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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석 서유구

풍석 서유구

  • 진병춘
  • |
  • 씨앗을뿌리는사람
  • |
  • 2014-12-01 출간
  • |
  • 360페이지
  • |
  • 152 X 225 X 17 mm /566g
  • |
  • ISBN 9788956373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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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인류 지성사에서 보기 드문 사건!
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 『임원경제지』 저자 서유구의 파란만장한 일대기


▣ 실학의 이용후생 정신은 서유구에 의해 구체화되고 집대성되었다.
-안대회(국문학자, 『18세기의 맛』 저자)
▣ 『임원경제지』는 인간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내용이 총망라되어 있다.
-정민(한문학자, 『미쳐야 미친다』 저자)

2014년은 풍석 서유구가 탄생한 지 250년 되는 해이다. 이에 학술 ㆍ 문화계에서 서유구의 공적과 정신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 프리미엄 강의 ‘세종 르네상스’는 하반기에 국악 공연과 함께 소개할 고전 인문학 도서로 서유구의 저서 『임원경제지』를 선정했고, 최근 10월에는 국내의 대표적인 도서 축제 ‘파주 북소리’에서 서유구의 탄생 250주년을 기리는 특별 강연이 진행되었으며, 다가오는 12월에는 풍석문화재단 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서유구의 사상과 업적을 기리고 『임원경제지』를 대중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이 본격화될 예정이다. 전문가들의 예견처럼 ‘풍석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인가?
사실 동시대의 실학자 정약용에 비하면 늦어도 한참 늦은 조명이다. ‘조선의 브리태니커’라 불리며 ‘한국을 대표하는 전통문화 콘텐츠의 보고’이자 ‘조선 후기 실학 정신의 최정점을 보여주는 저술’로 평가받는 『임원경제지』는 학자라면 누구나 탐내는 작품이었음에도, 분량이 너무나 방대하고 내용 또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어 쉽사리 번역할 엄두를 못 낸 탓에 오랫동안 방치돼온 이유가 크다. 때문에 그 자료적 가치와 저자 서유구의 역사적 의미가 제대로 연구되거나 알려지지 않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히 10여 년 전 소장학자 40여 명이 ‘임원경제연구소’를 꾸려 『임원경제지』의 번역을 시작했고, 초벌 번역을 끝낸 뒤 1차 성과로 2012년 『임원경제지』 개관서가 출간되어 세부적인 면모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발굴과 연구의 움직임이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서유구의 일대기를 그린 『풍석 서유구-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자』(이하 『풍석 서유구』)는 바로 그러한 흐름 속에서 출간된 책이라 더욱 반갑다.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라는 전대미문의 압도적인 저술을 완성하기까지의 눈물겹도록 치열한 과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 책은 그가 단지 뛰어난 농학자가 아니라 민생 민본의 철저한 실천자이자 조선 실학의 집대성자임을 보여준다. 그림자만 보이던 거인 서유구가 그렇게 또 한 걸음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조선 후기 최고의 명문가 서씨 집안,
새로운 지식 ㆍ 문화의 축적과 전파로 조선의 개혁을 꿈꾸다!


『풍석 서유구』는 서유구의 이야기인 동시에, ‘서유구’라는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있게 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서유구는 농학, 한문학, 서지학, 역사학, 철학, 자연과학, 음악, 의학, 건축, 원예, 요리 등 각종 학문 ㆍ 예술 분야를 섭렵한 탁월한 학자이자, 『임원경제지』를 통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식 체계를 구현해낸 특별한 지성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이는 서유구가 홀로 천재성을 타고난 우연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저자 진병춘은 서유구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인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그들의 꿈과 열정, 지식, 지혜, 사상, 성품이 서유구에게 어떻게 배어들고 집결되었는지를 주목한다. 서유구가 그들 모두와 그들이 살았던 시대의 총화라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서유구는 절묘하게도 그들 모두의 죽음을 지켜본 뒤 가장 나중에 생을 맺는다. 저자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그의 죽음은 조선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었을 새로운 사상 문화의 흐름이 그 맥을 다한 순간처럼 보인다.

서유구는 부와 권력, 교양과 학식을 모두 갖춘 당대 최고의 명문가인 대구 서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대구 서씨 집안은 숙종 시절부터 크게 번성하여 영정조 시절 그 성세가 최고에 이르렀고, 특히 할아버지 서명응과 작은할아버지 서명선, 아버지 서호수, 작은아버지 서형수는 정조의 최측근으로 학문과 정치 분야를 주도하는 핵심 집권층이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여타의 집권 세력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노론과 소론의 당쟁이 최고조에 달한 시기에 권력의 한가운데에 있으면서도 당파 구축에는 관심이 없었고, 대대로 학문을 숭상하는 학자 집안이었음에도 당시 사대부들이 주력하던 주자학보다 수학, 기하학, 천문학 등 실용 학문을 토대로 한 농학을 가학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이다. 부패한 조정과 낙후한 제도를 개혁하려는 정조의 기획에 서씨 집안 사람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서명응 ㆍ 서호수 부자와 서유구의 작은아버지 서형수는 정조의 중추적인 학술 기관이자 정치 기구였던 규장각의 창설과 운영을 주도했고, 북학파에 사상적ㆍ정치적 후원을 했으며, 검서관 제도를 신설하여 재야에서 개혁의 목소리를 높이던 젊은 서얼 출신 학자들을 정권 내부로 등용했다. 또한 토지 제도와 농사법에 대한 실증적 연구와 그에 따른 저술을 편찬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고, 청나라 사행에 여러 차례 참여하며 선진 문물을 담은 많은 서적들을 수입해 오기도 했다.
서유구는 이러한 학문적 가풍 속에서 성장하여, 북학파의 일원들과 지우로 지내며 선진 학문과 기술로 경제를 살리고 삶의 질을 높이자는 입장을 함께한다. 관료가 되어서는 도탄에 빠진 백성을 살리고 생산력도 증대시키는 농법을 연구하여 저술로 담아내거나 새로운 농업 정책을 제안하는 데 전력을 다한다. 이러한 태도는 지방 관료로 있을 때나 최고위 벼슬에 올랐을 때나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학문 연구나 관료 생활로는 ‘살아 있는 실용 지식’이 탄생할 수 없다는 자각에 도달한 그는 아예 백성의 삶 속으로 들어가 직접 농사를 짓고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기르고 요리를 한다. 이는 할아버지 서명응도, 아버지 서호수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개방적이고 개혁적인 지식인이 가 닿을 수 있는 마지막 한계까지도 뛰어넘은 것이었다.

조선의 농업과 공업이 낙후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서유구는 “한마디로 사대부의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사대부가 오만하게 ‘사람을 다스리는 자 따로 있고, 사람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자 따로 있다’라며 공업 제도에 마음을 두려고 하지 않으며, 사대부가 ‘성명고담만을 논하고 오곡을 분별할 줄도 모르고, 쟁기와 보습과 가래와 호미를 모르니 농업을 권장하고 농민을 가르치려 하나 비웃음만 살 뿐’이라고 비판한다.(258쪽)

사대부의 허위의식과 집권층의 권력다툼을 뜨겁게 질책하고
실증 ㆍ 실용의 정신을 벼리며
통치자가 아닌 백성을 위한 살아 있는 지식을 집대성하다!


서유구가 30여 년에 걸쳐 저술한 『임원경제지』는 총 113권, 16개 분야, 2만 8000여 개의 표제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위해 서유구는 자신과 선대의 저술을 포함해 900여 종의 한중일 문헌을 참고 및 섭렵했으며, 시골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여 얻은 실용 지식을 끊임없이 검증하고 확장하고 정리했다. 이 거대한 백과사전에 대해 서유구는 다만 “시골에서 사는 데 필요한 내용”(248쪽)이라고 표현한다. 간략한 말이지만 조선 후기 개혁적 지식인들이 부르짖은 실학사상의 정수를 담고 있다. 당시 실학자들은 주류 학문이었던 성리학의 관념성과 경직성을 비판하며, 백성들의 일상에 이롭게 쓰이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학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서유구는 바로 그 ‘실용’에 온전히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그야말로 한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실용 지식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는 결국 실학 운동이 필연적으로 도달해야 했던 가장 실질적인 성취이다. 대표적인 실학자로 알려져 있는 정약용은 사실 유학의 정통 분야인 경학과 경세학에 몰두하였고 제도 개혁에 중점을 둔 뛰어난 정치가이자 개혁적인 경세가였다. 서유구는 경학과 경세학은 공허한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비판하며 ‘잡학’ 마니아가 되었고, 그의 잡학은 『임원경제지』에 질서 있게 배열되었다. 경학과 경세학의 언어를 빌리지 않고 그 방대한 지식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임원경제지』는 서유구를 포함한 조선 사대부들이 어린 시절부터 배우고 익혀온 경학이나 개혁적 사상가들이 주창한 경세학과는 단 일 점 일 획도 일치하는 부분이 없는 전혀 새로운 지식 체계였다.(242쪽)

정약용의 학문 세계는 통치 원리로서의 ‘주자학의 복원’과 조선의 안정적 유지 운영을 위한 각종 ‘제도의 개혁’과 실질적 통치 기구인 ‘관료 체제의 안정’을 목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내용들은 당시 각종 제도의 정비를 통해 민생을 살리고 흐트러진 민심을 수습하여 통치 질서를 안정화시키기 위한 유력한 방도로 평가될 수 있다. (…) 조선 후기 ‘실학의 집대성’이나 ‘북학파 지식의 완결판’이라는 타이틀은 정약용보다는 서유구에게 돌아가는 것이 제대로 된 평가이다. 서유구는 명확하게 ‘통치학’의 일환으로서의 주자학과 선을 긋고, 조선에서는 일찍이 없었던, 아니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전혀 새로운 학문 체계를 세운 것이다.(252쪽)

서유구가 조선 통치 제도의 최정점에서 영화를 누렸던 신분이었음을 떠올린다면, 통치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지식’을 백성의 것으로 인식하고, 그러한 인식을 완벽하게 실천하여 구현한 『임원경제지』를 탄생시켰다는 것은 거의 혁명적 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정치적 ㆍ 사회적으로 최고의 격동기였던 18~19세기의 조선을 권력의 한가운데에서, 그리고 권력의 가장 바깥에서 겪으며, 서유구는 무수한 풍파와 곡절을 지나야 했다. 세도 정치의 칼바람 속에서 개혁의 꿈들이 부서지면서 좌절과 죽음에의 위협을 감당해야 했고, 가문의 몰락과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도 지켜봐야 했으며,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백성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혹독한 단련기를 경험해야 했다. 그만두려면 얼마든지 그만둘 수 있었으나 서유구는 끝내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포기하지 않았고, 그렇게 『임원경제지』가 완성되었다.
『풍석 서유구』는 2세기 전의 이야기이지만, 총체적 부실과 무능으로 인해 망국의 길로 빠져버린 조선 후기의 이야기는 경제 ㆍ 정치 ㆍ 사회의 모든 분야가 불안정한 21세기 대한민국의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유구의 실증 ㆍ 실용 ㆍ 실천의 정신은 바로 지금 우리 사회에 간절히 필요한 것이며, 뒤늦게나마 곳곳에서 서유구가 호명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 추천글
ㆍ한중일 3국을 통틀어 서유구 선생이 저술한 『임원경제지』만큼 백성이 바로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생활지식백과사전을 집대성한 나라는 없었다. (이영일┃한중정치외교포럼 회장)
ㆍ30년 적공 끝에 완성된 전대미문 방대한 저술이 펼쳐 보이는 경이로운 세계와 한 특별한 지성의 눈물겹도록 치열한 삶. 말 그대로 감동이다. (문병호┃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

목차

머리말
시작글: 임원경제지와 오비거사생광자표

[1부] 3대의 꿈: 서유구의 수학기
1. 서유구의 탄생
2. 서유구의 성장 과정
3. 정조와 서유구 집안의 인연
4. 북학파와 경화세족 그리고 서유구
5. 서명응과 청년 서유구
[2부] 왕과 백성과 서유구: 1차 벼슬기
1. 서유구의 급제와 초계문신 선발
2. 굳은살이 박이고 눈이 침침해질 때까지
3. 민생 현실과 순창군수응지소
4. 홀로 남은 서유구
[3부] 각성과 모색: 방폐기
1. 벼슬에서 물러나다
2. 강과 들판과 시골을 전전하며
3. 임원경제지를 시작하다
4. 유화 정국의 도래와 의상경계책
[4부] 민생 민본의 실천자: 2차 벼슬기
1. 회양 부사에서 중앙으로의 복귀까지
2. 목민관 서유구
[5부] 마지막 한 삼태기: 서유구의 노년
1. 계속되는 열망
2.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3. 두릉의 두 문성
4. 임원경제지를 마치다
5. 이승을 떠나다

마무리글: 우리 시대의 서유구
주석
참고 문헌
부록1 풍석 서유구 연보
부록2 『임원경제지』 16지 서문 및 목차
부록3 풍석 서유구 집안 가계도
찾아보기

저자소개

저자 진병춘은 검정고시를 거쳐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하였다. 1998년까지 생산 현장에서 노동자로 생활하였고, 이후 약 2년간 컴퓨터 서적을 다수 집필하였다. 2000년 스쿨폴리스를 창업한 후 2012년까지 에어스파이더, GK미디어 등을 경영하였다. 2008년부터는 KT의 미디어플랫폼 팀장을 겸임하며 대기업의 조직 생활을 경험하기도 하였다. 2013년부터 SNS 마케팅 컨설턴트, 프리랜서 저술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인생은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에 실패에 좌절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성공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는다. 인생의 매 순간을 가장 행복한 때라고 믿고 있다. 이순신 장군을 오랫동안 존경해왔는데, 새롭게 서유구 선생이 추가되었다. 인라인 스케이트, 등산, 캠핑 등을 즐긴다.

도서소개

『풍석 서유구』는 서유구의 일대기를 그린 책이다. 서유구는 농학, 한문학, 서지학, 역사학, 철학 등 각종 학문 예술 분야를 섭렵하고 저서《임원경제지》를 통해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지식 체계를 구현해낸 학자이다. 저자는 특별한 지성을 겸비한 서유구의 천재성이 태생적인 것은 아니라고 전하며 서유구에게 영향을 미친 주변인물들을 하나씩 살펴 그들의 열정, 지식, 사상, 지혜가 어떻게 배어들고 집결되었는지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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