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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당평전

사명당평전

  • 조영록
  • |
  • 한길사
  • |
  • 2009-07-17 출간
  • |
  • 718페이지
  • |
  • 153 X 224 mm
  • |
  • ISBN 9788935661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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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사명당은 자신의 안위를 구하지 않고
남들이 꺼려하는 일들을 자진하여 수행하였다.
사명당의 실천적 삶은 선과 교를 뛰어넘는 보살행이었으며,
유와 불을 아우르는 대도행이었다.」

설화적으로 덧칠된 사명당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다

사명당에 대한 공식적인 역사기록은 그의 임진왜란 때의 활약에 초점을 맞추곤 한다. 호국불교를 대표하는 한 인물로서 서산대사의 휘하에서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여기에 전쟁 후 일본과 강화를 맺는 데에 역할을 한 것이 덧붙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숭유억불의 조선에서는 “사명당이 승려라는 이유로 그의 공적에 대한 기술에 인색”(33쪽)했다. 결국 사명당이 이룬 업적은 정당하게 평가?기록되지 못하고 설화로 흡수되었다. 그가 도술을 부려 이를테면, 달군 무쇠 방에 서리가 내리게 했다든지, 연못에서 구리방석을 탔다든지 등의 불가사의한 이야기들이 널리 퍼졌다. 사명당 관련 문집이나 몇몇 학위논문이 발간되어 근래에는 사정이 좀 나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일반 대중들에게 사명당은 홀대와 환상 두 극단 사이를 오가고 있다.

『사명당평전』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명당의 삶과 사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전쟁과 축성, 불교와 시문 그리고 외교협상 및 불교교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매우 폭넓고 다양한 삶”(35쪽)을 살았던 사명당의 전체적인 모습이 환하게 드러난다. 독자들은 장수(將帥)로서의 사명당은 물론, 조선?일본?명나라 사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던 외교가로서의 사명당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7년전쟁을 연구하는 학도들에게는 유성룡?이순신 등 잘 알려진 인물들에 더해, 보다 국제적인 시각에서 왜란을 조망하는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라 믿는다. 또한 두 차례나 깨달은 데서 배어나오는 불교적 가르침, 당대에 명성이 자자했던 초서(草書) 글씨, 여기저기 흘리듯 쏟아낸 수많은 시 등 종교적?사상적?예술적 향취에 젖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종합적으로 사명당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해내기 위해, 『사명당평전』은 7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으로 사명당의 삶을 담고 있다. 저자 조영록은 사명당기념사업회 학술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10여 년에 걸쳐 수집한 사명당 관련 자료를 엄선해 이 책에 집대성했다. 사명당이 남긴 흔적은 시간 순서에 따라 총18장으로 구분되어 세밀히 고증되고 있다. 그가 67세에 입적한 것을 감안하면, 단순히 산술적으로만 계산해도 각 장당 4년이 채 안 되는 기간을 다루고 있다는 셈이다. 또한 130여 컷의 사진자료 중에는, 심지어 사명당의 세필을 확대해서 만든 현판 글씨(378쪽)까지 포함되는 등 사명당이 남긴 아주 작은 흔적까지 망라하려 했다. 그간 사명당이 설화적으로 채색되었던 데에는 자료가 부족했던 이유가 컸다. 『사명당평전』은 이 점을 방대한 자료로 무게감 있게 불식시키고 있다.

조선을 구한 탁월한 외교력

사명당이 조선과 일본 사이를 오가며 보여준 외교적 수완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사명당은 자신이 가진 조건, 즉 승려라는 입지를 일본과 대화의 물꼬를 트는 데에 십분 활용했다. 비록 종파는 서로 달랐지만 크게 불교라는 테두리 안에서 동류의식을 가지며 외교적 고리를 만들었던 것이다. 서생포회담의 대화 파트너였던 가등청정이 “금강산에 귀승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261쪽)며 부채를 보내 친절을 표시하는가 하면, 종군 승려인 일진은 사명당을 “같은 산인(山人)이라 하여 자못 은근한 정을 보였다”(297쪽)고 한다. 격렬한 전쟁으로 인해 양국 간의 감정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 외교적 대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이 같은 고리는 매우 중요했다.

더욱이 일본의 새 실력자 덕천가강과 회담하러 갈 인물에 제도정치권의 인물이 아니라 사명당 유정이 선정된 것을 보면, 그에 대한 선조 임금 및 조정의 신망이 매우 두터웠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성리학의 나라 조선에서 이에 대한 비판이 없지 않았다. “불공대천의 원수와 강화하는 것만도 수치스러운 일인데, 또 일개 사문(沙門)의 힘을 빌려 일을 이루려 하다니, 고기 먹는 사람들의 꾀가 비루하다 하겠다.”(445쪽)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유?불을 막론한 대체적인 여론은 사명당을 신뢰했다. 어느 무명 시인은 다음과 같이 읊기도 했다. “묘당에 세 정승이 있다 말하지 말라, 나라의 안위는 한 승려에 달렸노라.”(453쪽)

아군과 적군을 아우르며 호의를 이끌어낸 사명당은 이를 외교적 성과로 연결시켰다. 덕천가강과 평화협상을 성공적으로 해내고, 일본에 끌려갔던 조선 포로 수천 명을 데리고 돌아온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또 하나의 백미는 사명당의 외교 데뷔 무대인 제1차 서생포회담이다(제7장 제1절). 당시 전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강화회담이 진행되었다. 그런데 명나라는 전쟁을 빨리 끝내려는 마음에 조선을 일본의 속국으로 인정한다는 내용의 일본 측 강화조건을 순순히 의제로 받아들였다. 물론 조선에는 이러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한반도의 운명이 자신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강대국끼리의 협상테이블에서 결정되는, 우리에게는 익숙한 비극적 장면이었다. 그런데 여기에 사명당이 제동을 걸었다. 사명당은 가등청정을 만나기 전에 희팔랑과 대화를 나눠 명일 강화협상의 진실을 파악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명나라와 일본 사이에 비밀리에 진행되던 교섭이 조선 조정에 보고되었고, 명일 강화교섭은 파탄에 이르렀다. 사명당의 명민한 외교 활동으로 나라를 한 번 건진 것이다.

시와 글씨로 써내려간 삶의 숨결

사명당은 생전에 많은 시와 글씨를 남겼다. 그는 한때 자신의 호를 광한(狂漢), 즉 미치광이라 할 정도로 예술적 기질이 짙었다. 벗들과 노닐 때는 물론이고, 선 수련을 하며 운수행각을 할 때, 외교 임무를 맡고 바다를 건널 때 등 삶의 여정 곳곳에서 시를 읊었다.

때로는 흥에 겨워,

젖은 구름 다 걷히니 산은 목욕한 것 같고
백옥과 연꽃 같은 천만 봉우리일세.
홀로 앉았으니 몸에 날개가 돋친 듯하고
만리장공에 시원한 바람 탄 것 같구나. (122쪽)

때로는 분에 못 이겨,

근래로 쇠해가는 머리털 해마다 더 흰데
또 남쪽 바다의 8월 뗏목을 띄웠네.
팔 굽히고 허리 꺾는 일 내 뜻이 아니건만
어찌하여 머리 숙여 원수 집에 들어가는가. (471쪽)

그는 노래하고 노래했다. 한번은 덕천가강의 큰 아들에게 선시 한 수를 지어주기도 했다. 사명당은 현실적 논리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국제 외교현장에서 유유히 존재론적 성격의 탈속적 노래를 읊는다.

일태(一太)는 공간이라 다함이 없고
적지(寂知)는 냄새도 없으며 또한 소리도 없다.
지금 설법 듣겠다고 무엇을 번거롭게 물을 것인가
구름은 청천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거늘 (505쪽)

사명당은 또 글씨, 특히 자유분방한 필체의 초서에 능했다. 유성룡이 “초서를 잘하여 총림(叢林)에서 뛰어났다”라고 할 정도였고, 불교계에서도 부휴(浮休)의 글씨와 함께 2대 명필로 평가되었다. 또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에 다녀온 청천 신유한은 “(조선인으로서) 일본인의 입에 이름이 전해 내려오고, 필적이 보물처럼 간직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사명뿐일 것이다”(381쪽)라고 전했다. 왜장 가등청정도 사명당에게 부채를 보내 그의 글씨를 받았고, 일본에 회담하러 갔을 때에는 일본인들이 달마의 상을 그려와 찬을 부탁하여 써준 것만도 여러 편이 된다(화보 22쪽). 현재 일본 흥성사에는 사명당이 남긴 선어 유묵이 여러 편 소장되어 있다(화보 24, 25쪽).

진리의 길 구세제민의 생애

사명당을 기리기 위해 후세에 지어진 ‘표충비각’은 나라에 위급한 일이 생기면 땀을 흘린다고 한다. 밀양에서 나고 자란 저자 조영록은 어린 시절 이 땀 흘리는 비석과 『임진록』의 설화적인 이야기들을 통해 사명당을 접하면서 민족에 대한 나름의 생각이 형성되었다고 말한다. 오랜 연구와 폭넓은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저자는 객관적 사실을 씨줄과 날줄로 하여 사명대사의 평전을 엮어냈다. 이것은 이른바 ‘과학적’ 시대를 맞아 점점 잊혀져가는 설화적 사명당을 외교적?예술적?사상적으로 탁월했던 사명당으로 그려냄으로써, 사명당이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도록 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오래전에 이미 ‘입멸하여 큰 조화에 순응한’ 말이 없는 자, 사명당. 불자로서 세상에 자취를 남기길 꺼렸던 그였지만, 여기 끈질기게 살아남은 그의 삶의 조각들이 있다. 그 끈질김은 아마도 진실을 추구하고 중생을 사랑했던 한 비범한 혼의 무게가 그 조각들에 실려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사명당의 삶에 정신을 담금질해 독자들의 삶을 벼리시길 바란다.

깎아지른 절벽에 발붙일 곳 없어도
목숨을 놓고 몸을 잊고 의심 없이 나가라.
다시 칼날 향해서 한번 몸을 뒤쳐야만
비로소 공겁 이전의 일 알리라. (646쪽)

목차

머리말 | 진리와 민족을 향한 대도행

1 사대부 자손의 출가
2 세간의 풍류 산사의 고요
3 두 번째 돈오
4 7년전쟁의 시작
5 평양성 탈환전
6 서울로 전진, 전진
7 가등청정과의 회담
8 적진 정탐
9 다시 짙어지는 전운
10 7년전쟁의 끝
11 변방에서의 행적
12 바다 건너 일본으로
13 경도로 향하는 뱃길
14 동포의 눈물
15 설화 속의 ‘영웅’ 사명당
16 귀국, 그리고 마지막 봉사
17 깨달음을 널리 펴고
18 구국의 큰스님으로 남다

사명당 연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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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1936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일본 경도대학 및 중국 절강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하고 지금은 동국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중국근세정치사연구』(1988), 『근세 동아시아 삼국의 국제교류와 문화』(2002), 『중국 근세지성의 이념과 운동』(2002), 『장보고 선단과 해양불교』(2004) 등이 있고, 엮은 책으로는 『중국의 강남사회와 한중교섭』(1997), 『한중문화교류와 남방해로』(1997), 『사명당 유정― 그 인간과 사상과 활동』(2000), 『朝鮮義僧將·松雲大師と德川家康』(曺永祿·仲尾宏 공편: 東京, 2002) 등이 있다.

도서소개

10년 연구 끝에 되살린 인간 사명당의 일생 설화적으로 덧칠된 사명당을 객관적으로 복원하다

우리시대 인문교양서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는『이상의 도서관』시리즈. 역사, 철학, 과학, 음악, 미술, 문학, 정치, 사회 등 인문학 전반에 걸쳐 내용의 폭과 깊이를 갖춘 교양서를 지향하는 시리즈이다. 오늘 우리의 문제를 직시하는 데 필요한 사유의 힘을 제공하고, 독서의 즐거움 속에 실현되는 폭넓은 교양을 완성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제27권 《사명당평전》. 이 책은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사명당의 삶과 사상을 객관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전쟁과 축성, 불교와 시문 그리고 외교협상 및 불교교류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매우 폭넓고 다양한 삶을 살았던 사명당의 삶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장수로서의 사명당은 물론, 조선·일본·명나라 사이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던 외교가로서의 사명당을 만날 것이다.

72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이 책은 사명당의 온전한 모습을 복원한다. 저자 조영록은 사명당기념사업회 학술담당 임원으로 활동하면서 10여 년동안 사명당에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였다고 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총 18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130여 컷의 사진자료 중에는 사명당의 현판 글씨가 포함되는 등 사명당이 남긴 작은 흔적까지 총망라한다. 이 책은 자료가 부족하여 설화적으로 채색되었던 사명당을 방대한 자료로 무게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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