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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휴와 침묵의 제국

윤휴와 침묵의 제국

  • 이덕일
  • |
  • 다산초당
  • |
  • 2011-07-12 출간
  • |
  • 413페이지
  • |
  • 147 X 218 X 30 mm /680g
  • |
  • ISBN 9788963705712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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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가난한 이들의 벗이었던 시대의 개혁가,
조선이 동아시아의 맹주가 되길 꿈꾸던 국제정치가,
교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사상가, 윤휴!


송시열과 노론 추종 세력으로부터 사문난적과 역적으로 몰려 사형당하고 철저하게 금기시된 윤휴의 삶과 사상이 역사가 이덕일의 10여 년에 걸친 열정적인 연구 끝에 오롯이 되살아났다.

금기가 된 이름, 윤휴는 누구인가?
윤휴는 1617년(광해군 9년)에 대사헌 윤효전의 아들로 태어나 1680년(숙종 6년)에 사약을 받고 죽은 조선 중기의 유학자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과거에 합격하지 않고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산림(山林)에 있었으나 숙종의 거듭된 요청으로 조정에 들어가 북벌과 사회 개혁의 꿈을 펼치려 했으나 끝내 이루지 못한 비운의 정치가이자 유학자였다.

정치적으로 윤휴는 남인-청남의 영수로, 허목, 윤선도와 더불어 이른바 1차 예송논쟁에선 자의대비에게 3년복을, 2차 예송논쟁에서 1년복을 입힐 것을 주장하여 송시열 등이 이끄는 서인들과 대립하였다. 또한 서인들이 북벌에 소극적이거나 실제로는 북벌을 반대한 데에 비해, 실질적인 북벌을 실현시켜 청나라에 복수하고 춘추시대의 제나라 환공과 같은 동아시아의 맹주로 자리 잡길 원했다. 윤휴가 출사할 무렵의 강희제 시절 청나라는 “삼번의 난”과 대만의 정성공 정경 부자의 반란 등으로 한창 어지러웠다. 그는 이때를 잘 이용하면 북벌에 성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를 위해 먼저 가장 먼저 실행에 옮긴 것은 국내 정치와 사회 구조의 개혁이었다. 신분마다 다른 재질로 만들어 차고 다니는 호패법을 폐지하고 모든 사람들이 종이에 신분을 적어 주머니에 차고 다니는 지패법을 실시하여 신분의 차별을 없애려 하였다. 또한 양반에게도 군포를 걷어 재정을 충당하고, 백골과 아약에게 거두던 군포를 폐지해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고자 했다. 그리고 만인과를 설치하여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등 사회 전반에 걸친 개혁을 시도했다.

한편 송시열 등에 의해 주자학이 교조주의화되던 분위기에 반발하여, 독창적이고 자유로운 학문을 하고자 하였다. “어찌 천하의 이치를 주자만 알고 나는 모르겠는가? 주자가 다시 살아온다면 내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공자는 동의할 것이다.”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윤휴는 도그마에 얽매어 있지 않았다. 그의 이러한 학문 자세는 당색을 넘어 칭송을 받았으나, 송시열 등에 의해 심하게 배척을 받아 사문난적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그의 개혁 시도는 서인 세력의 반발과 숙종의 변심으로 인해 실패로 돌아가고 만다. 끝내는 사문난적과 역적으로 몰려 1680년(숙종 6년)에 사사되고 만다.

조선 중후반기의 최대 라이벌, 송시열과 윤휴
송시열과 윤휴는 모든 면에서 라이벌이었다. 송시열이 주자학 유일주의를 주장하고 기틀을 세웠다면, 윤휴는 공자와 맹자의 원전으로 돌아가 자유롭고 독창적인 학문을 모색했다. 송시열이 송자(宋子인)라고 불리기까지 한 거유(巨儒)라고 한다면, 윤휴는 천문, 지리, 병법, 역사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사상가라고 할 수 있다. 송시열이 1,2차 예송논쟁에서 양반 사대부 기득권 세력의 입장을 대변했다면, 윤휴는 왕권의 정통성을 지지하며 양반 사대부보다 일반 백성을 위하는 입장을 택했다. 송시열이 북벌에 대해 내용상의 반대를 한 반면에, 윤휴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을 짜 북벌을 실행하려 하였다. 제도 개혁의 측면에서도 송시열과 윤휴는 정반대의 입장을 유지했다. 송시열이 서인-노론의 영수로서 세상을 주무른 권력자였다면, 윤휴는 개혁적이고 비판적인 시각을 견지한 정치가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조선 중후반기에 송시열과 윤휴는 정치적, 사회적, 학문적인 최대 라이벌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송시열이 윤휴를 끝까지 배척하고 증오하며 사문난적으로 규정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윤휴 이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윤휴가 이룩한 유학적 성과와 정치 사회 개혁은 실학자들과 같은 후배들에게 이어졌으나, 그의 죽음 이후 기득권 세력에 대항하여 개혁을 주장하는 유학자와 정치가는 조정에 거의 나타나지 못했다. 윤휴의 죽음 이후 붕당 정치가 붕괴되기 시작했고, 노론이 절대적인 권력을 갖게 되었다.

윤휴는 송시열과 노론 세력에 의해 배척당하고 금기시되었기에, 그 누구도 쉽게 그의 이름과 업적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수옥문답』이라는 책에서는 윤휴의 행적과 사상을 전하지만, 끝내 지은이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했다. 1927년에 이르러서야 윤휴의 문집이 진주 용강서당에서 발간될 정도로 윤휴는 철저하게 금기시되고 숨겨진 인물로 남았다.

역사가 이덕일이 윤휴를 말하다
역사가 이덕일에 따르면, 윤휴를 말하는 것은 단지 오래 전에 잊힌 한 흥미로운 인물을 재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 후기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져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왜곡된 정치 현실과 역사를 바로잡는 일인 것이다. 그렇기에 역사가 이덕일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윤휴를 주목해왔다.

이덕일은 이 책의 서문에서 “윤휴가 사형당한 후 조선은 침묵의 제국이 되었다. 더 이상 그와 같은 생각은 허용되지 않았다. 윤휴와 같은 생각은, 특히 그런 생각을 표출하는 것은 사문난적으로 가는 초청장이고, 저승으로 가는 초청장이었다.”라고 주장한다. 그만큼 조선 후기 사회는 다른 생각을 전혀 허용하지 않는, 아주 경직된 사회였던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가 세도정치와 일제 강점기 하의 기득권 세력으로 이어졌고, 지금의 정치계와 학계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왔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윤휴는 현재 기득권 세력이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치부를 건드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만큼 윤휴의 죽음은 조선 사회의 결정적인 분기점이 되었다.

그러나 이덕일은 다시 서문에서 “나와 다른 너를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 나와 다른 너는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시대, 그리고 실제 그렇게 죽여왔던 시대, 그런 증오의 시대의 유산은 이제 청산할 때가 됐다. 백호 윤휴의 인생은 그렇게 말하고 있다.”면서 윤휴의 삶과 사상을 복원하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음으로써 화해와 상생의 시대를 그리고 있다. 이 책에서“과거에서 현재를 보고, 미래를 조망한다.”는 그의 역사관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목차

서문 5

1장 중원대란(中原大亂)과 북벌 포의(布衣) 신
포의(布衣) 신 일어나다 17
오삼계 거병하다 22
산해관 전역 28
삼번의 형성 36
윤휴, 북벌을 주장하다 43

2장 의리는 주자의 독점물이 아니다
윤휴의 가계 55
올리지 못한 상소문 63
독창적인 학설과 반발 69
1차 예송논쟁 - 왕위 계승의 정통성 논쟁 80
날아드는 절교장 98

3장 포의 신 윤휴, 조정에 들어가다
제2차 예송논쟁 117
소년 국왕 숙종, 즉위하다 130
윤휴, 출사하다 138

4장 정치의 전면에 서다
경연에 입시하다 149
북벌이 첫째 162
삼복 제거 음모 169
대비를 조관(照管)하소서 182
남인, 청남과 탁남으로 갈라지다 186

5장 대개혁의 시대
지패법 시행과 좌절 199
호포법 시행 주장과 좌절 213
서얼 허통 237

6장 북벌의 시대
번져가는 삼번의 난 247
끊이지 않는 북벌 상소 250
수레 제작을 주장하다 253
만인과(萬人科)를 실시하다 264
체부(體府) 설치를 주장하다 273

7장 마지막 끈을 잡고 281
바뀌는 사회 분위기 283
바뀌는 숙종의 마음 296
남인에 대한 공세가 시작되다 307
금송 사건 316

8장 소현세자 후손 추대 사건
끝나가는 삼번의 난 327
강화도의 변서(變書)와 송상민의 상소 330

9장 금기가 된 이름
척신들의 공세 361
역모 사건으로 비화하다 377
시대의 우환 387
나라에서 유학자를 왜 죽이는가? 400
공작 정치의 나날들 408
윤휴의 빈자리 411

저자소개

저자 이덕일은 1961년 충남 아산에서 태어난 이덕일은 숭실대 사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동북항일군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에「당쟁으로 보는 조선 역사」를 시작으로 세상에 그의 이름을 알렸다. 그는 역사학자로서의 사료에 대한 철저하고 세심한 고증과, 대중과 호흡하는 집필가로서의 본능적인 감각과 날카로운 문체로 한국사에서 숨겨져 있고 뒤틀려 있는 가장 비밀한 부분을 건드려왔다. 그리고 언제나 발표하는 저술마다 논쟁의 중심에 섰으며 역사 인식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해 왔다. 그는 모든 권위와 기득권을 거부하며 주류 학계에 편입되지 않고, 그들이 무관심연하거나 감히 드러내지 못하는 치부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여 대중의 지지와 인기를 얻었고, 방송, 신문, 잡지의 기고 활동과 대중 강연 등의 활동을 통해 자신의 지식과 열정을 함께 나누는 데에 힘을 쏟았다. 『송시열과 그들의 나라』『정약용과 그의 형제들』 『아나키스트 이회영과 젊은 그들』『조선 왕을 말하다』 『조선 왕 독살 사건』등은 그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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