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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혼

세상의 혼

  • 크리스토퍼 듀드니
  • |
  • 예원미디어
  • |
  • 2010-01-30 출간
  • |
  • 376페이지
  • |
  • 145 X 214 X 30 mm /569g
  • |
  • ISBN 97889914134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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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찰나에서 영원까지, 시간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하다!
“시간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무도장인 동시에 음악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과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시간이 안무해낸 춤이다.”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는 CBC문학상과 찰스테일러 문학상<밤으로의 여행>을 수상한 현재 캐나다 최고의 재능있고 매력적인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크리스토퍼 듀드니가 캐나다 총독문학상 최종후보작인 ‘밤으로의 여행’에서 신비한 밤의 세계로 감성 여행을 떠났었다면 이번에는 밤보다도 더욱 신비하고 거대한 시간의 세계를 여행하며 탄생시킨 찰나에서 영원까지, 독자들과 함께 탐사 여행을 떠난다.

“나의 절대적인 시간 극장에서 그것은 매초 늘 같았고, 동시에 매초 한 번도 같은 적이 없다. 순간마다 이어지고 퍼지는 불타는 암초는 마치 베토벤 교향곡의 피날레처럼 그 색채와 강도에서 이전 것을 늘 능가했다. 시간은 시간을 늘 능가했다. 시간은 시간을 주무르는 지휘자엿고, 구름 하나하나, 이파리 하나하나, 깃털 하나하나를 차례로 그 지휘봉으로 건드려, 끝없는 색조의 걸작을 창조하고 있었다. 나는 계속해서 시간의 포옹을 받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그저 자신을 열어놓아 그 장관에 한 걸음 한 걸음 보폭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승객! ― 찰나에서 영원까지, 시간을 여행하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속에 온전히 존재하기’를 성취한다면 우리는 그 안에서 찰나와 영원을 동시에 맛볼 수 있다. 크리스터퍼 듀드니는《밤으로의 여행》에서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아침 오전 6시까지 지속되는 어둠의 시간을 매혹적이고도 황홀한 여정으로 변화시켰다면《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에서는 오늘과 내일과 어제의 매 순간을 다시 한 번 마법의 순간으로 탈바꿈 시킨다. 듀드니는 신화와 철학 예술에서 시간이 어떻게 표현되고 있는지를 탐사한다. 과학과 시의 영역을 넘나드는 문학적 서술을 통해 인류에 관한 질문을 묻고 또 물으며 답을 찾는다. ‘시간은 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가?’ ‘지금 이 순간은 백만 년 동안 지속될 수 있는가?’ ‘시간 여행은 실제로 가능한가?’
놀라운 상상력을 아름다운 글로 담아낸《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는 듀드니가 친구들, 가족 그리고 이방인을 만나며 세상을 탐사하는 한 해 동안의 계절 순례기다. 이런 만남을 통한 일화와 사건들을 통해 작가는 시간의 본질과 시간이 우리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꿰뚫어보는 비범한 통찰력을 발휘한다. 매우 사적이면서도 폭넓은 이야기를 통해 미지의 영역을 밝혀주는 이 책은 세상을 이루는 자원들 중 가장 정의하기 어려운 ‘시간’ 에 대한 매혹적인 성찰을 담고 있다.

시간 박물지 - 시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싶은, 알아야 할 모든 것!

생명이 움 트는 3월, 봄날의 정원에서 시작된 듀드니의 시간 탐사는 11월, 늦가을 마을을 지키는 노송과의 만남에까지 이어진다.

“시간이란 만물의 중심에서 동시에 솟아나며, 시간의 화살은 동시에 모든 곳을 향하고, 삼라만상은 시간과 함께 빛난다.”
사람들은 늘 시간에 쫓기듯 산다. 그러다 보면, ‘시간이 대체 뭐길래’, ‘시간을 장악할 수는 없을까’ 하는 철학적 긍금증까지 일게 된다. 하지만 듀드니와 함께한다면 시간에 관해 그보다 더 미시적인 차원과 거시적인 차원을 넘다들며 시간을 체험할 수 있다. 시간의 신화와 시간의 역사, 시간의 철학과 시간의 우화, 시간의 과학과 시간의 미래학, 그리고 시간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포착해낸 이 책의 방대함은 시간을 알고자 하는 그 어떤 독자라도 만족시켜 줄 것이다.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는 시간의 총체적 측면을 풍요롭게 담아낸 내러티브이며 동시에 우리가 시간에 관해 알고 싶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박물지다.

존재의 심연으로 가 닿는 시간에 대한 무수한 관념의 실험

이 책에는 우리의 신경을 놓지 못하게 하는 시간에 대한 물리학적ㆍ영화적ㆍ신경학적 실험이 계속된다. 저자가 이처럼 ‘보석처럼 귀한 시간’을 탐구하고 탐구하는 이유는 존재에 더 깊이 다가서려는 세상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역사, 신화, 우주론, 생물학을 모자이크 형식으로 직조해 넣은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는 시간에 관한 매혹적인 사실과 작가의 관찰이 교차된다. 1년 4계절을 여행하며 작가는 자기 집 뒤뜰, 이웃, 세상을 탐사하며 시간의 본질과 시간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을 재미있는 일화로 통찰한다.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자연과 사회에서 호기심을 자극하는 측면들을 그려내고 미처 예기치 못한 즐거운 연대성을 찾아내는 듀드니의 특별한 재능이 발현된 작품이다. 책이 각 계절을 그려내는 동안 그와 나란히 시간의 내러티브, 즉 시간의 기원과 시간의 역설 그리고 시간의 영향이 서정적 이해와 경이로움을 담아 다채로운 타피스트리로 직조된다.
듀드니의 이러한 실험들은 시와 비소설의 경계를 넘나들며 읽기의 즐거움과 지식 체험의 즐거움을 동시에 얻게 해 준다. 또 시간의 자연과학, 심리학, 문학, 역사를 종합함으로써 우리가 일상의 저변으로 가 닿는 방식을 새롭게 깨쳐준다.

추천의 글 장석주 / 시인
시간은 이 세상의 혼

크리스토퍼 듀드니,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에 부쳐

나는 시간을 느끼고 몸의 느낌 속에서 그것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안다. 그 앎에는 한 점의 모호함도 없다. 그러나 누군가 내게 “시간이 무엇인가 ?”라고 묻는 순간 나는 시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존재가 된다. 시간은 그것의 정체성을 따져 물을 때 그 존재를 감추며 돌연 불가사의해진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수십억의 수십억 년이 이 우주 어딘가에, 절대 죽지 않는 그 무엇, 즉 내 생물학적 진화의 무한한 가능성으로, 새벽 여명과 같이 존재한다는 상상을 하면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시간은 아득한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때는 낮과 밤의 뒤바뀜, 계절의 변화, 가는 해와 오는 해의 반복만이 있었을 뿐이다. 시간은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았으니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차리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시간은 오랫동안 이름도 없이 태초의 無(무)로서 존재했을 뿐이다. 우주의 나이가 137억년이라고 하는데 그 대부분의 세월 동안 시간은 無(무)였고, 그 무는 無無(무무)에서 흘러나왔고, 그 무무는 無無無(무무무)에서 발원하여 흘러나왔을 뿐이다. 秒(초), 分(분), 時(시), 日(일), 週(주), 月(월), 年(년)이 생겨나면서 시간은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밤하늘에 열두 번의 보름달이 떠오르면 한 해가 지나갔을 알게 되었다. 계측할 수 있는 가장 짧은 단위의 시간은 펨토초이다. 일천 조 분의 일초가 그것이다. 펨토초의 세계에서 사는 펨토리안의 눈으로 보자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 조각상이요, 영원히 존재하는 그 무엇이다. 펨토초보다 더 짧은 시간이 나타났다. 그것은 아토초이다. 아토초는 백경(10의 18승) 분의 1초이다. “당신의 평범한 날은 1,440분이고, 이는 다시 86,400초로 구성되어 있다. 한 달을 평균 30일로 잡을 때 이는 2,592,200초이고, 다시 한 해를 30일이 12번 반복되는 것으로 할 때 이는 31, 104, 000초이다. 이제 나의 36세 생일이 다가옴에 따라 나는 실은 단지 1,088, 640,000초를 살아온 것이다.”(글렌 굴드) 아이들을 어른이 되게 하고, 모든 나무들을 자라게 하고, 익은 콩들을 발효시키고, 오래된 바위들에 이끼를 입히고, 건물들에겐 멋지고 품위있는 과거의 광휘를 선물하는 시간은 명백하게 영장류의 것이 아니라 호모사피엔스의 발명품이다.

시간은 대체로 此岸(차안)과 彼岸(피안) 사이에 걸쳐놓은 놀라운 가설이다. 아울러 시간이란 種(종)과 종 사이의 미끄러짐이고, 종의 고리를 잇는 DNA의 세대론적 이동이며, 그리고 종의 수평적 지평선 안에서의 이주, 도약, 도망, 회귀다. “시간이 없다면 아무것도 없다. 시간은 무도장인 동시에 음악이다. 움직이는 모든 것과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는 모든 것은 다 시간이 안무해낸 춤이다.”(크리스토퍼 듀드니) 나의 육체적 삶은 시간이 준 놀라운 선물이다. 시간은 그 선물을 주었을 뿐만 아니라 때가 되면 그 선물을 회수해간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시속 108,000킬로미터로 돌고 있는 생명체들이 탑승한 배다. 시간은 곧 장소이고, 거꾸로 말하자면 장소는 시간이다. 그래서 지구라는 배는 어제 있던 장소가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장소로 나아간다. 우리는 시간 속에서 진화의 긴 여정을 소화해내야 하는 시간여행자들이다. 지구가 은하 속을 떠가는 동안 시간은 우리의 육체적 삶을 해체해서 해조류와 균류로 만들었다가 다시 이끼, 나무, 초파리, 조개, 새로 만든다.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사람의 몸을 갖고 시간 속을 지나가고 있을 뿐이다. 다른 시간대에서는 이끼, 나무, 초파리, 조개, 새의 몸을 갖고 시간 속을 지나갈 것이다. 생명이란 시간의 음악에 맞춰 추는 춤이다. 시간은 우리 세포 속의 DNA에 들어와 다양한 변주곡에 맞춰 춤을 춘다. 결국 우리 삶이란 시간의 춤일 따름이니, 시간은 위대한 안무가이자 능란한 춤꾼인 셈이다.

시간은 ‘지금’으로 흘러왔다가 끊임없이 ‘지금’을 지나 또 다른 ‘지금’을 향하여 나아간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그 ‘지금’은 과거의 ‘지금’이 되어버리고, 미래의 ‘지금’이었던 순간들이 방금 지나가 과거가 되어버린 그 ‘지금’이 비운 자리를 차지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현재의 ‘지금’은 없고, 이미 말해진 ‘지금’이란 금방 과거 속으로 돌아가 버린 ‘지금’들뿐이다. 그러므로 가없는 시간의 바다 속에서 수없이 많은 거품으로 바글거리는 ‘지금’들은 덧없다. ‘지금’들은 헛된 낭비이며, 상상임신이고, 어리석은 지나침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이란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기억들이 지각 속에 복귀하는 희귀한 현재를 말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자면 지각 속에 복귀하는 그것들이 ‘과거’라는 증거는 매우 희미하다. 그것들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저 먼 시간 속에서 태어나 현재에까지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실재reality이다. 그것은 현재와 몸을 섞고 있거나 ― 현재는 과거와 삼투하는 近未來(근미래)이다 ― 스며들며 ― 현재는 과거와 융합하는 근미래이다 ― 일어나는 거품들, 즉 미래들의 과거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이렇게 말한다. “미래는, 우리 안에 있는 미래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미래가 도래하기 훨씬 전에,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미래는 현재에 있지만 우리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혹은 모든 곳에 균질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현재란 과거의 발현에 의해 몸을 얻어 드러나는 미래에 지나지 않는다. 없던 것이 갑자기 나타나 과거의 교착이나 잔여물들을 품고 과거-현재라고 주장한다면, 과거는 지나가버린 미래들, 즉 지나가면서 현재라는 사생아를 낳는 미혼모들이다.

시간은 비이성적 냉담함으로 무장한 난폭한 파괴자다. 시간이 지나간 뒤에 살아남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 제 일가붙이나 제자들마저 모조리 살해한다. 크로노스가 제 자식들을 먹어치우듯이.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간 자리에는 깨어진 사랑, 죽어버린 시체들, 주춧돌만 남고 사라진 웅장한 절들, 세상의 모든 불타버린 숲들, 폐허들만 남는다. 어떤 건물들이 시간을 견디고 꿋꿋하게 서 있다면 그것은 폐허로 돌아갈 운명의 일시적인 유예일 따름이다. 그런 점에서 “시간은 위대한 스승이긴 하지만, 불행히도 자신의 제자를 모조리 죽여 버린다.”(헥토르 베를리오즈)는 말은 진실이다. 시간은 불꽃이고, 홍수다. 태우고, 휩쓸고, 부수고 지나간다. 시간의 앞자락은 시간이 살해한 것들의 피로 물들어 있다. 그러므로 시간은 핏빛이다. 시간은 포식자이다. 시간은 만물을 집어삼키고 끝내는 제 자신마저도 삼킨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시간은 되돌아가지 않는다. 저 희랍의 한 현자가 말했듯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씻을 수가 없다. 이때 강물은 흘러가는 시간이다. 찰나로 반짝이며 흘러가는 시간은 반복을 모른다. 그것은 흘러가버리는 것임으로 붙잡을 수도 없다. 시간은 흐름이 아니라 정지 혹은 비약의 시점에서만 제 존재를 드러낸다. 시간은 정지한 적이 없는데 흐름을 정지시키고 멈춘 상태에서 전체에서 저를 작게 쪼개 제 존재를 반짝이는 그 많은 찰나와 순간들은 어떻게 된 것일까? 사실을 말하자면 시간은 선형상의 흐름을 갖고 있지 않다. 흐르지 않으니까 멈춤도 없다. 공중을 나는 화살은 영원히 표적에 도달하지 못한다는 제논의 가설은 거짓이다. 제논은 표적을 향해 나는 화살이 중간쯤 왔을 때 화살은 여전히 남은 거리를 날아야 한다. 남은 거리를 반으로 나누면 화살은 다시 그 거리만큼 날 것이다. 표적까지의 거리를 이렇게 계속 점점 더 잘게 쪼개 반분한다면 화살은 영원히 표적에 도달할 수 없다. 이것이 '제논의 화살'이라는 명제로 널리 알려진 패러독스이다. 제논의 패러독스에 따르면 움직이는 화살은 실은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제논은 분할이 불가능한 흐름인 운동을 분할이 가능하다고 전제하고, 경로가 그리는 선에 대해 참인 것은 그 운동에서도 참이라는 가정을 전제함으로써 치명적인 오류에 빠져들었다. 아마도 유일하게 순간의 시간을 멈추고 장악할 줄 아는 것은 위빠싸나 수행자들이다. 시간이 멈추는 것은 신비한 영적인 순간이다. 시간을 멈추고 느리게 흘러가도록 조정하는 일은 위빠싸나 수행자들만이 경험할 수 있는 경이로움이다. 그들은 찰나들을 그냥 무심히 흘려버리는 게 아니고 그 찰나를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覺(각)의 그물로 포획한다. 그 각의 그물 속에서 지금-여기는 살아있는 물고기처럼 퍼덕거린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달팽이의 지나간 자리, 비행의 궤적, 날아가는 새의 활공 동선에서 우리는 시간의 흔적을 발견한다. 위빠싸나 수행자들은 그들의 존재로써 찰나가 되어버림으로써 그렇게 한다. 그들은 달팽이가 되어 달팽이의 지나간 자리를 반추한다. 그들은 날아가는 새의 활공 동선에 제 의식을 겹쳐냄으로써 그 시간을 살아낸다. 그들은 움직일 때 흐르는 시간에 의식을 집중한다.
듀드니의 전작 『밤으로의 여행』에서와 마찬가지로『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에서도 저자의 숨길 수 없는 박물적 지식과 감성의 조합은 빛을 발한다. 황혼에서 새벽까지 이어지는 시간들을 관찰하고 시적인 서술 속에서 밤의 현존을 살려낸 『밤으로의 여행』에서 특별한 책읽기의 기쁨을 오롯하게 맛보았던 나는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그리고 출판사의 배려로 듀드니의 한국어판 신작이 책이 되어 나오기 전에 먼저 읽는 뜻밖의 행운을 누렸다. 우선 듀드니의 책들은 명석한 수사학의 기둥들이 떠받치고 있는 回廊(회랑) 같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문장들이 그렇다. “디지털 문자반은 시간이 조악한 차원에서 미세한 차원으로 미끄러져가는 스펙트럼이다. 좌측에는 움직이지 않는 時(시)가 있고 신문 헤드라인처럼 버티고 있고, 그 다음에는 分(분)의 행렬이 근엄하게 이어지고, 그 뒤를 秒(초)가 째깍거리며 쫓아간다. 그 오른쪽에는 1/10초가 있는데 괴롭도록 빨리 지나간다. 하지만 가장 매혹적인 것은 1/100초이다. 녀석들은 폭포수나 광선쇼처럼 최면을 거는 것 같다. 미친듯이 춤추는 이것들은 너무나 바르게 휙 지나가버려 읽을 수조차 없다.” 듀드니의 문장들은 노릿하고 권태로운 생의 순간들 속에서 솟구치며 사라져간 시적 각성의 시간들을 회상할 때 아름답고, 흘러간 시간과 흘러온 시간 사이에서 사실 관계를 규명할 때 명석하다. 그 아름다움과 명석함을 뒤섞고, 거기에 자연과학과 철학과 문학을 비벼서 시간에 대한 서정적 이해라는 지평을 열어갈 때 끔찍하다. 욕망하지만 내 손이 가 닿을 수 없는 매혹적인 것들 ! 가질 수 없는 것을 욕망하는 생은 다 끔찍하다. 듀드니는 시간의 기원, 시간의 역설, 시간이 미치는 영향들에 대해 이론적으로 쓰지 않는다. 다만 살아온 시간들을 직조하여 아름다운 시간들의 타피스트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우리 삶을 떠받치고 있는 저변들인 시간 속에서 솟구치고 공중에서 흩어지고 잘게 쪼개져 끝내 사라지는 시간들을, 아니 시간들의 기미들을 명민하게 붙잡아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우주적 추상을 뒤뜰, 사계, 이웃들과 함께 한 세상들이라는 실재 속으로 끌어내는 그의 놀라운 시적 통찰, 그리고 생동하는 문장들에 나는 거듭 놀라고 흥분하고 매혹당한다. 듀드니의 『세상의 혼 ― 시간을 말하다』을 읽는 일은 시간에 대한 메마른 지식을 얻는 순간이 아니라 이 우주적 진실과 조우하는 즐겁고 유쾌한 여행의 순간이다.
_ 장석주 / 시인

옮긴이의 말


전작 ‘밤으로의 여행’에서 신비한 밤의 세계로 감성 여행을 떠났던 크리스토퍼 듀드니가 이번에는 밤보다도 더욱 신비하고 거대한 시간의 세계로 독자들과 함께 탐사 여행을 떠났다. 오늘 날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시간을 화두삼아보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쪼개고 나누고 아끼고 아무리 애를 써도 늘 턱없이 모자라기만 하는 시간. 정해진 월급봉투로 한 달 살림을 살려 애쓰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일 수밖에 없는 주부처럼 우리는 어떻게 하면 정해진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서 쓸까,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고 늘 아이디어를 짜낸다. 때로는 그렇게 기를 써도 여전히 모자라기만 한 시간에 슬그머니 앙심이 일어날 때도 있다. ‘시간을 장악하고 싶다’ ‘시간을 이해하고 싶다’ 하다가는, ‘도대체 시간이란 놈의 정체는 무엇일까’는 철학적인 궁금증까지 일어나기도 한다.
듀드니의 시간 여행은 생명이 기지개를 켜는 봄의 3월, 이제 막 마지막 눈자락이 녹아 없어지려 하는 자신의 집 뜨락에 날아온 올빼미와의 강렬한 만남, 찰나의 조우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생명이 하나의 순환 고리를 끝내고 흙으로 되돌아가는 11월, 마을을 지키는 노송과의 새로운 만남에서 여행은 긴 여정을 끝낸다. 늙은 소나무가 안으로부터 천지사방으로 동시에 내뿜는 바로 시간임을 느끼는 것이다. 책의 시작점에서 시간이란 어디에나 통하여 불어가는 대숲속의 바람같은 것이라 느꼈던 그의 시간개념은 책의 말미에서는 “시간이란 만물의 중심에서 동시에 솟아나며, 시간의 화살은 동시에 모든 곳을 향하고, 삼라만상은 시간과 함께 빛난다.”고 말하게 된다. 그 사이 계절은 봄에서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로 하나의 순환을 마치게 된다.

시간이란 흐르고 난 후엔 그 존재가 느껴지지만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시간을 인지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도 시간을 느끼기가 용이한 경우를 들라면, 극히 짧은 시간인 현재의 찰나이거나 또는 그 길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영원의 두 경우가 있다. 즉 빛과 어둠의 대비가 극적인 렘브란트의 그림처럼 이런 양극단의 경우가 우리의 인식을 깨우는 것이다. 보통 선(禪)에서 말하는 ‘지금 이 순간 속에 온전히 존재하기’를 성취한다면 지금 이 순간 속에서 찰나와 영원을 동시에 맛볼 수도 있다. 명상을 해본 사람이라면 그런 순간을 경험했을 것이다. 또는 일출과 일몰의 순간 우리는 시간의 멈춤과 시간의 영원을 동시에 느끼기도 한다. 또는 정적의 밤을 밝히는 달빛 속에서도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 고요해지며 시간이 멈추는 경험을 해보았을 것이다.

듀드니 역시 전작 ‘밤으로의 여행’에서 “빛은 완전히 투명한 폭포처럼/ 침묵과 정지의 격류처럼/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렸다.”는 일출의 묘사로 대미를 장식했고, 이 책에서도 일몰의 장관을 섬세한 언어와 독창적인 표현으로 전하며 머무르고 싶은 순간을 영원히 고정시키는 카메라처럼 순간들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글렌 굴드가 너무도 정확하게 연주한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음악에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태양빛을 연상시키는 무언가가 있다.”며 시간의 예술인 음악과 영원의 빛을 연관시켰다. 알베르 까뮈는 “돌더미 속에서 굵은 거품을 일으키며 끓는 빛 속에서 신들은 말한다.”고 하여 빛속에서 신의 존재를 보았고, 우학스님은 “닫힌 선방 창에 스며든 햇살이 마음 가득 ... 환하게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그 빛 속에서 부처님의 깨달음을 보았다. 고은 시인은 얼마 안되는 얻은 음식을 나누어먹은 두 명의 거지를 비추며 밝게 빛나는 초승달 속에서 강렬한 태양빛과 깊은 인간애를 보았다.

하지만 듀드니와 함께 한다면 시간에 관해 그보다 더 미시적인 차원과 더 거시적인 차원을 모두 넘나들 수 있다. 시간의 신화와 시간의 역사, 시간의 철학과 시간의 우화, 시간의 과학과 시간의 미래학, 그리고 시간을 절묘하게 묘사하고 포착해낸 시와 문학을 넘나들며 섬세하게 직조해낸 이 책의 방대함은 시간을 알고자 하는 그 어떤 독자라도 만족시켜줄 것이다.

이를테면 이 책에서는 고야의 그림에 상징적으로 담긴 ‘만물을 먹어치우는 시간’, ‘세상의 피’와 같은 원색적인 시간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얼마나 언어생활의 일부가 되어있는지를 밝히기 위해 ‘time’이 들어간 다양한 영어 표현들을 담아놓은 몇 페이지는 친지들과의 대화에 톡톡 튀는 활력을 불어넣어줄 것이다.

고대의 해시계에서 시작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기계인 시계가 처음 수도원에서 발명되던 순간부터 현재의 가장 정확한 원자시계까지 시계의 발달사가 그 시대의 문화사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전개되는가 하면, 자연적 시간을 넘어서서 인간의 과거와 미래를 왔다갔다 할 수 있는 시간기반예술의 역사가 또 카메라, 영화의 역사와 함께 다채롭게 전개된다.
또한 지상에서 볼 수 있는 깊은 과거의 증거로 상가몬간빙기의 지층과 화석이 있는 곳으로 독자를 안내하기도 하고, 먼 미래로 가서 우주가 계속 팽창하다가 소멸할 것인지, 아니면 막판에 수축을 할 것인지를 논하는 미래과학의 세계로 데려가기도 한다.

듀드니의 책을 번역하면서 내가 끝없이 감탄하고 또 행복감을 느겼던 것은 자신의 정원에서 시간과 함께 일어나는 식물과 꽃의 변화를 그가 얼마나 예리하게 감지하고 묘사하며 느끼는가 하는 것이다. 그렇게 애정어린 눈으로 자신이 가꾸는 꽃과 식물의 변화를 지켜보는 모든 순간마다 그는 200% 살아있었으며 온전히 그 순간과 함께 했다. 그 순간 그 자신이 꽃이었으며 꽃이 그 자신이었다. 그래서 그는 말한다. “나는 현재에도 향수를 느낀다. 너무나 덧없기 때문이다. 현재의 무상성이라는 빛 속에서 그것은 얼마나 더 애절할 것인가?”

시간에 대한 박물지이며, 시간에 관해 우리가 알고 싶은 것, 알아야 할 것은 다 들어있는 이 책과 함께 하며, 듀드니만의 정갈하면서도 화려하고, 정확하면서도 유려하며, 독창적인 언어의 세계 속에서 독자들도 행복한 시간을 보내기를 바래본다. 그리고 가끔 듀드니가 그랬듯이 자신의 현재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보기를 바래본다. 그리하여 프랑스인들이 말하는 ‘작은 죽음(La Petite Mort)’ 즉 시간을 초월한 지극한 행복감을 맛보기를 바래본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을 통해서만 우리는 과거와 미래, 그리고 영원과 통할 수 있기에...
_ 2009년 11월 진우기

목차

추천사 시간은 이 세상의 혼 _ 장석주 / 시인

1부 현재

1장 '지금'이라는 천사 ― 시간의 본질
현재라는 시간
‘지금’의 형태
‘지금’의 크기와 속도
현재와 같은 시간은 다시 없다
시간 접촉
시간 바람
시간의 비밀스러운 손길
2장 시간의 화살
시간의 신
시간 할아버지
시간의 흐름
내면의 시간 풍경
유령 개울
3장 수도사, 증기선, 펨토니안 ― 시간의 측정
년年
월月, 주周, 일日, 시時
분分
초秒
밀리노, 나노초, 해안선
그럼에도 불구하고
4장 제논의 말 ― 시간 조작
스탠포드의 페가수스
전자 시간 ― 전신과 전화
시간의 거울 ― 영화의 탄생
현대적 시간의 시작
미속 촬영
슬로모션
미디어 시간의 지금
거대한 끌개
실시간과 시간 지연
5장 스타 젤리와 시간 원뿔 ― 시간의 속도
시간 원뿔
시간을 말하다
시간의 맛
6장 시간, 공간, 영원
시간을 멈추다
영원이라는 시간
시간을 넘다
7장 시간의 형성
두 얼굴을 한 ‘지금’
감옥 안의 시간
8장 내면의 생체시계
생체시계와 기억
시간과 기억
시간의 예술
거꾸로 가는 시간

2부 과거

9장 깊은 시간
석회석과 점토
시간의 관문 ― 상가몬 간빙기의 벽돌 공장
역사는 왜 더 가까워지나
고대의 존재, 살아 있는 화석
10장 현재, 뒷문에서 울리는 메아리
디너파티
타임캡슐
시간의 시작
영원의 고리
시간의 탄생
당신이 되돌릴 수 없는 것들
11장 시간 여행
계절 타임머신
타임머신과 웜홀
맞는 시간, 틀린 장소
시간 속에 정지하는 것 ― 시간 여행
타임머신 자동차

3부 미래

12장 앞으로 다가올 것들
새벽 여명
13장 영원을 훔치다
신들의 황혼
시간 그리고 종말
깊은 미래
14장 소나무의 비밀
빛나는 시간

역자후기 시간에 관한 모든 것을 말하다 _ 진우기

저자소개

저자 크리스토퍼 듀드니는 시인이자 에세이 작가로 언어와 문화와 미디어 등 광범한 주제에 관하여 집필 활동을 펼치고 있다. 듀드니는 지금까지 《완전한 인식The Immaculate Perception》을 비롯한 4권의 비소설과 11권의 시집을 출간했다. 듀드니는 캐나다총독문학상에 네 차례나 오른 후보이며 CBC 문학상과, 찰스테일러문학상 수상자이며 지난 가을 하버프론트 페스티벌상을 수상한 촉망받는 작가다. 가장 최근작인 은 캐나다 총독문학상 최종후보작에 올랐다. 듀드니는 현재 토론토에 살고 있으며 요크대학에서 강의와 저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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