라 총병은 왜적을 토벌하지 말라는 금토패문을 보내오고 선조는 왜적 토벌을 다그치면서 불가사의하게도 남해를 지키고 있는 이순신을 적대시한다. 선조의 심중에 야합하는 조정이 이순신을 죄인으로 몰아가는 중에 이중첩자 시치다유(요시라)의 반간계(이간책)가 통함으로써 이순신은 절체절명의 칼날 위에 서게 된다.

이순신 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은 많다. 임진왜란은 그만큼 역사적으로 외침의 피해가 막대한 참혹한 전쟁이었고, 이순신은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불세출의 영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찬주 작가의 이순신은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완전무결한 ‘영웅 이순신’이 아닌, 백성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는 ‘인간 이순신’이다. 충청도 아산 사투리로 이야기하고, 용맹함 이면의 두려움을 드러내고, 결정 앞에서 고민하고 망설이는 인간 이순신의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나라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몸을 사리지 않고 분연히 일어섰던 백성에 주목한다. 이순신을 이순신이게 한 당시의 선비, 장수, 승려, 천민들의 의기와 충절을 꺼내 들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당시의 시대로 돌아가 군사 문화, 의식주 문화, 여러 지방, 특히 호남 사투리와 음식과 풍속 등을 가늠케 할 수 있는 풍부한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다.
10여 년의 치밀한 취재와 철저한 고증으로 역사적 사실에 소설적 상상력을 더한『이순신의 7년』은 전남도청 홈페이지에서 인기리에 연재 중이며, 2018년 2월 전 7권으로 완간 예정이다. 작가는 독자들과 소통하며 이순신이 1591년 전라 좌수사로 부임해 1598년 노량 해전에서 최후를 맞기까지 인간 이순신의 삶과 임진왜란 7년 전쟁의 새로운 역사소설을 써나가고 있다.

교환 및 환불안내

도서교환 및 환불
  • ㆍ배송기간은 평일 기준 1~3일 정도 소요됩니다.(스프링 분철은 1일 정도 시간이 더 소요됩니다.)
  • ㆍ상품불량 및 오배송등의 이유로 반품하실 경우, 반품배송비는 무료입니다.
  • ㆍ고객님의 변심에 의한 반품,환불,교환시 택배비는 본인 부담입니다.
  • ㆍ상담원과의 상담없이 교환 및 반품으로 반송된 물품은 책임지지 않습니다.
  • ㆍ이미 발송된 상품의 취소 및 반품, 교환요청시 배송비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 ㆍ반품신청시 반송된 상품의 수령후 환불처리됩니다.(카드사 사정에 따라 카드취소는 시일이 3~5일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 ㆍ주문하신 상품의 반품,교환은 상품수령일로 부터 7일이내에 신청하실 수 있습니다.
  • ㆍ상품이 훼손된 경우 반품 및 교환,환불이 불가능합니다.
  • ㆍ반품/교환시 고객님 귀책사유로 인해 수거가 지연될 경우에는 반품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 ㆍ스프링제본 상품은 교환 및 환불이 불가능 합니다.
  • ㆍ군부대(사서함) 및 해외배송은 불가능합니다.
  • ㆍ오후 3시 이후 상담원과 통화되지 않은 취소건에 대해서는 고객 반품비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반품안내
  • 마이페이지 > 나의상담 > 1 : 1 문의하기 게시판 또는 고객센터 1800-7327
교환/반품주소
  • 경기도 파주시 문발로 211 1층 / (주)북채널 / 전화 : 1800-7327
  • 택배안내 : CJ대한통운(1588-1255)
  • 고객님 변심으로 인한 교환 또는 반품시 왕복 배송비 5,000원을 부담하셔야 하며, 제품 불량 또는 오 배송시에는 전액을 당사에서부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