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겨울, 어느 신문사의 오래된 철제 캐비닛 안에서 두툼한 서류 뭉치가 발견된다. 1959년 당시 부통령이었던 이기붕의 집을 드나든 사람들의 이름과 그들이 들고 온 물품이 자세히 적힌 비밀 장부였다. '이기붕가 출입인명부'라는 제목이 붙은 그 장부에는 급하게 써 내려간 필체로 장미, 깨소금, 멧돼지 뒷다리, 병아리, 수박, 만둣국, 바늘쌈지... 씨날코 등의 시시콜콜한 물품명이 기록되어 있었다.
더 놀라운 것은 그 물품을 누가 몇 시 몇 분에 몇 개를 들고 왔는지 세세하게 적혀 있다는 사실. 이른바 이기붕 리스트, 혹은 이기붕 X 파일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 비밀 장부를 손에 넣은 저자는 켜켜이 쌓인 책 먼지를 털어가면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터질 것 같은 호기심을 품은 채 읽어간다.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라는 책에서 현대성의 형성 과정을 그려낸 저자 김진송은 이번엔 이기붕가의 비밀 장부를 나름의 추리와 상상력으로 분석하고, 그 과정에서 겪는 역사에 대한 고민과 회의, 갈등을 고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