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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체암 나대용 장군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체암 나대용 장군

  • 사단법인 체암나대용장군기념사업회
  • |
  • 세창문화사
  • |
  • 2015-04-20 출간
  • |
  • 341페이지
  • |
  • 150 X 220 X 20 mm /643g
  • |
  • ISBN 9791195359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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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거북선의 창조정신은 무엇이며,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책 소개

과학적 창조력, 역사는 오늘날 우리 대중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역사는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된다. 그 창조는 역시 기록되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역사는 어느 특정인이나 영웅호걸의 독점물이 될 수도 없거니와 또 되어서는 아니 되며, 창조 역시 사실대로 기록되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역사의 중요성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대중 생활에 어떻게 영향을 주느냐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나장군의 구국정신(救國精神)과 과학적 창조력에 의한 전선 제작에 대해서는 일찍이 이 방면 연구 학자들에 의하여 밝혀진 바 있고, 또한 본인도 그 소신의 일단을 발표한 바도 있어, 여기에 재언할 필요가 없다고 하겠으나, 우리나라 해군사상(海軍史上) 위대한 발자취를 남기고 간 정지(鄭地) 장군과 동고향인 전통 있는 나주(羅州)에서 출생한 나장군은 왜구(倭寇)의 끊임없는 행패를 보다 못해 뜻한 바 있어 일찍이 붓을 던지고 거북선 연구와 사예(射藝)에 종사하여 28세 때 무과에 급제하고 봉사(奉事)란 미관말직으로 있으면서 시폐(時弊)를 논하였으나, 관심을 가져주지 않던 당시의 사회상을 원망하면서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오로지 거북선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다.
거북선 제작에 착수한지 근 1년이 지난 선조(宣祖) 25년 3월 27일에 완성된 거북선은 방포실험을 마친 후, 사천(泗川) 승첩을 비롯하여 당포전(唐浦戰), 당항포전(唐項浦戰), 견내량전(見乃梁戰), 안골포전(安骨浦戰), 명량(鳴梁) 및 노량해전(露梁海戰) 등에서 적진에 돌입 좌충우돌 적선을 무찌르며 바다의 요새로서 조국의 방패로서 겨레를 구하는 구세주로서의 역할을 다하여 우리나라 해전사상 전선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김영원, 조선대학교 교수 국사연구원장

살아있는 역사, 거북선과 나대용 장군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모든 해전에서 왜적을 섬멸하고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탁월한 전략과 새로운 전투함인 거북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국 해군의 기록(1883년)에도 거북선의 우수성과 과학기술의 선진성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조선의 전선은 철판으로 몸을 싸고 마치 거북 모양으로 만들어 당시 일본의 목조 병선을 깨뜨렸으니 세계에서 가장 오랜 철갑선은 진실로 한국인의 발명이었던 것이다.」 라고.

나대용 장군이 거북선 제작에 뜻을 둔 것은 17?8세 때부터였다. 해변에서 성장한 그는 왜구의 끊임없는 행패를 보다 못해 왜선보다 더 훌륭한 거북선을 만들어 이들을 무찌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왜구의 특기적 전술인 육박전법을 보다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왜적이 우리 전선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절실히 요구 되고 있었다. 그의 거북선의 착상은 날아다니는 풍덩이와 방죽의 수면에서 빙글빙글 도는 물방개의 형태에서 얻은 것이라고 한다. 이 지역에는 오늘 날에도 나장군과 거북선 그리고 풍덩이와 관계를 노래한 동요가 전해오고 있다.

《물방개 노래》
빙글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비바람 거친 파도 걱정일랑 하지 마라
크게 쓰일 장수 나와 낙락장송 다듬어서
너 닮은 거북배 바다오적 쓸어낸다.
어와둥둥 좋을 시고 빙글빙글 돌아라
잘도 돈다 물방개야 잘도 돈다 물방개야

이로 미루어 거북선은 나장군이 풍덩이나 물방개의 외형을 본떠 고안한 것이 분명하다. 나장군은 20세부터 무예를 연마하기에 힘써 2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 봉사직으로 관직에 첫발을 내딛게 되었다. 이때부터 나장군은 멀지 않은 장래에 왜적이 침입할 것이라는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성격이 곧고 굽힐 줄 몰랐던 나장군은 8년 동안 근무하던 훈련원 봉사직을 그만 두고 1583년 고향인 오륜동으로 낙향, 이때부터 본격적인 거북선 연구와 제작에 몰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10년에 걸친 각고의 노력 끝에 마을 앞에 있는 방죽(현재도 그 방죽이 남아 있음)에서 시험 진수에 성공하기에 이르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1년 전인 선조 24년(1591) 2월 정읍 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하자 나장군은 충무공을 찾아가 거북선만이 왜적을 무찌르는 가장 훌륭한 전략적 돌격선이 될 수 있다고 설명하였다.
-나갑주, 월간 문학세계에 게제

거북선의 과학정신·창조정신을 계승

오늘날 우리는 과학정신·창조정신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하고 과학입국(科學立國)을 간절히 바라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임진왜란의 해전을 승리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했던 세계 최초의 과학적인 첨단 전선을 어떻게 연구하고 만든 것인지는 알아야 할 일이다.

《배에 뚜껑 씌우는 법 고안》

원래 거북선은 왜구를 물리치기 위해서 생각해 낸 특수한 배였다. 일본 사람들은 칼을 잘 쓰고 따라서 적에게 육박하여 백병전(白兵戰)으로 결판을 내는데 능한 족속이었다. 반면에 우리는 그들이 갖지 못한 대포를 가지고 있었다. 알맞은 거리를 두고 대포를 쏘아붙이면 그들은 꼼짝을 못했다. 이것을 알아차린 왜구들은 속도가 빠른 경쾌한 배를 타고 와서는 재빨리 우리 전선에 다가들었다. 바싹 다가드는가 하면 사이를 두지 않고 우리 전선에 뛰어들어 칼부림을 하는 데는 방법이 없었다. 무엇보다 급한 것이 왜구들이 우리 배에 뛰어들지 못하게 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고안한 것이 뚜껑을 씌우는 방법이었다. 뚜껑을 씌워 놓으면 배는 마치 덮개를 덮은 상자 같아 안으로는 들어올 수 없을 것이었다. 뚜껑은 비가 와도 빗물이 괴지 않도록, 적이 뛰어들더라도 발을 붙이지 못하고 미끄러져 떨어지도록 평평한 것보다는 둥근 것이 좋았다. 이렇게 만들어 내고 보니 마치 엎드려 있는 거북선(龜船)이라고 이름하였다.

《고문서(古文書) 찾아 거북선 설계도 작성》

일본이 쳐들어온다면 육지로 올라오기 전에 바다에서 없애 버려야 나라가 온전할 터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거북선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는 좌수영의 창고를 뒤진 끝에 먼지 속에서 이 낡은 문서를 찾아낸 것이었다. 나대용은 여러 날을 두고 다 떨어진 문서를 검토한 끝에 그림뿐만 아니라 설계도면까지 만들어 바쳤다.

『이런 군선을 더도 말고 1백척만 만들어 남해안 요지에 늘어 세워도 일본은 감히 침범을 못할 것입니다. 조정에 말씀드려 보시지요』

이 시대 법도에 지방의 수영에서는 마음대로 배를 만들 수 없었다. 중앙에 10명의 선장(船匠 조선기술자)이 있었는데 이들이 표준형을 만들면 그것을 지방의 수영에 보냈고, 수영은 저마다 그와 똑 같은 배를 만들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조선 8도 어디서나 같은 종류의 군선은 칫수에서 장비에 이르기까지 일정하였다. 그런 관계로 지방에는 독자적인 선장이 없고, 중앙에서 보낸 모형대로 배를 만드는 기능공이 몇 명 있을 뿐이었다.
나대용은 배에 대해서 타고난 재주가 있을 뿐 선장은 아니고 본직은 군관(軍官)이었다. 거북선은 오래 전에 폐지된 군선으로 이것을 부활하자면 우선 중앙에서 모형을 만들어 지방에 배포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이순신은 나대용이 그린 설계도까지 첨부하여 조정에 글을 올렸다.

《과학정신과 창조정신으로 거북선을 제작》

그러나 상상도 못한 회답이 왔다. 『일본은 섬나라 오랑캐로 물에 익숙한 족속이다.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수전(水戰)에서는 저들을 당할 길이 없다. 반대로 우리는 육전(陸戰)에 능한 터이니 차라리 수군을 폐지하고 육군에 주력할 것이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이순신이 나대용에게 물었다. 『우리 힘으로 거북선을 만들 수는 없을까』 『만들 수는 있겠습니다마는 법도를 어겼다고 조정에서 말이 없을까요』 『만들어서 우리가 몰래 딴짓을 한다면 몰라도 조정에 진상하는 데야 법도에 어긋날 것이 있겠는가』 『전쟁은 없다고들 하지 않습니까? 만에 하나 일어날까 말까한 전쟁 때문에 모험을 하시다가 말썽이 일어나면 큰일입니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 대비하는 것이 전쟁이오. 거북선은 만들어야 하오』 이순신은 만일의 말썽을 막기 위해서 전라감사 이광(李珖)에게 사실을 고하고 그날부터 나대용을 중심으로 거북선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거북선은 단순한 옛것의 모방이 아니었다. 뚜껑에는 촘촘히 쇠못을 박아 적이 아예 발을 못붙이게 하고, 중요한 부분에 얇은 철판을 씌워 적의 화공(火攻)을 막았다. 이 때문에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 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수십 척이라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전라좌수영의 재력에는 한계가 있어 겨우 3척을 시작했는데, 그 중 한 척이 먼저 완공되어 지난 3월 27일 처음으로 대포를 장착하고 쏘아보았다. 나대용의 기술은 비상해서 대포 진동에도 거북선은 끄떡없었다.
-나오연, 사단법인 체암나대용장군기념사업회 이사장

실존 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창조정신과 애국정신을 이어가야

이 책은 체암공 나대용 장군이 임진왜란에 대비해 세계 최초의 과학적인 철갑선, 거북선을 만들어 해전 승리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옥포해전을 비롯하여 15회 이상의 해전에 참전, 두 번이나 적탄에 맞아 부상을 당하면서도 구국분전한 용장으로 큰 공을 세운 행적에 관한 실기이다.
이 책은 한문을 몰라도 누구나 다 읽을 수 있게 쓰여졌으며, 몇 편의 추가로 수록된 논문을 통해서 체암공의 행적을 이해하고 거북선의 제조과정, 과학적인 첨단전선으로서의 우수성, 돌격선으로서의 역할 등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새 책을 통해서 체암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체암공의 생가와 묘소 등 유적지가 전라남도 문화재로 지정되고, 국립 사우 소충사와 동상이 건립되어 있으며 매년 과학의 날(4월 21일)에 나주시장 주관으로 추모행사가 거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이 많은 사람에 의해 읽혀져서 체암 나대용이 거북선과 창선 및 해추선을 만든 과학자임과 동시에 구국분전한 용장으로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인물임을 알고 그의 공적을 앙모하고 그의 과학정신, 구국정신을 높이 받들고 계승 발전시켜 나갔으면 한다.
또한 이 책의 내용이 미래를 이끌 학생들이 배울 수 있도록 교과서 등에 수록하여 개념적인 창조정신이나 애국정신을 키우는 것이 아닌 실존 인물의 행적을 바탕으로 공부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다. 그리고 일반 대중에게는 영화, 만화, 다큐멘터리 등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료도 만드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뿐만 아니라 체암공의 행적을 기리는 나주의 국립소충사와 생가 등 유적지가 많은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역사 공간이 되도록 과학관 건립, 생가마을 한옥관광단지 조성, 방죽골 재현 등의 사업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나승일, 서울대 교수, 전 교육부차관

목차

머리말 / 나오연
「국역 체암 나대용장군 실기」의 머리말 / 이은상
「국역 체암 나대용장군 실기」의 발간사 / 최영희
「국역 체암 나대용장군 실기」의 발간사 / 김영원

제1장 체암공 행적에 관한 중요 문헌
제2장「체암공 행적」에 수록된 행적
제3장「국역 체암 나대용장군 실기」에 추가된 논문과 기사
제4장 최근의 논문

부록

저자소개

저자 사단법인 체암나대용장군기념사업회는 나대용장군의 공과 덕을 사모하는 학자와 경향유지들이 장군을 기념하는 사업을 전개하고자 오랜동안 협의 후 1975년 1월 기념사업회가 발족되었고 초대회장은 이은상선생님을 비롯 국내 역사학회, 국문학회 및 교육?정치계의 유명인사가 망라되었다. 이후 사업으로는 나장군의 행적을 『국역 체암나대용장군실기』출판, 행적비건립, 나대용장군동상건립, 소충사우 건립 등이 있다.

도서소개

체암 나대용 장군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했던 수군 장수이다. 임진왜란 이후에 창선, 해추선 등의 전선을 개발하였다.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 체암 나대용 장군』은 체암공 행적에 관한 중요 문헌 및 「체암공 행적」에 수록된 행적, 「국역 체암 나대용장군 실기」에 추가된 논문과 기사, 최근 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체암 나대용 장군을 아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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