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격랑에 휩쓸린 민중의 슬픈 역사를 애도하는 장중한 진혼곡!
원고지 2만 2천 장, 20여 년에 걸친 집필 끝에 완성된 재일작가 김석범의 노작 『화산도 세트』. 80년대 후반, 전반부가 우리말로 옮겨진 바 있으나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던 이 소설을 오랜 기다림 끝에 동국대 일본학연구소장인 김환기 교수의 번역으로 만나본다. 제주 4.3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인 1948년 2월 말부터 이듬해인 1949년 6월 제주 빨치산들의 무장봉기가 완전히 진압될 때까지의 해방직후 혼란스러운 정국을 배경으로 야만적인 폭력의 한복판에서 인간의 존엄 평화를 외치는 작품이다.
제주의 문제만을 다루지 않고, 이데올로기적 편향을 좇지 않는 이 작품의 주요 무대는 제주도이지만, 서울과 목포뿐만 아니라 오사카와 교토, 도쿄도 비중 있게 등장한다. 빨치산들의 무장투쟁 자금의 유입 경로, 재일동포들의 실상과 일본공산당과의 관계 등이 일본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독립 운동가였으나 전향을 약속하고 병보석으로 출옥한 후 해방 후에도 친일파가 반공의 기치를 내걸고 득세하는 현실에 분노하는 주인공 이방근. 북한의 공산주의 정권에 대해서도 새로운 국가의 미래를 짊어질 수 있는 세력이 아니라고 판단하면서도 친일파 세력과 서북 청년단의 잔혹한 탄압에 맞서 저항하기 위해선 그들을 지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기대와 달리 제주 빨치산의 무계획적이고 무모한 활동은 수많은 제주 민중을 희생시키고 이방근은 더 깊은 허무와 절망감에 빠진다. 빨치산과 서북청년단, 친일파 경찰이 죽고 죽이는 아비규환의 지옥도에서 이방근 역시 사람을 죽이게 된다. 친일파이자 제주 민중을 탄압하는 일에 앞장 선 유달현과 정세용을 처단한 것이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인간은 타인을 죽이기 전에 자살한다는 소신을 깨뜨린 이방근은 끝내 자살을 선택하는데…….
☞ 수상내역
- 1983년 아사히신문 오사라기 지로(大佛次郞)상 수상
- 1998년 마이니치(每日) 예술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