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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

  • 정대화
  • |
  • 한울
  • |
  • 2017-06-15 출간
  • |
  • 472페이지
  • |
  • 154 X 225 X 25 mm /685g
  • |
  • ISBN 9788946063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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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우리는 김문기 사학비리와 40년을 싸웠다
상지대 교수의 눈으로 본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기록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문제되고 있는 부분 중 하나는 ‘사학비리 척결’이다. 사학이 우리나라 고등교육의 약 85%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가운데 그중 상당수가 부패로 신음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10년 발생한 ‘상지대 사태’는 사학에 대한 교육계의 관심을 다시금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김문기 이사장과 그의 하수인들로 구성된 구재단 체제가 온갖 종류의 사학비리를 저질러 학교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다. 그들은 학생들의 등록금을 빼돌려 돈벌이를 하고, 이에 저항하는 학생들을 간첩으로 몰아간 ‘용공 조작 사건’을 일으켰다.
이 책은 이러한 김문기 구재단 체제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파면당하고 수많은 고소·고발에 노출되었던 교수의 눈으로 본 상지대 민주화 투쟁의 기록이다. 김문기 구재단이 복귀한 이후에 일어난 상지대 사태를 중심으로 상지대 민주화 40년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민주화가 진행되는 그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담아낸 이 책은 상지대의 민주화, 더 나아가 사학 민주화를 위해 발 벗고 나선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느낄 수 있도록 이끈다.

학자 정대화, 그는 왜 파면 교수가 되었나?
강단에서 농성 천막으로, 농성장에서 재판장으로, 재판장에서 다시 강단으로

≪100분 토론≫, ≪JTBC 밤샘 토론≫ 등 각종 TV 토론회와 신문의 칼럼을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정대화’. 그가 어느 날 대중의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대중 앞에서 거침없이 자신의 소신을 밝히던 그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는 어디로 갔을까.
얼마 후 정대화 교수는 강원도 원주에 자리한 상지대의 농성장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2010년 교육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상지대 사태’의 한가운데에 그가 있었다. ‘상지대 사태’는 ‘김문기’라는 사람이 상지대를 인수한 이후 온갖 사학비리를 저지르면서 일어난 사건으로, 학생과 교수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김문기 체제에 반대하면서 발생했다. 정대화 교수는 이 사건의 중심에서 김문기 구재단 복귀를 반대하는 데 앞장섰고, 그 결과 교수직에서 파면되고 납치 미수 사건의 피해자가 되었으며, 수많은 고소·고발과 탄압에 노출되었다.

가혹한 현실은 때때로 상상 없이도 다가오는 법. 상지대는 곧 미증유의 혼란으로 빠져들었고 그 상황은 고스란히 우리에게 고통으로 다가왔다. 대법원 판결로부터 7년 후 모든 상황을 남김없이 모질게 겪은 다음에야 김문기가 상지대 총장이 되어 우리 눈앞에 등장하는 꿈같은 현실을 목격하게 되었으며 나는 즉시 교수직에서 파면되었고 헤아릴 수 없는 고소·고발과 탄압에 노출되었다. 2014년 하반기와 2015년을 뜨겁게 달군 그 유명한 상지대 사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_49쪽

정대화 교수가 상지대 사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 사태의 시작은 4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4년 김문기가 상지대를 인수한 이후 상지대는 사기업체보다 못한 학교로 변질되기 시작했다. 그는 학교를 교육기관이 아닌 돈벌이 수단으로 보았고, 여기에 부패 권력과 부패 정치권이 결탁하면서 사학비리 전성시대가 열렸다. 정권이 바뀌면서 김문기의 퇴출과 복귀가 반복되었으며 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발족하면서 상지대 사태의 정점을 찍었고, 이에 반대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의 투쟁이 시작되었다. 이쯤에서 궁금증이 생길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상지대를 이렇게 파행으로 내몬 것일까?

김문기, 구재단 이사회, 족벌보직체제로 이루어진 상지대
무수한 고소·고발로 구성원들을 탄압하다

저자는 김문기를 ‘돈벌이를 위해 학생들이 낸 등록금을 유용하고, 입시부정을 저지르고, 교수들을 탄압한 인물’이라고 소개한다. 그는 1965년에 대학교를 졸업한 반면 고등학교는 1992년에 졸업한 특이한 학력의 소유자로, 1974년 상지대 전신이었던 원주대의 법인 ‘청암학원’을 인수해 상지대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자신의 하수인들로 이루어진 족벌 보직 체제를 구축하고 대학을 운영하면서 이에 반대하는 교수와 학생들에게 탄압을 자행했다. 김문기와 구재단이 힘을 모아 대학으로 돈을 벌려고 하고 있으니 대학이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으로 선정되는 것도 그리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구속된 총장과 이사장이 부지기수고 기소되어 재판에 넘겨진 규모나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된 규모는 이루 다 헤아리기가 어려울 정도이다. 사학비리가 발생한 학교를 열거하기보다는 사학비리가 없는 학교를 열거하는 것이 오히려 손쉬울 지경이다. 교육기관은 이사장의 사유재산이 되었고, 학생들이 납부한 등록금은 쌈짓돈이 되었고, 학교는 설립자나 이사장의 가업으로 전락해버린 것이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이유는 너무 간단하다. 사학이 썩어도 너무 썩었기 때문이다. 사학이 왜 썩었을까? 사학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사학을 교육기관으로 보지 않고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학교를 돈벌이 수단으로 간주하게 되었을까? 여기에 우리 사학문제의 본질적인 기원이 있다._137쪽

상지대 학생들과 교수들은 김문기 구재단 체제의 횡포를 가만히 두고 볼 수 없었다. 구재단이 이사회를 장악하고, 퇴출되었던 김문기를 다시 총장으로 선출해 학교를 파행으로 몰고 가는데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교수와 학생들은 총장 선임에 반대하는 농성을 시작했고, 수업 거부와 집단 삭발을 이어갔다. 김문기 구재단은 징계와 고소·고발이라는 방법으로 그들을 가차 없이 징계하고 탄압했다.
돌파구를 찾기 위해서는 앞길이 보여야 한다. 하지만 상지대 사태는 출구 없는 미로처럼 끝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 없이 학교는 파행의 늪 속으로 빠져들었고, 끝없이 이어지는 고소·고발에 무력하게 대응하는 긴 소강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던 중 교육부에 감사청문회를 접수했고, 이어 고등법원은 2010년 사분위의 상지대 정상화를 취소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교육부 감사와 사분위 정상화 재판이 상지대 사태를 해결할 두 축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20번의 재판과 41번의 고소·고발을 거쳐 2016년 9월 9일에 정대화 교수의 파면이 최종적으로 취소되었다. 이로써 상지대는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문기가 해임되었고, 구재단 이사회가 해체되었으며, 구재단 보직까지 교체되면서 구재단 체제는 완전히 붕괴되었다.

여기까지는 김문기가 승리한 것으로 보였다. 역시 김문기는 대단한 사람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그러나 승리의 기쁨은 매우 짧았다. 학생들이 즉시 움직였다. 김문기 총장실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뒤이어 교수들도 농성에 돌입했다. 사학비리 전과자가 총장으로 복귀한 것에 대한 언론의 비판은 생각보다 강했다. 교육부도 김문기 불가 입장을 천명했다. 국회가 문제를 삼았다. 교육단체와 시민사회단체들이 나섰다. 결국 국정감사 청문회가 열리고 교육부가 특별종합감사를 시작했다. 김문기 족벌체제에 대한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그 반격의 종점은 2015년 7월 9일 김문기 해임으로 나타났다._188~189쪽

상지대 투쟁에 앞장설 수밖에 없었던 파면 교수의 이야기
사학 민주화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한 편의 다큐멘터리

인연이라고 해야 할지, 악연이라고 해야 할지, 김문기를 만나 온갖 고초를 겪게 된 저자에게 상지대 구재단체제의 붕괴는 남다르게 다가올 테다. 상지대를 “삶의 긴 여정에서 잠시 스쳐지나간 정거장이 아니라 내 삶의 전부”였다고 설명하는 그는 비리재단과 싸우는 일에 마다하지 않고 나서고, 김문기 퇴출 후 새로운 대학을 건설하는 일에 매진하며, 비리재단이 다시 복귀해 대학이 황폐화되었을 때 비리재단과 맞서 싸웠다. 하지만 “섶을 지고 불에 뛰어드는 것이 될지, 아니면 폭탄을 안고 적진에 투입되는 것이 될지”는 몰랐다는 정대화 교수의 말처럼 그 역시 상지대 민주화를 위해 싸운 행동이 긴 재판과 징계, 파면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김문기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반대한다고 징계·파면하고 직위해제하면 싸움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면 나는 잠시 괴롭겠지만 그 영향은 더 크게 확대되어서 본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상지대 싸움의 원리이다. 웬만하면 나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다. 그러나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김문기와의 정면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_436쪽

저자는 자신이 파면당하고 고통받는 것보다 상지대의 꿈이 훼손되고 미래가 소멸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설명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공들여온 노력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처럼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를 힘들게 했다. 470쪽에 달하는 결코 짧지 않은 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상지대 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는 것은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 책 곳곳에는 상지대 60년 역사에서 김문기와 맺어온 40년간의 악연을 정리하기로 결심한 그의 의지가 숨겨져 있다. 김문기와의 질긴 악연을 끊는 것, 이것이 그가 생각한 도리이며 지난 22년간 상지대 교수로 봉직해온 목적이자 민주주의와 개혁을 표방하며 살아온 그간의 삶의 가치였다.
이런 의식하에 저자는 지난 3년간의 상지대 사태를 중심으로 상지대 민주화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기록했다. 따라서 이 책은 사학에 관한 이론적이거나 분석적인 글이 아닌, 상지대 교수의 눈으로 본 상지대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과 그 치열한 투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정리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자는 자신이 써내려간 글이 결코 상지대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사학의 현주소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학의 문제점이 심각하다는 점에서 시작해 사학 문제는 개별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사학 전체의 문제이며, 정치와 권력의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개별 대학 구성원의 힘만으로는 사학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사학이 바로서야 교육이 바로 선다는 점을 천명한다.

제비 한 마리가 날아온다고 봄이 오는 것은 아니지만 봄이 예견되지 않는 한 결코 제비는 날아오지 않는다. 한 마리의 제비는 수많은 제비를 예고하는 것이자 곧 도래할 봄에 대한 약속이다. 우리 사회가 수십 년 부패족벌사학의 터널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며 지난 30년간 온갖 소모적인 논란 속에 지루하게 전개되었던 사학비리 척결과 사학 정상화 논쟁을 해결할 희미한 빛을 발견한 것이다. 이 변화의 중심에 우리나라 사학문제의 상징성을 가장 뚜렷하게 담지하고 있는 상지대가 있으며 봄이 오는 길목에서 제비를 불러오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_109쪽

『상지대 민주화 투쟁 40년』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드라마틱한 구조로 전개된다. 2017년의 상황을 먼저 언급한 뒤 김문기 구재단을 복귀시킨 2010년 사분위 정상화를 다루며, 구재단 복귀 후 민주대학 체제의 붕괴와 대학운영의 극단적인 파행으로 상징되는 구재단 복귀 이후의 상황, 이에 대한 구성원들의 치열한 저항, 교육부와 국회, 사법부의 역할, 그리고 대법원 판결과 임시이사 파견 등 상지대 사태를 사건 및 상황별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리했다. 따라서 책을 읽고 난 후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어쩌면 상지대 교수의 손을 빌려 저자와 상지대 구성원들이 오랫동안 꾸었던 길고 긴 꿈을 담아놓은 글일지도 모른다. 너무 악몽 같아서 하루빨리 깨고 싶었던 꿈이자, 40년이라는 세월 동안 한 번도 잊지 못한, 꼭 이루고 싶었던 ‘민주화’라는 꿈. ‘민주화’의 의미가 개개인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가고 있는 오늘날, ‘상지대 사태’로 알려진 하나의 사학비리 사건이 사학 민주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 있다.

[책속으로 추가]

총학생회장은 조재용 부총장을 응시하면서 천천히 발언을 시작했다. 교수로서, 선생으로서, 교육자로서, 부총장으로서 이렇게 하는 것이 정당하느냐는 취지의 말을 차분하게 이어나갔다.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말을 이어가던 총학생회장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_ 239쪽, ‘상지대 민주화의 광장, 구성원 대토론회’

그렇다. 우리가 이겼다. 2010년 8월 9일 사분위 정상화에 불복해 제기한 소송이 해를 여섯 번이나 넘겨 서울행정법원, 서울고등법원, 대법원을 거쳐 다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된 끝에 2016년 6월 23일 드디어 승소했다. 그 결과 2010년 8월의 정이사 선임이 취소되었다. 사분위 정상화가 취소되고 구재단의 복귀가 무효가 된 것이다._ 243쪽, ‘상지대 6년 만의 승리’

정부가 사학비리 척결을 외치고 있는데 현실에서는 왜 사학비리가 없어지지 않을까? 오히려 사학비리가 창궐하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검찰이나 경찰이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해도 범죄가 소멸되지 않는 것과 같은 것일까? 마피아나 그와 유사한 폭력조직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유지되는 것과 같은 이유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갖추어지면 곰팡이나 세균이 증식하는 것처럼 사학비리가 창궐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말하면 사학 운영을 규율하는 내부 조건과 외부 조건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사학 안에서 아무런 견제가 없이 얼마든지 부패와 전횡을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 내부 조건이고, 정부나 사회가 부패와 전횡을 용인해주는 환경이 외부 조건이며, 이 두 가지가 사학비리가 창궐하는 조건이다._ 307쪽, ‘김문기 구재단의 반국가적 형태’

10년의 세월이 지나갔다. 이 사건들과 관련된 수천수만 명의 학생들이 사학비리 반대에 대학생활을 바치고 청춘을 바쳤다. 적지 않은 교수와 교사, 교직원들이 자기 삶을 이 시간 속에 속절없이 묻었다. 그사이에 대학들은 어찌할 도리 없이 무너져갔다. 최근 몇 년간 정부재정지원 제한대학에 포함되고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낮은 점수를 받거나 부실대학으로 판정받은 대학들의 다수가 사학비리와 관련되어 있다. 이 손실을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_ 310쪽, ‘김문기 구재단의 반국가적 형태’

사분위는 제도상 교육부 산하의 행정위원회에 불과한 조직이지만 실제로 운영과정에서는 누구도 간섭할 수 없는 무소불위의 괴물기구가 되었다. 이 괴물기구가 작동을 시작하자마자 사학 민주화의 성과인 모든 임시이사체제를 파괴하기 시작했고 임시이사가 파견된 전국의 모든 대학과 초·중등학교를 비리재단에 돌려주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단 하나의 예외도 없었다._ 359쪽,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어떻게 사학 민주화를 파괴했나?’

김문기가 구속되어 학교에서 쫓겨난 직후에 내가 상지대 교수로 부임했다. 김문기가 총장으로 복귀하면서 나는 징계에 회부되고 곧 파면되었다. 그리고 김문기가 해임된 후에 나는 복직되었다. 마치 나와 김문기가 숨바꼭질이라도 하는 것 같은 상황이 만들어졌다. 돌이켜보면 우스운 일이다.
나는 1996년 3월에 처음 교수로 발령받고 20년 6개월 만에 재발령받았으니 교수를 두 번하는 셈이다. 20년 전에는 설레는 마음으로 이상희 이사장과 김찬국 총장으로부터 발령장을 받았는데 이번에는 법인에서 메일로 달랑 보내준 발령장이 전부였다. 인사발령 서류를 건네주는 사람도 없었고 축하 인사말을 해주는 사람도 없는 생뚱맞은 발령이었다. 오히려 복직된 9월 9일이 흥미롭다. 이날은 조선총독부가 미군에 항복한 날이고 북한 정권이 수립된 날이다. 그런가 하면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Antonius)가 탄생한 날이자 마오쩌둥(毛澤東)이 사망한 날이기도 하다. 이것이 내 복직과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일까?_ 421쪽, ‘상지대학교와 나’

1월에 시작한 재판이 11월에 끝났다. 재판이 길어진 것은 재판부가 우리 사건을 진지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재판을 시작한 첫 공판일에 판사는 “그 유명한 상지대 재판을 맡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공부하면서 성실하게 재판을 진행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거리낌 없이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말씀을 토씨 하나 빼지 않고 경청하겠다는 약속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참으로 진지한 태도였다. 재판장은 재판이 끝날 때까지 자기 말에 대한 약속을 매우 성실하게 지켰다. 통상 형사재판은 검사와 변호사 사이의 공방으로 진행되는 것이지만, 판사는 우리가 충분히 말할 수 있도록 배려했고 우리 말을 끝까지 들어주었다. 1심에서 우리는 좋은 판사가 어떤 판사인지를 보게 되었다._ 426쪽, ‘상지대학교와 나’

김문기가 꼭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반대한다고 징계·파면하고 직위해제하면 싸움이 더 커진다는 사실이다. 나는 한 치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나를 괴롭히면 나는 잠시 괴롭겠지만 그 영향은 더 크게 확대되어서 본인에게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상지대 싸움의 원리이다. 웬만하면 나도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고 싶다. 그러나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그렇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김문기와의 정면싸움을 마다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_ 436쪽, ‘상지대학교와 나’

그사이에 많은 교수들이 학교를 떠났다. 학생들도 매년 2000명씩 학교를 떠난다. 내가 이 학교에 머물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4년 후에는 나도 상지대를 떠나야 한다.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짧은 시간이다. 더구나 대학을 둘러싼 환경도 과거와 달리 매우 열악하다. 남은 시간 대학을 안정시키고 민주대학으로 발전시켜야 할 책무가 우리들에게 있다. 그리하여 상지대를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이 상지대를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고 상지대를 거쳐 가는 수많은 젊은 학생들이 상지대를 자랑스럽게 생각할 수 있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했던 대학 민주화 투쟁이 보람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상지대 민주화를 위한 노력과 결실이 ‘작은 것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이다._ 462쪽, ‘상지대학교와 나’

목차

2017년 상지대의 새로운 출발
사학 민주화의 상징, 상지대 정이사 무너지다
비리재단 옹호하는 사학분쟁조정위원회를 고발한다
민주대학의 붕괴(1)
민주대학의 붕괴(2)
민주대학의 붕괴(3)
교수 테러 및 납치 미수사건의 전모
부패사학의 밑동을 통째로 뒤흔든 2015년 상지대 대법원 판결
상지대 교수들, 22년 만에 김문기와 만나다
사학은 세습의 대상인가?
상지대 사태는 김문기와 교육부의 합작품
김문기와 2015년 국회 국정감사 청문회
학생들을 수업거부로 내모는 김문기와 교육부
상지대, 하나의 대학 두 개의 체제
상지대 사태, 고지가 바로 저기다
상지대가 미증유의 파국 상황에 직면했다
국회를 네 번 능멸한 대단한 김문기
상지대 민주화의 길고 긴 여정
상지대 민주화의 광장, 구성원 대토론회
상지대 6년 만의 승리
국회, 다시 상지대를 주목하다
재판 거는 김문기, 재판받는 김문기
상지대를 정상화하는 세 가지 길
상지대 사태, 마지막 국면에 이르다
김문기 구재단의 반국가적 행태
교육부, 상지학원 이사회를 해체하라
2016년 상지대 대법원 판결과 임시이사 파견
상지대학교의 비전
사학분쟁조정위원회는 어떻게 사학 민주화를 파괴했나?
상지대학교의 민주화 역사
상지대학교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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