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위고 겸손하고 가볍고 조그맣고 작고 가냘픈 것들의 세계!
이이체 시인의 첫 번째 시집『죽은 눈을 위한 송가』. 2008년 ‘현대시’에 ‘나무 라디오’ 외 4편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출향出鄕과 이별의 정서가 담긴 시편들을 담아냈다. 고향을 떠났을 때부터, 연인이 떠났을 때부터 인간의 덧없는 실존을 이미 오래전에 깨달은 저자는 가볍고 사소하고 여위고 흐릿하고 궁상맞은 것들의 반이어가 무엇인지 파악하며, 일상적으로 자주 사용되고 그래서 상투적으로 느껴지는 단어들을 의외의 장소에서 사용해 사소성의 시를 만들어내고 있다. ‘가족의 탄생’, ‘그림일기’, ‘단어’, ‘날짜변경선’, ‘낭만주의’, ‘취한 말들을 위한 여름’, ‘거짓말의 목소리’, ‘그로테스크 키스’ 등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그림자 족보
우울증이 빛을 찾았다.
호우주의보가 내려진 도시에서
어린 여자아이들이 신나게 파반느를 추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마셨던
커피에서 카페인이 말소되었다.
도서관은 활자보다 많은 책을 갖기 시작했다.
유리잔의 밑바닥에 흠집이 났고
노인은 새장에서 깃털만 모았으며
묵음들만 턴테이블에 남겨졌다.
모든 뒷모습에서 바닥에 이르기까지
아무도 유서를 읽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