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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손정목이 쓴 한국 근대화 100년

  • 손정목
  • |
  • 한울
  • |
  • 2015-10-05 출간
  • |
  • 248페이지
  • |
  • 153 X 224 mm /381g
  • |
  • ISBN 978894606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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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서울 격동의 50년을 증언했던 손정목,
한국 근대화 100년을 말하다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와 『한국도시 60년의 이야기』를 쓴 손정목 전 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10년 만의 신간이다. 1928년에 태어나 일제 강점기, 광복, 한국전쟁, 3·15 부정선거, 서울의 도시 개발 등 근현대사의 굵직한 사건을 직접 겪으며 역사의 당사자이자 학자로서 자신이 기억하고 기록한 것을 한국 근대화 100년이라는 화두로 묶은 책이다.
저자의 전작들이 개발과 파괴, 타협과 음모가 종횡했던 서울의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다뤘다면, 이번 책에서는 일제 강점기 징병제에 항거하기 위해 줄담배를 피웠던 중학교 학생들의 사연, 통금 해제로 인한 사회상의 변화, 1960년 정·부통령 선거의 실무자로서 바라본 3·15 부정선거의 전모 등을 풍속, 도시, 정치라는 키워드로 정리했다.
한시도 펜을 놓지 않았던 한 학자가 오랜 시간 한국의 변화상을 추적해 기록한 이 책은 역사라는 거인의 다양한 표정을 읽고 싶은 보통의 시민들에게 좋은 독서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개인의 기록은 어떻게 역사가 되는가?
손정목이 바라본 한국 근대화 100년


손정목은 서울이 격변하던 시기, 그 한복판에서 도시계획국장으로 근무하며 현대 서울의 도시 개발에 참여했다. 그는 1966년 잡지 《도시문제》 창간에 참여해 1988년까지 23년간 편집위원을 맡았고,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자리를 거치며 서울의 거의 모든 것을 목격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라는, 1960년대 이후 서울의 개발사를 총망라한 방대한 저술로 남겼다.

서울의 역사 혹은 국내의 도시개발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그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도시사 전공자라면 누구나 거치는 관문 같은 존재인 그가 새 책을 냈다. 지난 약 100년간 한국이 근대화를 겪은 과정을 담은 책이다. 개발과 파괴, 타협과 음모가 종횡했던 서울의 현대사를 입체적으로 다뤘던 손정목 교수가 이번 책을 통해 그간 못다 한 한국과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풍속, 도시, 정치라는 키워드로 엮었다.

중학생들이 줄담배를 피운 이유: 풍속의 형성
“식민국 일제를 위해서 죽는다는 것은 문제가 있었다”


1부 ‘풍속의 형성’은 담배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담배를 피웠다고 양심선언(?)을 했는데, 사실 이런 ‘조기흡연’은 1940년대 조선의 중학교에선 무척 흔한 풍경이었다고 한다. 여기를 보고 저기를 봐도 학생들이 담배를 입에 물고 있었다. 왜 그랬을까? 때는 일제 강점기였다. 당시 조선총독(미나미 지로)은 재임 중 일본 천황이 조선에 ‘행행(行幸)’하게 되길 염원해 전 조선인을 충분히 ‘황민화된 신민’으로 만드는 것을 통치의 제1의 목표로 세웠다. 그리고 그 사전 작업으로 조선 반도에 대한 전면적인 징병제 시행을 추진했으며 이는 ‘조선 지원병 제도’라는 이름으로 1938년 공포된다.

저자를 포함한 당시의 모든 중고등학생이 이 징병제의 대상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졸지에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될 운명에 처한 그들이 택한 저항법은 바로 흡연이었다. 그들은 담배를 피움으로써 일제 징병제를 부정했다. 비장하면서도 웃기는 ‘끽연사’이지만 당시 수많은 청년이 걸었던 길이다. 저자는 이 장 끝에서 당시 자신과 전 조선의 동급생들의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을 반성한다. 얼핏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일 것만 같았던 담배 이야기가 음울했던 일제 강점기를 묘사하는 역사적 상징이 되었다.

이런 ‘흡연의 풍속’은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조선인의 황민화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일본인 지도층이 부르짖는 내선일체 사상이 조선인 머릿속에 주입되어 있었다면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건 전쟁터에서 죽건 문제 될 것이 없는 일이었다. 조선인 스스로 일본의 황민임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군의 총알받이가 되기 싫다고 저항하고 항거한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의 흡연은 그런 것이었다. _ 30쪽

지금은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유적지처럼 변해버린 다방은 1930년대 소위 경성 문화사의 제2기 때만 하더라도 모든 유·무형의 문화가 모이는 용광로였다. ‘아오키도’, ‘후다미’ 등 근대적 다방의 효시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이 나타난 것은 1910년대 이후이지만, 명동·소공동·충무로 등 지금까지도 온갖 유흥과 문화의 중앙 무대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에 본격적으로 다방이 들어선 것은 1933년 천재 시인 이상이 종로에 ‘제비’를 개업한 이후부터이다. 극작가 유치진, 배우 복혜숙, 토월회의 연학년 등이 다방을 개업한 것도 이때였다. 당시 다방은 ‘모든 문화는 다방으로 흐른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의 문예계를 선도했다.

이후 다방은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며 폐허로 변한 서울과 함께 모든 번화와 영광을 상실한다. 하지만 서울 시내의 다방은 1965년 1000개를 돌파하며 1993년 다방 1만 개의 신화를 달성한다. 불과 2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시내에만 다방 1만 개가 성업했던 것이다. 그러던 다방이 1993년부터 2008년까지 15년 사이에 2500여 개로 급감했다. 그 많던 다방은 다 어디 갔을까? 저자는 다방의 몰락을 늘 바삐 움직이는 시민들의 생활 습관의 변화에서 찾는다. ‘너 나 없이 바쁘’니 다방 갈 시간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이 땅에 근대가 태어났을 때: 도시의 탄생
“전류가 한 번 흐르니 온 천지가 번쩍이도다”


도시민의 삶을 규정하는 몇 가지 필수 요소들이 있다. 도시가스, 수도, 전기. 먹을 것을 줄이고 입는 것을 줄일 수는 있어도, 덥히고 마시고 켜는 일은 도시민의 삶 속에서 영원히 제외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삶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이 땅에 이런 것들이 처음 도입되어 한국인의 일상에 침투한 때는 언제일까? 그중에서도 시민의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전기는 한국 근대화의 역사에서 어떤 경로로, 어떤 모습으로 등장했을까? 정답은 19세기에서 20세기로 넘어갈 즈음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여러 가지 개혁을 시도할 무렵이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사실은 따로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런 개혁 중 하나로 진행된 전기 사업이라는 것이 실상은 제국주의 열강과 일제의 야욕에 속아 넘어간 국제사기였다는 것이다.

한국 최초의 전기회사인 한성전기회사가 세워진 것은 1898년 1월이다. 한성전기회사는 한미전기회사라는 이름으로 사명을 바꾼 뒤 일본 재벌 시브사와 에이이치의 ㈜일한와사에 매각되어 훗날 ㈜경성전기라는 새 이름을 얻게 된다. 그리고 이 과정은 근대화에 뒤처진 약소국의 기간산업이 제국주의 강대국의 자본에 어떻게 잠식되어 가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주는 사례이다. 부산도 평양도 인천도 다르지 않았다. 공공영역을 식민국의 이권으로 잠식한 것도 모자라, 일제는 한반도에 있는 모든 전기회사를 겨우 네다섯 개의 회사로 통합해 운영하려는 획책을 세우기까지 한다. 전력을 통제함으로써 지배권을 강화하려는 속셈이었다. 이렇게 합쳐진 전기회사 중 분단 후 남한에 남은 전력 3사를 통합한 것이 지금의 ㈜한국전력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전기야말로 ‘인류의 생활양식 전반을 근본적으로 바꾼 신시설’이었다. 이 땅 안의 근대화는 전등으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시대: 정치의 작동
“그때부터 선거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1960년 3월 15일 저녁 8시경이었다. 저자가 지도과장으로 있던 경북 도청에 전화가 걸려왔다. 한창 선거 개표로 바쁜 경북 도청에 전화를 건 것은 자유당 중앙 간부 최병환. ‘대구는 대표적인 야당 도시로 알려져 있는데 거기서도 자유당 표가 너무 많으면 부정선거를 한 증거가 뚜렷하니 자유당 표를 크게 줄여서 발표하라’는 지시였다. 3·15 부정선거로 알려진 제4대 대통령 및 제5대 부통령 직접선거의 풍경은 다른 도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1960년의 선거는 이승만 대통령과 자유당 세력의 재집권을 도모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정치 일정이었다. 이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향후 5년의 집권을 보장할 수 있었다. 자유당은 역대 선거 중 가장 노골적이고 극렬한 부정을 선거에 동원했다. ‘4할 사전투표’, ‘공개투표’, ‘3인조·9인조 투표’, ‘환표’, ‘혼표’, ‘야당 참관인 축출’, ‘투표용지 두 배 인쇄’ 등 유권자가 ‘자유당의 각본에 의해 춤추는 꼭두각시’가 되지 않고서라면 벌어질 수 없는 말도 안 되는 선거 작태가 버젓이 자행되었다. 당시 선거 현장의 중심에서 실무를 책임졌던 저자는 그때 직접 목격하고 실행했던 온갖 부정선거의 사례를 책에 자세히 서술했다. 때론 피해자의 억울한 호소보다 그 반대 측의 담담한 고백과 반성이 객관적으로 들릴 때가 있다. 부정선거의 당사자 손정목이 밝히는 3.15 부정선거의 전모는 무엇일까?

“……야당 도시 대구에서 이기붕 표가 80%를 넘지 않도록 조작을 하라.” 그것이 내가 상부로부터 받은 긴급지시였다. 결국 모든 선거구에 개표의 실제에서 자유당의 이승만·이기붕 표 98표 묶음을 만들고, 그 앞뒤로 민주당의 장면 표 한 표씩을 섞어 장면 표 100표라는 식으로 발표를 하도록 긴급지시를 내렸다. 그때부터 선거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_ 174쪽

9장이 이승만과 자유당 세력이 향후 10여 년간 장기집권에 성공한 이후의 정치사와 그 파행을 다뤘다면, 10장과 11장은 그 바로 직전, 일제 패망 후 전국의 행정 공백을 미군과 함께 메운 한국인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즉 강점기 이후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기, 한국의 정치와 행정의 시초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이 시기, 정치와 행정을 장악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소위 ‘한국인 파트너’라는 이름으로 미군정 장관들의 선택을 받은 한국인들은 누구였을까? 정답은 뜻밖에 간단하다. 미국인들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며(영어 가능자),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고 있으며(영·미 유학파), 종교라는 인맥에 포함된 자(개신교 신자). 당시 미군정의 인재 등용 기준은 작금의 인재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의 인선을 두고 저자는 이렇게 일갈했다. “개신교 신자도 아니고 영어에도 능통하지 않았으면 틀림없이 단명했다.” 반세기 전 한반도의 풍경에서 우리가 사는 지금의 풍경이 보이는 것은 비단 편집자만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미군정기가 비록 3년이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기였지만, 당시 정치의 최고 실권자이자 행정의 수반인 민정장관이 연루된 인사파동에 대한 미군정의 입장 표명조차 전혀 보도되지 않았던 점 등을 사례로 들며, 외세의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 가장 왕성하고 활발하게 움직였어야 할 시기에 미군도 한국인도 역사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사실상 손을 놓고 정치와 행정을 방치한 것은 아닌가 하고 자문했다.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라는 11장의 제목이 낮은 탄식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오는 대목이다.

때론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필요하다

“단 한 가지 자위할 것은 이 책에 담긴 글들이 아직까지 나 이외의 누구도 다루지 않은 최초의 것들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을 위안으로 삼으면서 죽는 그날까지 조용히 기다리기로 하자.”_ 6쪽

이 책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 중 중요한 변곡점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개인이 경험한 특정한 주제와 연결해 이야기한다. 빗대자면 흙바닥을 헤치며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수레바퀴에 묻은 흙과 그것이 지나온 궤적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한국사는 이렇다’, ‘근대화는 이렇다’, ‘고로 한국의 근대화는……’ 같은 훈화 말씀이 없다. 무리하게 시대를 해석하고 정의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해둔 역사적 사실을 저자의 개인적인 필치로 써내려갔다.

이 책은 오랜 시간 한국의 변화상을 추적해 기록한 한 학자의 겸손한 연구 결과물이다. 역사를 해석하거나 설명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역사를, 아직 주류 학계에서 다루지 못한 역사의 사각지대를 보여준다. 손정목 교수의 오랜만의 신간인 이 책은 담백한 날것의 역사를 통해 지난 한국사를 ‘보통의 시각’에서 조망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책속으로 추가

8·15 광복은 모든 한국인을 식민의 질곡에서 해방시켰지만 그중에서도 영·미 유학 경험자들이 느낀 해방감은 특별한 것이었다. 우선 예비검속의 두려움에서 해방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들과 가장 친숙한 미국인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한국을 점령해 군정을 실시하게 된 미군들은 언어가 통할 뿐 아니라 종교도 같았고 익숙한 생활문화를 가진 집단이었다. 이묘묵·정일형·조병옥·이훈구·오정수·오천석·김형민(이상 서울), 구자옥(경기)·윤하영(충북)·황인식(충남)·정일사(전북)·최영욱(전남)·최희송(경북) 등이 군정청 본청의 부·처장, 각 도 도지사의 자리를 차지해 이 나라 안 최고의 지배층을 형성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영·미 유학 그룹은 숫자도 적고 또 모든 분야를 망라할 수도 없어, 사법·재무·체신·토목 등 전문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부득이 일본에 유학하고 돌아와 국내에서 경력을 쌓은 인물들을 기용할 수밖에 없었다. _ 212쪽, “10 어제의 요시찰 인물이 오늘의 지배층으로”

미군정 후기를 다루면서 절실하게 느낀 것이 있다. 그것은 그때도 미군정청은 있었고 미국인 부·처장들과 각 도 장관들이 재직하고 있었음은 분명한데, 사실상은 행정의 일선에서 거의 손을 뗀 것이 아닌가 하는 점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안재홍 민정장관이 일으킨 인사파동 당시 미국인 인사행정처장 및 각 도 군정장관의 입장이 전혀 보도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떤 태도를 취한 것인지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인 인사행정처장의 입장에서 자신의 조선인 파트너가 누구인지, 또 각 도 군정장관의 입장에서 자신의 파트너가 누구인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에 관한 반응이 전혀 없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인가? _ 241쪽, “11 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목차

1부풍속의 형성
01내가 담배를 피운 이유: 일제 징병제와 담배
02다방 성쇠기: 1만 개에서 0개로
03불륜 앞에 자유로운 자, 돌을 던져라: 소설 『자유부인』과 박인수 사건
04밤을 허하노라: 경춘가도를 따라 러브호텔이 성시를 이루다

2부도시의 탄생
05종로에 가로등 3좌: 전류가 한 번 흐르니 온 천지가 번쩍이도다
06지하철 1호선 개통일에 울린 총성: 잔잔한 호수에 달이 비치듯 조용히 당겨라
07서울, 서울, 서울: 거대도시의 탄생
08가족계획 사업 이야기: 여보, 우리도 하나만 낳읍시다

3부정치의 작동
09나는 어떻게 부정선거를 치렀나: 3·15 부정선거 이야기
10어제의 요시찰 인물이 오늘의 지배층으로: 미군정기 중앙정부에 참여한 한국인들
11이 나라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미군정기 지방정부가 형성되는 과정

저자소개

저자 손정목은 1928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영남대학(당시 대구대학) 법과 전문부를 졸업했다. 고려대 법학과에 편입하자마자 6·25 전쟁이 발발해 학업을 포기하고 서울을 탈출, 49일 만에 경주에 도착했다. 1951년 제2회 고등고시 행정과에 합격해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957년 예천군에 최연소 군수로 취임했으나 3·15 부정선거에 휘말려 3년간 실직하고 1963년에 행정서기관으로 복직했다. 1966년 잡지 《도시문제》 창간에 참여해 1988년까지 23년간 편집위원을 맡았다. 1970년부터 1977년까지 서울특별시에서 기획관리관, 도시계획국장, 내무국장 등을 역임했다. 1977년 서울시립대학(당시 서울산업대학) 부교수로 부임해 교수·학부장·대학원장 등을 거쳐 1994년 정년퇴임했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 위원, 서울시 시사편찬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도서소개

『한국 근대화 100년』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렀는지, 그 과정 중 중요한 변곡점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개인이 경험한 특정한 주제와 연결해 이야기한다. 빗대자면 흙바닥을 헤치며 굴러가는 거대한 수레바퀴 자체에 주목하기보다는, 그 수레바퀴에 묻은 흙과 그것이 지나온 궤적을 꼼꼼하게 묘사한다. 그래서 ‘한국사는 이렇다’, ‘근대화는 이렇다’, ‘고로 한국의 근대화는……’ 같은 훈화 말씀이 없다. 무리하게 시대를 해석하고 정의하려 들지 않고 그저 자신이 보고 듣고 기록해둔 역사적 사실을 저자의 개인적인 필치로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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