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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후 삼국지

황후 삼국지

  • 신명호
  • |
  • 다산초당
  • |
  • 2010-04-12 출간
  • |
  • 331페이지
  • |
  • 153 X 224 X 30 mm /564g
  • |
  • ISBN 978896370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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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조선의 명성황후, 청의 서태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
황후 3인의 삶을 통해 본 국내 최초 한 · 중 · 일 근대사 이야기

세 황후의 생존전략이 근대 동아시아의 흥망성쇠를 갈라놓았다!

왜 세 황후의 삶을 통해 근대 동아시아를 살펴보았는가!
19세기 말 동아시아는 서구열강의 충격을 받으며 변화의 진통을 겪었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군주제 국가들은 멸망했고 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래서 19세기 동아시아의 역사는 비극과 좌절의 역사였다. 오랫동안 최강국의 자리를 지켜온 중국은 안팎으로 도전을 받았고,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한중일은 동아시아 패권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을 벌여야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파란만장했던 전투 뒤에는 마치 숙명처럼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펼쳤던 세 황후가 있었다. 청의 서태후, 조선의 명성황후, 일본의 하루코 황후가 그들이다.
이 세 황후의 삶이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 이유는 그들의 삶이 근본적으로 19세기의 격동기와 대결해야만 했던 조선, 청나라, 일본의 역사를 대표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은 개인적인 삶이었을 뿐만 아니라 19세기 동북아 삼국의 험난했던 역사 그 자체이기도 했다. 수렴청정으로 40년간 최고 권력을 누렸던 서태후, 우유부단한 남편의 실지적인 섭정 역할을 했던 명성황후, 근대화의 바람을 탄 천황가의 안주인이었던 하루코 황후는 당시의 한중일의 상황을 그대로 반영하며 서로 다른 모습으로 자신만의 생존전략을 펼쳤다.
그리고 운명인 듯, 세 황후의 최후는 흥망성쇠가 나뉘었던 각 나라의 운명과 꼭 닮아 있었다. 서태후는 아시아의 오랜 패권국가로서 최고의 권력을 누렸지만, 반면 노쇠한 왕조의 최후를 떠맡아야 했다. 결국 서태후가 세상을 떠난 3년 후, 이른바 신해혁명으로 청나라도 멸망했다. 서태후는 숨을 거두면서 청나라의 운명까지도 거두어간 셈이었다. 가장 약자의 자리에 있었던 조선의 명성황후는 결국 일본에게 종주권을 넘기고 식민지로 전략한 조국의 말년처럼 일본 낭인들에게 처참하게 유린당하고 시해되었다. 개화 속에서 절대군주 천황의 충실한 아내 역할을 한 하루코 황후는 가장 행복한 삶을 산 듯하지만, 결국 일본의 군국주의에 일조함으로써 여성의 권리 신장을 오히려 퇴보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이 책의 저자 신명호 교수는 역사는 다른 나라와 차이와 비교를 뒀을 때만이 객관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조선의 왕실 문화를 전공한 저자는 오래전부터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해 왔다. 삼국의 근대 역사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저자는 세 황후의 진정한 삶이 보았다. 때론 악녀라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결과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보면 세 황후는 국모로서, 정치인으로서 급변하는 정세에 맞서 당당히 자신만의 능력을 발휘한 최고의 전략가였다. 그렇기에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근대 동아시아 역사는 물론, 세 황후의 천하경영법을 알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어디쯤에서든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선택권을 쥐고 누구보다 치열하게 고민했던 세 황후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하게 생존전략을 펼쳤던 세 황후의 천하 경영법은 무엇인가!
한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 것은 그 사람의 자유의지인가, 아니면 사회적 책임인가? 상황이 근대라면, 그리고 황실의 지도자라면 결코 시대적 배경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설왕설래 말이 많은 서태후와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에 앞서 이 책에서는 당시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음을 얘기한다. 서구문물의 유입과 서구열강의 압박은 당시 동아시아의 오랜 패권국인 중국에도 치명적이었다. 서태후가 말년에 사치를 누렸다고 해서 청나라의 망국의 책임을 개인에게만 떠맡길 순 없다. 이 책에서 보면 서태후가 정치 게임에서 상당히 노련했음을 알 수 있다. 서태후는 함께 수렴청정을 하는 동태후와 상호협력관계를 이루면서, 인재를 활용하고 다양한 정치력을 발휘했다. 일본과 서구의 침략에 대비할 수 있는 북양해군을 쇠락하게 하여 청일전쟁의 패배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한때 북양해군의 최고의 해군으로 키운 것도 서태후의 판단이었다. 결과적으로 청은 패망의 길로 들어섰지만, 동아시아의 오랜 패권자로서 중국의 자존심을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던 것이 서태후의 경영 철학이었다.
청의 변화는 곧 조선의 변화였다. 이 책에서 보면 청의 동치 황제가 17세의 나이로 친정을 시작하자 흥선대원군의 섭정 아래에 있던 고종이 매우 부러워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남편을 치켜세워 왕권을 찾게 해 준 이가 바로 명성황후다. 명성황후가 과연 권력을 욕심냈는가에 대해선 서태후와 비교해 보면 바로 아니라는 답변이 나온다. 명성황후는 권력과 명예보다는 치열하게 가족과 나라가 살 길을 찾았던 듯하다. 명성황후에게는 국가적 자존심보다는 외부의 침입을 견제할 수 있는 유연한 외교적 사고가 필요했다. 명성황후가 반청감정을 갖게 되고 일본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 했던 모든 상황이 삼국 중 가장 많은 이변을 겪었고 위기였던 조선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황후는 개화와 전통의 중심에서 균형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당시 메이지 천황은 막부로부터 권력을 돌려받으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권력을 차지했다. 일본의 황실 문화를 보면 전통적으로 황후가 정치적 세력에 개입할 여지가 적었다. 황후는 후궁과 크게 구별되지 않았고 여전히 전통적인 여성상을 강요받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코 황후는 황실의 여자라는 자리에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낳고 기르는 양처현모로서, 여성 노동자로서, 종군 간호부로서 적극적인 내조 활동을 벌였다. 그 결과 하루코 황후는 일본 군국주의의 충실한 조연으로서 여성 국민화의 표상이 되었다. 일본의 황실문화를 연구한 저자는 메이지 천황에 가려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하루코 황후에 대해서도 충분히 많은 사료를 제공하고 있다.

삼국지보다 더 치열했던 근대 동아시아사를 가로지르다!
근대로 들어서면서 삼국은 모두 파란만장한 변화의 통증을 겪었다. 그러므로 왕비 민씨, 서태후 그리고 하루코 황후의 삶은 궁극적으로 19세기의 도전에 얼마나 잘 응전했느냐의 여부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19세기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응전하기 위해서는 근대개혁과 세계화를 성공적으로 추진해야 했다.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서 민주화, 자본주의화, 평등화가 근대개혁의 핵심이었다. 또한 세계자본주의 체제에 성공적으로 진입하는 것이 당시의 세계화였다.
왕비 민씨와 서태후는 세계화라는 측면에서는 상당히 선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비록 외압에 의한 결과이기는 하지만 개방, 개항을 실현하였기 때문이다. 경제적 자본주의화, 사회적 평등화에서도 어느 정도 진전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 민주화에서는 거의 요지부동이었다. 조선이나 청나라의 군주제 전통이 너무나 강고했기 때문이다. 왕비 민씨나 서태후의 정치인식은 전근대적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왕비 민씨와 서태후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조선 지식인이나 청나라 지식인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실현되기까지 서구에서도 수백 년 세월이 필요했다. 반면 하루코 황후는 신생 제국의 국모역할을 맡았다. 그런 면에서 하루코 황후는 왕비 민씨나 서태후보다 훨씬 유리한 입장이었다.
세 황후의 전략은 결과적으로 나라의 흥망성쇠에 일조한 부분이 있다. 하지만 세 황후를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은 결과보다는 과정에 있다. 이 책은 조선, 청, 일본의 상황을 돌아가면서 보여주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러한 구분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 삼국의 정세를 유기적으로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조선의 임오군란, 강화도 조약, 청의 태평천국의 난, 청일전쟁, 일본의 대정봉환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짚는다. 저자의 이러한 연구는 최근 세계사라는 큰 수레바퀴 안에서 국사, 동양사, 서양사를 통으로 보려는 시각과 일맥상통한다. 방대한 스케일의 근대 동아시아 역사를 정리함으로써 역사 속의 인물과 사건을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바꿔 해석하는 오류를 줄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이 책은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었던 세 황후의 생존전략을 담을 수 있었다. 단순히 과거의 사실을 알리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입체적으로 삼국의 인물과 역사를 읽을 수 있는 이 책이야말로 근대의 동북아시아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새로운 개념의 역사서이다.
<역사 속 악녀라는 평가에 대한 세 황후의 입장 표명>

서태후 47년간 수렴청정을 하면서 최고 권력을 휘둘렀음. 아들 동치 황제의 죽음의 원인을 제공한 비정한 어머니이며 말년에 사치를 누림으로써 청을 망하게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음.

“내가 누구인가. 바로 이 광활한 땅의 주인인 청의 태후요. 내 지아비는 함풍 황제이시고, 내 아들은 동치 황제요. 함풍 황제가 승하하시고 나는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밤낮으로 국가의 치정에 골몰했소. 그런 나에게 망국의 책임을 물어 피도 눈물도 없는 악녀로 비난하는 것은 너무 억울한 일이요. 당시 서양 오랑캐들은 우리에게 예를 갖추지 않고, 우리 땅에 함부로 들어와 국가적 이익을 취하려 했소. 그들을 막고, 청의 자존심을 지키는 것이 내 임무였단 말이요. 나는 육방과 육군의 강화에도 소홀하지 않았고 조선과 일본과도 원만한 관계를 가지기 위해 노력했소. 뿐만 아니라 동태후 마마와 협력하고 인재를 등용하여 민생이 평화로웠던 ‘동치중흥’을 이루기도 했소. 내가 곧 청이었고, 청이 곧 나였소. 나는 그 누구보다 청을 위해 일한 사람이란 말이요.
물론 말년에 일본의 치졸한 속셈을 알지 못하고 북양해군을 쇠퇴하게 한 것은 나에게 책임이 있소. 솔직히 그렇게 빠르게 세상이 변할지 몰랐소. 나는 그저 이화원을 중건함으로써 청이 아직은 힘을 않았다는 것을, 청은 영원하리라는 것을 믿고 싶었소.”

명성황후 시아버지인 흥선대원군과 대치하며 남편 고종의 친정을 이뤄냈으나 당시 국내외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이지 않자 끝내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과 함께 조선 망국의 책임을 지게 됨.

“나는 조선의 국모요. 한 아이의 어미이고 백성의 지어머로서 나는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소. 조선은 이미 외세의 압력을 받아 크게 흔들리고 있었소. 자국의 힘만으로는 나라의 앞날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단 말이요. 나는 청과도 손을 잡으려 했고, 일본과, 러시아와도 손을 잡으려 했소. 하지만 결국 그들 누구도 우리에게 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소. 그러나 그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나라를 이용해서 조선을 넘보는 나라를 견제하는 길뿐이었소. 그리고 그 틈바구니 속에서 발달된 서구문물을 받아들여 우리의 힘을 길러야 했소. 그것이 한시가 시급한 마땅에 아버님이 방해까지 하시니 나는 안팎으로 수세에 몰릴 수밖에 없었소. 일본은 내가 조선을 강하게 키우려 하는 것을 알았기에 나를 시해한 것이요. 내 비록 일본 낭인들에게 억울하게 살해당했지만 일본의 더러운 손을 잡지 않은 것에는 후회가 없소. 나는 다시 태어나도 내 가족과 나라를 지키기 위해 어떤 짓이라도 불사할 것이요.”

하루코 황후 메이지유신을 등에 업고 일본의 군국주의에 일조했음. 그러나 신여성상으로 ‘현모양처’를 내세움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권리 신장을 현저하게 늦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음.

“지아비의 뜻을 따르고 아이를 훌륭하게 키우는 것은 아녀자의 당연한 도리입니다. 황후라면 응당 모범을 보여야지요. 나는 전쟁 중에는 가족과 떨어져 있는 병사들과 가족의 아픔을 함께하기 위해 천황과 어소를 따로 쓰기도 하고, 위문편지를 보내는 등 나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려고 애를 썼습니다. 나를 여성의 자유와 권리를 막은 여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시 서구문물이 쏟아져 들어오는 상황에서 나는 안으로 전통을 지키는 것이 여성들이 한 중요한 역할이라 생각했소. 그 덕에 큰 변화의 통증 없이 서구문물을 우리 것으로 하면서도 전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요. 그리고 훌륭한 인재들이 많이 생산될 수 있었소. 내 비록 아이를 낳지는 못했지만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야말로 여성의 최고의 행복이자 임무라고 생각하오.”

<책속으로 추가>

하루코 황후는 1868년 12월에 메이지 천황과 혼인한 후 1912년 7월에 메이지 천황이 먼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장장 34년을 함께 살았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 부부로 지냈지만 하루코 황후는 자녀를 한 명도 낳지 못했다. 대를 이을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사실은 하루코 황후에게 큰 약점이었다. 그렇지만 하루코 황후는 황후로서의 권위를 조금도 위협받지 않았다.
오히려 일본국민들에게는 역사상 최고로 현명한 황후이자 자애로운 국모(國母)라는 이미지를 남겼다. 그 이미지는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었다. 메이지 천황과 수십 년간 화목한 부부생활을 유지하며 끊임없이 노력한 결과였다.
3부 중에서 - 서양의 근대문물과 일본의 전통정신의 결합(부녀감 간행)


목차


머리말
프롤로그

1부 황후를 맞이한 삼국
왕비 민씨의 입궁 - 섭정의 그늘이 드리운 왕궁으로 시집오다
태후가 된 서태후 - 황제의 아들을 낳은 자가 권력을 잡는다
흥선대원군의 하야 - 제왕의 권력은 부자라도 나누지 않는다
동치제의 죽음 - 비정한 어미라 해도 권력을 놓은 순 없다
힘을 얻은 천황가 - 메이지 천황의 아름다운 황후가 되다

2부 왕권을 강화하는 삼국
왕비 민씨의 별입시 - 여자의 정치는 밤에 꽃핀다
어린 광서제의 등극 - 또다시 수렴청정으로 천하를 호령하다
강화도조약 체결 - 불리하다면 정권을 바꿔라
북양해군 결성 - 동양 최고의 해군력을 갖춰라
하루코 황후의 일상 - 도쿄에 부는 서구의 바람을 맞다

3부 외세와 부딪히는 삼국
복합상소운동 -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개화를 못할소냐
동태후의 죽음 - 권력자는 고독할 때 최고의 권력을 잡는다
임오군란 발발 - 이날의 치욕을 절대 잊지 않겠다
조공책봉체제 - 이득을 취할 수 있다면 조공이 아까우랴
부녀감 간행 - 여자는 자고로 현모양처가 되어야 한다

4부 운명이 엇갈린 삼국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 - 왕비 민씨는 온건개화파였다
이화원 준공 - 화려함은 혜안을 가린다
감옥에 갇힌 왕 - 음모는 늘 뒤에서 이루어진다
청일전쟁 - 서태후, 북양해군과 함께 가라앉다
시모노세키 조약 - 일본으로 패권이 넘어가다

에필로그

저자소개

저자 신명호는 1965년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역사를 좋아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역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고, 이후 숙명인 듯 대학에서도 역사를 전공했다. 졸업한 후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으며, 국사편찬위원회에서 편사연구사로 조선시대의 왕과 왕실 문화를 연구했다. 현재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문화재청에서 주관하는 궁중 생활상 재현 전시 자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조선초기 황실편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그의 연구는 주로 왕실 문화와 역사 속 여성들에게 집중되었는데, 그래서 그의 저서들은 잘 알지 못하는 우리 역사의 단면을 누구보다 발 빠르게 전하는 역할을 했다. 이런 그의 관심은 한 · 중 · 일 삼국의 군주제로 이어졌고, 그 성과가 이 책으로 집필되었다. 이 책은 근대 동아시아의 역사를 만든 주역이라 해도 부족하지 않을 명성황후, 서태후, 하루코 황후 세 황후를 중심으로 구한말 시기의 정세와 삼국의 유기적인 영향을 보여준다. 풍부한 역사적 상식과 자료로 당대의 상황을 마치 영상을 보듯 재현해낸 점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런 작업은 대학교에서 교편을 놓지 않으면서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은 그였기에 가능했다. 지은 책으로는『조선공주실록』『조선왕비실록』,『왕을 위한 변명』,『조선의 왕』,『조선왕실의 의례와 생활, 궁중 문화』,『궁궐의 꽃, 궁녀』,『조선왕실의 자녀교육법』,『조선의 궁궐에서 일했던 사람들, 궁』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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