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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가지 결정

108가지 결정

  • 함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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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08-15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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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8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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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53 X 224 mm
  • |
  • ISBN 9788992920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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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 역사를 ‘가정하고―상상하고―대화하고―여는’ 책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결정적 주사위는 있다.
더 나은 한국을 위한 역사의 결정적 주사위는 늘 우리의 손안에 있다.

역사를 가정하고 상상해보자.
만약에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더라면, 아니 세종대왕이 ‘여인네들과 오랑캐의 글-언문’이라는 반론에 부딪혀 한글창제를 포기했다면 지금 우리의 문화는 어떨까? 한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현 정부의)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국민의 찬성이 100%에 육박하게 될까? 중국어는 배우기가 너무나 쉬워, 중국어 열풍은 아예 불지도 않았을 것이다. 만약에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하지 않았더라면, 유교적인 조선과 대한민국이 탄생할 수 있었을까. 요동회복을 했더라면 중국의 동북공정은 아예 기획되지도 않았을 테고 말이다. 아니 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나당동맹이 없었더라면 고조선의 영광이 지금까지도 재현되어, 현재의 분단선이 압록강과 두만강 사이로 정해졌을까? 만약 고구려의 장수왕이 평양천도를 하지 않았다면 삼국통일은 고구려의 몫이었을까. 만약에 일본보다 먼저 우리가 개방의 문을 열었다면 일제강점기와 분단시대가 도래나 했을까?… 등등.

역사의 흐름을 가르는 ‘결정적 선택’이 있기 마련인 역사

이 책에서 ‘한국사의 운명을 바꾼 역사적 선택 108가지’를 정한 105인의 역사학자들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운명을 바꾸고 역사의 흐름을 가르는 ‘결정적 선택’이 있다고 한다. 한국사에서 최초의 역사적 결정은 기원전 194년 ‘위만의 쿠데타’였다. 그리고 1388년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쿠데타, 1876년 강화도 조약, 1961년 박정희의 5. 16 쿠데타 등등 역사의 고비마다 ‘역사를 결정한’ 순간들이 있었다. 장삼이사의 민초 한 명이 압록강을 건너다 위화도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랑, 혹은 어느 필부가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은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창을 거꾸로 드는 것이나 박정희가 탱크를 몰고 새벽에 한강다리를 건너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만큼 크다는 관점이 이 책의 첫 번째 앵글이다. 카이사르가 루비콘 강을 건넌 것과 로마의 한 어부가 루비콘 강에서 고기를 잡기 위해 강을 건너는 것은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관점인 것이다.

2)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이이화ㆍ박노자ㆍ이덕일ㆍ신용하ㆍ정현백 등 105명의 역사학자
기획과 토론, 조사, 선정, 집필까지 역사관련 대표자들을 총망라

2003년, 대한민국 역사 관련자들은 ‘뜻 깊은 결정’을 하였다. 오천 년 ‘한국사의 흐름을 바꾼 역사적 결정을 찾고, 그 의미를 되새겨 보자’는 것이었다. 당시에 참여를 한 101명은 역사적 결정 102가지를 꼽았다. 그리고 몇 년의 시간이 더 지났다. 그 사이에도 대한민국의 운명의 판을 가를 결정들이 있었다. ‘2004년 노무현 탄핵-쿠데타인가 정의실현인가’ ‘2004년 수도 이전 무산-관습 헌법의 벽’ ‘2005년 부계 성씨 강조 조항 폐지’ 등이다. 결국 한국사 역사적 결정의 수는 총 108가지, 선정자들은 모두 105명으로 늘어났다.
특히 선정자들은 역사학계, 교육계, 재야역사가, 역사 단체 등등 대한민국 역사 관련자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정현백 성균관대 역사학과 교수,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민경현 고려대 사학과 교수, 허동현 경희대 교양학부 교수, 신용하 이화여대 석좌교수, 최진옥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 이이화 역사문제연구소 고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 허영란 역사문제연구소 소장, 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 유적조사실장, 육낙현 백산학회 총무, 이영춘 국사편찬위원 편사연구관 등등이다. 집필은 함규진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이 맡았다.

3) 주요 내용

실증적 토대가 굳건한 것부터 출발하는 역사연구

가장 최근의 역사적 결정은 2005년, ‘부계성씨 강제조항 폐지’이다. 한편, 반만년 민족사라고 하지만 기원전에 이루어진 중요한 역사적 결정이 하나(위만의 쿠데타)뿐이다. 그만큼 한국사를 연구할 때 사료 부족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시사해준다. 때문에 105인의 선정자들은 역사적 검증이 사료를 통해 나름대로 진행될 수 있는, 즉 신화시대 이후의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 예컨대 역사학계 일각에서 제기하는 ‘탁록전쟁에서 치우가 패배함으로써 동이민족의 판도가 결정적으로 축소되었다’ 등등의 의견을 존중하지만, 이 책은 역사는 실증의 굳건한 토대가 우선 필요하다는 역사에 대한 앵글을 우선 중요시한 것이다.

해석의 가치를 무시할 수 없는 역사, 그래서 모든 역사는 현재사!

하지만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의 가치를 결코 무시하지는 않았다. 가령 2000년대에 이루어진 역사적 결정은 모두 네 가지이다. 남북정상회담(2000)을 제외하면 나머지 모두(노무현 대통령 탄핵, 수도 이전 무산, 부계성 강제조항 폐지)가 헌법재판소와 연관된 결정들이다. 특히 “행정수도 이전은 위헌”이라는 근거가 ‘관습법’이었던 만큼, 21세기 한국사라고 하는 역사의 강에서 ‘헌법재판소’라는 배에 탄 대한민국 사람들의 미래와 운명이 헌법재판소의 선택과 결정에 달려있다는 해석,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헌법과 민주주의의 관계를 제대로 정립하는 게 중요한 숙제라는 통찰은 ‘모든 역사가 현재사’라는 것을 입증해 준다. 이것은 이 책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108가지 결정의 역사적 의미에 대한 해석에 이의를 갖는 사람도 있으리라는 것을 존중했다. 때문에 사료의 부족이라는 한계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해당 결정을 내리는 주체와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했다.

“이 책을 쓰고, 편집하고, 인쇄하고, 독자들이 읽는 시점에도 중요한 역사적 결정은 이루어지고 있다. 만약 이 책의 개정증보판이 10년쯤 뒤에 씌어 진다면, 그때는 어떤 결정들이 추가될까? 한미 FTA, 쇠고기 수입? 대운하? 그리고 그때는 지금보다 더 긍정과 자랑에 차서 책을 엮게 될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라는 것이다. 더 나은 한국을 만드느냐, 마느냐의 역사적 결정은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책머리에서

4) 내용 구성의 다양함으로, 독자에게 역사에 대한 흥미와 깊이를 선사!

-‘한국사의 108가지 역사적 결정’을 고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근ㆍ현대 등 총 4부의 시대별로 나누고, 다시 1에서 108까지 시대순으로 서술해 독자들이 한국사를 통사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하였다.

- 108가지 역사적 결정의 일부를 7가지의 ‘소주제’로 묶어 비교한 ‘한국사 깊이읽기’는 다음과 같다. ① 수도를 바꾼다, 시대를 바꾼다-천도 ② 한국사의 정치폭력 ③ 창조와 발명 ④ 명분이냐? 실리냐? ⑤ 세상의 절반, 여성에 관한 한국사의 결정들 ⑥ 만남의 순간들 ⑦ 가장 많은 한국사 중요 결정을 내린 사람은? 등이다. 한국사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심층적이면서도 종합적으로 도우면서 역사를 흥미롭게 읽는 법을 보여준다.

한국사의 108대 결정을 가장 많이 내린 인물은 누구일까?

1위는 두 사람, 세종과 박정희이다. 세종은 한글 창제, 대마도 정벌, 4군 6진 개척, 갑인자 주조, 숙신옹주 친영, 공법 개혁(및 후퇴)의 6개 결정의 주체였다. 박정희도 5.16, 경부고속도로 착공, 베트남 파병, 한일회담, 한글전용, 10월 유신의 결정을 내렸다. … 우리 역사가 전근대는 세종, 근대는 박정희에 의해 대표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공동 3위는 조선 태종과 선조, 그리고 이승만이다. 태종은 1차 왕자의 난, 후계자로 세종 선택 등을 비롯해 네 가지의 역사적 결정을 내렸고, 선조는 동의보감 편찬 결정, 쇄환사 파견 등 네 가지를, 또 이승만은 단독정부 수립, 한미동맹 체결 등을 결정했다.
6위는 위화도 회군 등 세 가지의 역사적 결정을 내린 조선 태조 이성계이다. 세종이나 태종에 비해 태조가 내린 역사적 결정이 적다는 사실에서, 조선왕조의 건국 과정이 정도전 등 신진사대부 세력과 이성계 등 신흥무인 세력의 합작으로 시작해 차차 왕실 중심으로 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 두 가지씩의 역사적 결정을 내린 인물들로 고려 태조(왕건), 고려 광종, 고려 고종, 조선 광해군, 정조, 흥선대원군, 김일성, 김영삼, 김대중이 있다. 모두 합치면 14명인데, 고려시대 인물이 3명, 조선이 7명이며 근대 인물은 5명이다. 통일신라 이전의 인물은 하나도 없는데, 시대가 멀수록 현대까지 미치는 영향이 적다는 점에서 볼 때 당연하다고 할까. 또한 이 14명 모두 ‘보통 사람’이 아니라, 왕이나 대통령 등 국가의 최고통치권을 장악했던 인물들이다. 우리의 역사가 적어도 지금까지는 중앙의 최고통치권자 한 사람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음을 알려준다. 「한국사 깊이 읽기_가장 많은 한국사 중요 결정을 내린 사람은?」에서

사소한 선택도 역사의 흐름을 바꾼다!

일견 ‘사소해 보이는 결정 하나’가 역사를 바꾼다. 예를 들면 워털루 전쟁의 승패는 영국군 사령관 웰링턴의 뛰어난 리더십이 아니었다. 나폴레옹의 부하인 그루쉬 장군은 1차 타격을 받고 영국군과 합류하려던 프로이센을 격퇴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하지만 따르지 않았다. 이로 인해 전쟁의 국면이 180도 바뀌어버린다. 길목에 진을 치라던 제갈공명의 명을 받고도 산 위에 진을 친 마속의 사소한 결정 하나도 촉나라의 북벌을 망쳐버렸다.

백제의 공주 천도가 신라의 삼국통일―한국사는 한반도사로 고착을 이끌어

우리 역사에서도 ‘작은 선택’이 역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역사적 결정’이 된 사례가 빈번하다. 475년 고구려의 수도 침공 때문에, 백제는 애초에 새로운 수도로 한강 유역의 여주를 물망에 올렸다. 하지만 금강 유역인 웅진(오늘날의 공주)으로 천도했다. 고구려는 백제를 추격하는 대신 한강 상류 지역을 차지하는 걸로 만족했다. 고구려 입장에서는 선왕인 광개토대왕이 넓힌 만주를 개척하기 위해 신라의 반란을 제어할 수 있는 한강 유역의 점령만으로도 충분했었다. 또한 백제를 멸망시키지 않고 조공을 바치는 속국으로 관리하는 게 더 효율적인 대외정책이었다. 그런데 만약에 백제가 한강 유역인 여주로 천도했다면 고구려는 백제를 멸망시켰을 것이다. 그랬다면 고구려는 한반도의 절대강자로 등장해 삼국통일의 결정적 고지를 점령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백제의 웅진 천도로 백제는 살아남았고, 200년 뒤엔 신라가 삼국전쟁의 최후 승자가 되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은 한국의 역사를 한반도 안으로만 고착화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어버렸다고 한다(김종혁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숙신옹주의 친영(親迎)이 한국의 가족제도를 규정

1433년(세종 17년) 태종의 13녀인 숙신옹주의 친영(親迎: 신랑이 신부 집에 가 결혼식을 올리고 신부를 시댁에 데려가 시집살이를 하는 것)이 한국의 가족제도를 새로이 규정하게 된다. 고구려와 고려는 서옥제(壻屋制), 데릴사위제, 서류부가혼(壻留婦家婚) 즉 남편이 처가에서 사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세종은 동생인 숙신옹주의 결혼을 친영례로 한다. 즉 성리학의『주자가례』에 따른 ‘중국적’ 결혼제도를 수입해 온 것이다. 그리고 18세기에는 이것이 일반화된다. 세종의 친영 결정은 지배층에서부터 처가살이의 전통을 시집살이라는 유교적 결혼제도로 전환해 부계 중심의 가부장적 유교문화 확산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김일권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조광조의 거듭된 상소로 인해 도교의 국가제사기관인 소격서가 혁파된 후, 성리학 일변도의 원리주의 문화가 자리를 잡은 것은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나쁜 전통을 형성시킨 결정이었다고 한다.

- 105명의 선정자들이 뽑은 역사적 결정이기 때문에 각각의 결정들이 겹치고 가중치가 부여된 결과, 결정들 사이에서도 ‘중요한’ 순위가 매겨졌다. 부록 ‘한국사 40대 중요 결정’에서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했다. 1위인 ‘한글 창제 결정’에서 40위 ‘문익점 목화 수입’까지가 “최고의 역사적 결정”으로 선정되었다. 나머지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순위 외’ 결정들이다. 10위까지의 순위와 그 의의를 간략화하면, 다음과 같다.

1위 한글 창제(1443)―민족주체성 확립의 기틀
2위 위화도 회군(1388)―한국의 한반도화 고착과 조선 건국
3위 나당동맹(648)―삼국통일, 한민족이 중국문명권에 편입
4위 5.16쿠데타(1961)―개발독재 근대화의 시작
5위 동학농민운동(1894)―근대적 민중운동의 원형
6위 고려 광종의 과거제 도입(958)―신분 세습 귀족사회에서 능력주의 사회로ㆍ시험지 옥 한국의 기원,
7위 한국전쟁(1950)―분단의 고착화와 냉전 문화 탄생
8위 장수왕의 평양 천도(427)―한국의 한반도화 촉진과 고구려의 전성기
9위 박정희 암살(1979)―장기집권 종식과 민주화의 기회
10위 『동의보감』 편찬(1596)―가장 성공적인 민생 프로젝트와 한국의 의술 확립

▷▷중요한 역사적 결정의 순위를 비교해보면 한국사의 결정적 국면을 연출한 역사적 선택들의 영향력이 얼마만큼 ‘오랫동안’ 유지가 되면서 우리들의 삶을 강제하는지를 실감할 수가 있다. 가령 15위인 ‘단독정부 수립(1948년)’과 33위 ‘반민특위 습격’은 각각 ‘남북분단 확정’과 ‘친일 청산 좌절’이라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원죄’를 안겨주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냉전과 수구문화의 수렁에서 허덕이게 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2위인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 3위인 나당동맹, 8위인 장수왕의 평양 천도, 38위인 묘청의 난 등이 모두 고조선의 강역이던 북방의 만주에서 발을 빼는, ‘아주 오래된 대한민국 한반도화의 궤적’이었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또한 7위인 한국전쟁, 15위 단독정부 수립, 16위 김구 암살, 29위 한반도 분할점령 등과 같은 한국사의 슬픈 역사적 결정들도 똑같은 교훈을 주고 있다. 바로 ‘우리끼리 싸우면 우리만 좁아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되므로, 역사에서 배우라’는 말을 통감하게 된다.

목차

제 1부 고대
001 위만의 쿠데타(BC 194년) ― 최초의 쿠데타: 신화의 시대는 끝나고
002 고구려 불교 승인(372년) ― ‘불국토’로 가는 길
003 고구려의 중원 정벌(395년) ― 대륙을 달리다
004 평양 천도(427년) ― 한반도와 만주 동시 경영의 계기
ㆍ한국사 깊이 읽기_수도를 바꾼다, 시대를 바꾼다-천도
005 웅진 천도(475년) ― 백제의 멸망을 막은 결단
006 진흥왕의 성왕 배신과 한강 유역 진출(553년) ― 진흥왕이 북한산에서 본 것은…
007 선덕여왕 즉위(632년) ― 모란꽃 그림에는 피의 향기가…
008 연개소문의 쿠데타(642년) ― 고구려의 혼을 살린다?
009 나당동맹(648년) ― 한반도의 운명을 가른 역사적 결정
010 소정방의 신라군사 처벌에 반발한 김유신(660년) ― 나당전쟁의 실마리
011 원효의 당 유학 포기(661년) ― 해골 물에서 얻은 것은
012 남건의 남생에 대한 반란(666년) ― 고구려의 멸망을 불러온 형제 간 싸움
013 경덕왕의 중국화 정책(757년) ― 동방예의지국으로의 첫걸음
014 장보고 암살(846년) ― 스러진 해상왕의 꿈

제 2부 고려시대
015 왕건의 궁예 축출과 고려 건국(918년) ― 준비된 쿠데타: 승자가 쓴 역사
016 왕건의 대신라 햇볕정책(918년) ― 평화적 통일을 위한 결단
017 신검의 쿠데타(935년) ― 후백제의 멸망을 부른 아들의 반역
018 노비안검법 실시(956년) ― 최초의 민권 개혁?
019 과거제 도입(958년) ― 900년간 이어온 ‘인재 등용의 혁명’
020 시무28조 채택(982년) ― 유교국가로의 길
021 서희의 강동 6주 획득(993년) ― 한국사 최고의 협상
022 서경 천도 무산과 묘청의 난(1135년) ― 서경에 심은 황제의 꿈
023 무신의 난(1170년) ― 피가 피를 부르는 폭압의 시대
024 고려 고종의 강화도 천도(1232년) ― 국난 극복을 위해? 정권 연장을 위해!
025 팔만대장경 조판(1237년) ― 한국사의 불가사의
026 원종의 쿠빌라이칸 접견(1260년) ― 강화도에서 나와 팍스 몽골리카로
027 삼별초항쟁(1270년) ― 최초의 민중운동?
028 일연의 삼국유사(1285년경) ― 또 하나의 역사
029 안향의 성리학 수입(1288년) ― 거대한 뿌리 심겨지다
030 이제현의 입성책동 반대운동(1323년) ― 홀로 나라를 지키다
031 공민왕의 반원정책(1352년) ― 익숙한 것에서의 결별
032 문익점의 목화 수입(1363년) ― 널리 세상을 따뜻하게 하다
033 공민왕 시해(1374년) ― 고려 부흥의 꿈은 저물고
034 정도전과 이성계의 만남(1383년) ― 개인과 개인의 만남? 문과 무의 동맹!
035 위화도 회군(1388년) ―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ㆍ한국사 깊이 읽기_한국사의 정치폭력
036 개혁세력의 토지개혁 추진(1390년) ― 회귀형 개혁

제 3부 조선시대
037 한양 천도(1394년) ― 한강으로 물갈이 가자
038 이방원의 1차 왕자의 난(1398년) ― 이방원 vs 정도전
039 조선왕조실록 편찬 결정(1409년) ― 실록 편찬 결정을 둘러싼 갈등
040 양녕 아닌 세종에 왕위 계승(1418년) ― 조선은 어떤 국가여야 하는가?
041 대마도 정벌(1419년) ― 왜구의 본거지를 쳐라
042 세종의 공법 개혁 및 후퇴(1430년) ― 국민투표로도 부족했던 개혁 기반
043 4군 6진 개척(1433년) ― 한반도 강역의 완성
044 세종의 갑인자 주조(1434년) ― 위대한 금속활자, 그러나…
045 세종의 숙신옹주 친영 결정(1435년) ― ‘시집살이’의 기원
046 한글 창제(1443년) ― 글 또한 만 백성이 공유할 권리가 있다
ㆍ한국사 깊이 읽기_창조와 발명
047 계유정난(1453년) ― 수양대군 vs 김종서
048 조광조의 소격서 혁파(1518년) ― 무엇이 미신인가?
049 조광조 일파 제거(1519년) ― 젊은이들의 좌절
050 이순신, 전라좌수사로 임명되다(1591년) ― 임진왜란을 막아낸 인사행정
051 신립의 탄금대 선택(1592년) ― 피할 수 있었던 패배
052 고경명의 금산 선택(1592년) ― 한양으로? 고향으로?
053 여진족의 원군 제의를 조선정부가 거절(1592년) ― 병자호란의 불씨를 남기다
054 동의보감 편찬 결정(1596년) ― 독자적 의학체계를 구축하다
055 쇄환사 파견(1607년) ― 다시 내민 화해의 손
056 광해군의 대동법 실시(1608년) ― 200년이 걸린 개혁
057 이수광의 서양문물 소개(1614년) ― 매우 귀중한 ‘주워들은 이야기’
058 광해군, 후금에 국서 전달하다(1622년) ― 고독한 결단은 배신을 부르고
059 인조반정(1623년) ― 조선은 오랑캐 나라가 아니다?
ㆍ한국사 깊이 읽기_명분이냐? 실리냐?
060 안용복의 독도 수호(1696년) ― 홀로 국토를 지키다
061 이승훈의 천주교회 창설(1784년) ― 취사선택의 실패
062 신해통공(1791년) ― 왕의 필요와 백성의 필요
063 정조, 사망 직전 김조순에게 앞날을 부탁하다(1800년) ― 세도정치의 문을 열다
064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제작(1861년) ― 한평생 걸려 정리한 한반도의 모든 것

제 4부 근ㆍ현대
065 경복궁 중건(1865년) ― 경복궁에 비친 낙조
066 대원군의 쇄국정책(1866년) ― 과거에 매달렸던 실용주의
067 강화도조약(1876년) ― 역시 믿을 수 없는 회담
068 갑신정변(1884년) ― 개혁의 쿠데타: 가장 짧은 쿠데타
069 동학농민운동(1894년) ― 자주를 외친 대중의 첫 목소리
070 신분제 철폐(1894년) ― 수천 년 동안의 사슬
ㆍ한국사 깊이 읽기_세상의 절반, 여성에 관한 한국사의 결정들
071 한글의 공식문자화(1894년) ― 450년 만의 햇볕
072 명성황후 시해(1895년) ― 누가 이 여인을 죽였는가?
073 독립협회와 독립신문(1896년) ― 개화와 친일 사이
074 메가타의 화폐 정리 사업(1904년) ― 103년 전의 IMF
075 이토 히로부미 암살(1909년) ― 하얼빈의 총성
076 33인의 독립 선언(1919년) ― 3.1 운동의 불씨를 만든 명망가들의 선언
077 임정 수립(1919년) ― ‘임시’로 만든 ‘조국’
078 한반도 분할 점령(1945년) ― 전쟁의 불씨
079 반탁운동 결정(1945년) ― 엘리트의 기만
080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1948년) ― 찢겨진 산하
081 농지 개혁(1949년) ― 미흡한 새 세상
082 김구 암살(1949년) ― 거인의 죽음
083 반민특위 습격(1949년) ― 원죄의 씨를 뿌리다
084 한국전쟁(1950년) ― 한반도 냉전 심화의 결정적 계기
085 북한군의 3일 서울 지체(1950년) ― 전장의 안개에 싸여?
086 유엔의 한국전 개입 결정(1950년) ― 소련 안보리 불참의 의문
087 맥아더 해임(1951년) ― 맥아더, 누구를 위하여 전쟁하려 했나?
088 한미동맹(1953년) ― 이승만의 벼랑 끝 전술
089 4.19 교수 데모(1960년) ― 민중 승리의 결정적 계기가 되다
090 5.16(1961년) ― 후퇴란 없다?
091 베트남 파병(1964년) ― 동맹의 덫, 혹은 복음
092 한일회담(1965년) ― 한일관계, 숙제는 이어지고
093 경부고속도로 착공(1968년) ― 압축적 경제 발전을 가능하게 한 결정
094 한글 전용(1968년) ― 한글 vs 한자
095 10월 유신(1972년) ― 가지 않았어야 할 길
096 박정희 암살(1979년) ― 장기 독재시대, 20년 만에 막을 내리다
097 12.12(1979년) ― 악(惡)의 반복
098 광주민주화운동(1980년) ― 민주화운동의 위대한 기념비
099 올림픽 유치 성공(1981년) ― 벽을 넘어 한국을 세계에 알리다
100 이병철 반도체 생산 결정(1982년) ― 반도체 강국으로의 도약
101 6.10 수용한 6.29(1987년) ― 한국의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게 된 절반의 승리
102 후보 단일화 실패(1987년) ― 복마전을 열다
103 카터 방북(1994년) ― 현대 한국사 최고의 결정
104 IMF 구제금융 신청(1997년) ― 세계화의 덫
105 남북정상회담(2000년) ― 적대적 남북관계, 화해와 협력관계로 전환되다
ㆍ한국사 깊이 읽기_만남의 순간들
106 노무현 탄핵(2004년) ― 쿠데타인가? 정의 실현인가?
107 수도 이전 무산(2004년) ― 관습 헌법의 벽
108 부계성 강제조항 폐지(2005년) ― 동방예의지국은 없다
ㆍ한국사 깊이 읽기_가장 많은 한국사 중요 결정을 내린 사람은?
부록 한국사 40대 주요 결정

저자소개

함규진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저자의 맨 처음 전공은 법학이었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해서 교수님께 “학문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기초적인 교양과 지식을 쌓으려면 어떤 책부터 읽으면 좋을까요?” 하는 질문을 드리자 “법대에 들어왔으면 사법고시에 필요한 책만 봐라. 그것 말고는 볼 책이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한다. 그 후로 법학 공부에 정이 붙지 않았던 저자는 대학도 학과도 바꾸고 새출발을 하게 되었다.
저자가 새로이 택한 곳은 성균관대학교였다. 처음엔 행정학과로 입학했으나, 대학원은 정외과로 갔다. 정외과에서도 정치사상을 택했고, 다시 그 중에서도 동양 및 한국정치사상에 중점을 두기 시작해서 결국 박사학위까지 받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국가경영전략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언제나 바뀌는 사람들, 그리고 사람들을 바꾸고 마침내는 그 사람들에 의해 바뀌어 버리는 힘인 사상과 역사의 도도한 흐름에 매혹된 그는 ‘역사와 그 속의 인간’이라는 주제로 활발한 연구와 집필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왕의 투쟁』『다시 쓰는 간신열전』『역사법정』『세상을 움직인 명문vs 명문』이 있고, 논문에는「예의 정치적 의미」「유교문화와 자본주의적 경제발전」「정약용 정치사상의 재조명」등이 있다.

도서소개

한국사의 성공과 실패를 가른 역사적 선택

만일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하지 않았더라면? 한글이 창제되지 않았다면? 일본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면?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지 않았다면? 한국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이와 같은 한국사의 운명을 바꾼 선택에 관하여 정리한『108가지 결정』.

이 책은 2004년 1월「월간중앙」별책부록인 <역사탐험>에 게재됐던 역사적 결정 102개에 몇 가지를 더해 묶은 것으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역사학자 105명이 선택한 역사적 흐름을 가르는 결정적 선택을 소개한다. 한국사에 영향을 미친 역사적 결정들을 순위와 함께 시대순으로 소개하고 일부분은 작은 주제로 묶어 비교했다.

신화시대 이후 한국사를 중점적으로 실증적 토대가 굳건한 것들을 우선적으로 다루었으며, 역사에 대한 통찰과 해석의 가치, 결정을 내리는 주체와 반대 세력 사이의 갈등과 고뇌를 함께 담았다. 때로는 사소한 결정도 역사의 흐름을 좌우하며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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