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편린과 편린, 그 겹침의 통증
최정례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캥거루는 캥거루고 나는 나인데』. 1990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한 저자는 이번 시집에서 20년간 꾸준히 스스로와 싸워 변화해온, 그 치열함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이 시집은 이전 시집들과는 다른 형태를 갖는데, 이전까지는 현재에만 이르러있었던 저자의 시간이 느닷없이 찾아온 미래의 시간에서 시작하고 있다. 저자는 이와 같은 시간의 균열 속으로 걸음을 내딛으며 자신의 세계를 확장하고, 외면하고 있던 현실의 부조리로부터 자신을 구하고 동시에 세계를 구한다. ‘누가 칵테일 셰이커를 흔들어’, ‘착각하고 봄이 왔다’, ‘너는 내가 아니다’, ‘어디 먼 데’ 등 54편의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 이 책에 담긴 시 한 편!
우주의 어느 일요일
하늘에서 그렇게 많은 별빛이 달려오는데
왜 이렇게 밤은 캄캄한가
에드거 앨런 포는 이런 말도 했다
그것은 아직 별빛이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우주의 어느 일요일
한 시인이 아직 쓰지 못한 말을 품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의 말을 품고 있는데
그것은 왜 도달하지 못하거나 버려지는가
나와 상관없이 잘도 돌아가는 너라는 행성
그 머나먼 불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