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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들의 식물도감

철학자들의 식물도감

  • 장 마르크 드루앵
  • |
  • 알마
  • |
  • 2011-07-11 출간
  • |
  • 467페이지
  • |
  • 128 X 188 X 30 mm /570g
  • |
  • ISBN 9788994963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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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철학사에 빛나는 ‘사랑스런’ 식물학의 발견

기획 의도

그리스 철학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오늘날과 같은 편협하고 불편한 학문적 분열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장 마르크 드루앵이 쓴 이 책도 그런 점에서 만족스럽다.
식물학은 대립, 동맹, 협상을 수반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과학 지식의 사회사 영역에 속하기도 하고, 채집 기구나 표본 도구, 정원, 기계, 출판물 등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과학 연구의 물질사 영역에 속하기도 한다. 또 식민지 개발 역사를 비롯한 정치사나 남성 및 여성의 이미지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언급할 점이 많다. 이러한 접근 방식 중 일부는 역사의 기록을 바꾸고 박물학적 지식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이러한 사회적·역사적 분석으로 식물학적 논쟁의 의미를 모두 밝힐 수는 없다.
17세기 이후 식물학과 관련된 주요 문제들은 각기 이른바 ‘철학적인’ 이론들을 양산해냈다. 이론을 내놓은 사람들은 대부분 식물학의 이론적 쟁점에 관심을 둔 식물학자들로, 알려진 인물로는 투르느포르, 린네, 아당송, 쥐시외 일가, 캉돌 부자父子 등이 있다. 그 가운데는 ‘철학자’도 있었는데, 과거에 철학자라는 용어에 부여되던 넓은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학 철학에서 말하는 매우 좁은 의미에서도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처럼 식물학은 오래전부터 철학자의 사고에 한자리를 차지했다. 특히 라이프니츠는 《신인간오성론》에서, 콩도르세는 《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에서 당시 식물학자들이 연구하던 분류법에 관해 언급했다. 마찬가지로 칸트는 《판단력 비판》 2부에서 합목적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식물에 관한 지식을 고려했다. 몇몇 철학자는 애호가로서 식물학을 공부하기까지 했는데, 그중 장 자크 루소가 가장 유명하다. 한국어판 《철학자들의 식물도감》의 표지 이미지로 쓰인 ‘아라비아개자리’도 장 자크 루소 박물관의 허락을 받아 그의 식물도감에서 가져온 것이다. 루소는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 ‘일곱 번째 산책’ 말미에서 식물표본을 가지고 채집 일지를 쓰고, 표본 하나하나를 보며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는 자신의 모습을 묘사하기도 했다. 물론 이들의 연구는 과학자에 비하면 제한적이었지만, 높이 평가되고 분석될 만한 방식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주었다.
이처럼 식물학자가 ‘식물철학’을 구축하려고 했다는 사실과 철학자가 식물학에 관해 고찰했다는 사실은 철학이 식물학의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필요했음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중세 연구가들의 단골 소재인 ‘보편논쟁’에서부터 현대 논리학자들의 연구에 이르기까지, 보편개념에 대한 논쟁은 시대에 따라 그 용어를 달리하며 이어져왔는데, 17세기 말부터는 종의 개념에 관한 박물학적 이해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식물학의 이 같은 철학적 생산력은 논리학과 존재론의 문제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 밖에도 철학자의 관심을 끈 여러 시도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식물 세계에서 인간 사회와 유사한 모델을 찾으려는 시도도 있었다. 게다가 식물학은 주관성과 과학성의 관계에 대한 철학적 고찰을 부르기도 한다. 이 문제는 1880년 알퐁스 드 캉돌이 자세히 다뤘는데. 식물학자가 포괄적으로 직관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식물의 ‘외관’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검토되었다. 그는 식물학자로서의 업적 외에도 학술 활동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하는 전례를 남겼다. 1873년 《과학과 과학자의 역사》에서 해외에 거주하는 자국민의 수에 따라 여러 나라를 비교했고, 이 결과에서 출발해 각 나라마다 어떤 종교적,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특징이 학문 발달을 방해하거나 도와주는지 분석했다. 7년 후인 1880년 《기술식물학》 1장에서 캉돌은 전반적인 사회적 사실을 한편에 놓고 식물학적 활동을 다른 한편에 놓은 뒤, 둘을 개괄적으로 비교했다.
이 책의 목적은 철학과 식물학의 일부 경계를 살펴보려는 시도로 기획되었다. 식물학자가 철학에 대해 언급한 말과 철학자가 식물학에 대해 언급한 말을 분석하는 것이다. 또한 식물학자가 철학에 대해 언급해야 할 말과 철학자가 식물학에 대해 언급해야 할 말을 분석해보려는 의지의 결과물이다.

<책 속으로 추가>
03 명명법과 합의
“언어는 인간 정신의 가장 훌륭한 거울이다.” 라이프니츠의 이 말에 많은 철학자들도 동의할 것이다. 《신인간오성론》의 저자 라이프니츠는 ‘문헌학’의 유용성을 입증하기 위해 그와 같은 말을 했다. 또한 그는 ‘세계 모든 언어’를 위한 문법과 사전이 만들어질 것까지 예상하면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 사물의 명칭은 (여러 민족들의 식물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대개 그 특성에 부합하는 만큼 그 문법과 사전은 사물에 관한 지식을 위해 요긴하게 쓰일 것이며, 인간 정신과 놀랍도록 다채로운 인간 정신의 활동에 대한 지식을 위해서도 쓰일 것이다.”_103쪽

투르느포르는 “같은 속에 속하는 종들 사이에 요구되는 유사성”은 “모든 사물의 창조자”가 식물 자체에 해놓은 “표시”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 창조자가 “우리에게 식물에 이름을 붙일 권한을 주었다”고 말했다. 식물의 종류는 신의 섭리에 따라 정해지는 것이라 해도 그 명칭은 인간의 자유의지의 영역에 속한다는 뜻이다. 지금 백리향이라는 이름으로 알고 있는 식물이 박하라고 불렸을 수도 있고, 바꽃이라는 이름의 식물이 미나리아재비라는 이름을 지녔을 수도 있다. 투르느포르가 명칭에 대해 분석할 때 사용한 것이 바로 미나리아재비다._107쪽

린네는 속명을 위한 규칙을 정할 때만큼이나 정성을 기울여서 오늘날 식물학자들이 ‘기상記相’이라고 부르는 문장형 명칭의 구성과 형식, 길이까지 체계화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두 단어로만 이루어진 이명식 명칭에 명명자의 이름을 붙이는 방식을 도입한 뒤, 일상적으로 쓰는 명칭이라는 뜻에서 ‘실용명’이라고 불렀다. 이에 대한 내용은 《식물철학》 8장에서 반 페이지에
걸쳐 나온다._112쪽

휴얼은 … “새로운 명칭 체계를 도입하는 권한은 위대한 발견자에게만 인정된다. 국가 최고 권력 기관만이 새로운 화폐를 유
통시킬 권한을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화폐와의 비교는 존 스튜어트 밀의 《논리학 체계》에서도 볼 수 있다. “단어는 화폐와도 같아서 처음에 아무리 잘 만들어졌더라도 이 사람 저 사람으로 옮겨가는 동안 닳아서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단어만 습관처럼 사용할 게 아니라 그 단어가 가리키는 현상 자체를 늘 생각하여 화폐에 각인을 찍듯 단어의 의미가 다시 뚜렷해지게 만드는 것이다.”_151쪽

식물학자들은 명칭의 문제에 끊임없이 부딪치면서 고찰을 발전시켜왔고, 그 가운데 언어 철학의 주요 주제 가운데 몇 가지가 재발견되었다. 플라톤의 《크라틸루스》는 이 문제에 대해 기준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는데, 그 내용이 레키의 저서에는 명시적으로, 그리고 다른 학자들의 저서에는 재발견되거나 암시적으로 담겨 있다. 크라틸루스처럼 단어와 단어가 가리키는 실물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하기보다 헤르모게네스처럼 언어의 합의적 특징을 강조하는 경향이 더 많은 식물학 이론가들은 언어 기호의 자의성과 유연성 사이에서 영리한 중재를 선택한 소크라테스와 의견을 같이한다. 그들은 소크라테스처럼 단어의 지식을 사물의 지식에 종속시키는데, 이는 분류법과 분류법의 용도에 관한 고찰로 이어진다._157쪽

04 분류: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
1682년 존 레이는 《식물 신분류법》 서문에서 분류법의 유용성을 강조하면서도 어려움과 한계를 지적했다. “그러나 나는 독자들이 완벽하거나 철저한 무언가를, 즉 그 어떤 식물도 예외적이거나 특이한 경우로 남겨두지 않고 모든 식물을 아주 정확하게 구분해주는 무언가를, 다시 말해 그 어떤 종도 소속이 없거나 여러 소속을 갖도록 하지 않으면서 각각의 속을 그 고유 특징을 통해 정의해주는 무언가를 기대하게끔 하고 싶지는 않다. 실제로 자연은 (흔히들 말하듯) 갑작스럽게 비약하지 않으며, 반드시 중간을 거쳐 한쪽 끝에서 다른 한쪽 끝으로 옮겨간다.” 다시 말해 완벽한 식물분류법, 즉 논리적으로 만들어져 있는 동시에 식물의 특징 또한 하나도 빠짐없이 반영하고 있는 분류법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_165쪽

아당송은 1763년 《식물의 과》에서 라이프니츠를 언급했는데, 그와 편지를 주고받은 부르크하르트가 ‘식물의 성에 기초한’ 분류법에 대한 생각을 처음 내놓았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도 그 생각을 실행에 옮긴 것은 린네였다는 점은 인정한다. 실제로 린네는 1735년 《자연의 체계》 초판에서 식물의 생식기관만을 고려해 강을 정의한 바 있다._170쪽

수술이 하나만 있는 강은 1수술식물이라 불렀는데, 꽃가루를 지닌 수술을 수생식기관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남편이 한 명 있음을 의미하는 일부제一夫制에서 따온 용어다. … 제21강과 제22강은 수술과 암술이 한 그루나 다른 그루에 있으면서 서로 다른 꽃에 있는 식물이다. 이는 부부가 한 집에 살거나 다른 집에 살면서 침대를 따로 쓰는 경우와 같았고, 그래서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를 이용해서 각각 자웅동주(암수한그루), 자웅이주(암수딴그루)라고 칭한다. … 마지막 제24강은 수술이나 암술을 볼 수 없는 은화식물(민종자식물)로, ‘은화隱花’라는 명칭에는 혼인이 비밀리에 이루어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_170~171쪽

식물 이론가들과 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려 했던 철학자들은 몇 가지 중요한 인식론적 문제들을 고찰하면서 식물을 분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을 모색하고 편리함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 지식을 고려해야 하는지 토론했다. 그런데 이것으로 분류학에 관한 논의가 끝난 것은 아니다. 구조 및 기능의 문제와 분리될 수 없는 이 논의는 진화 이론에 의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_197쪽

05 목적, 형태, 기형
클로드 레비 스트로스가 토템 동물에 대해 얘기하며 말했던 것처럼, 열매는 ‘먹기 좋은’ 것이기에 앞서 ‘사유하기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헤겔의 《정신현상학》에 나오는 다음 대목이 그 증거에 해당하는데, 헤겔은 ‘철학적 체계의 다양성’이 ‘참과 거짓’의 대립으로 축소되지는 않지만 ‘진리의 점진적 발전’을 가져온다는 점을 이해시키기 위해 철학적 체계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을 봉오리, 꽃, 열매가 잇달아 나타나는 것에 비유한다. “봉오리는 꽃이 피면 사라지는데, 이는 꽃이 봉오리를 반박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열매가 나타나면 꽃은 거짓 실체였던 것으로 선언되고 꽃 대신 열매가 식물의 진리로 들어선다.”_201쪽

투르느포르가 말한 ‘꽃 본연의 의무’, 바양이 말한 꽃의 부위들의 ‘용도’, 린네가 말한 생물의 ‘목적’인 생식, 이 모두에는 합목적성이라는 개념이 자리해 있다. 이처럼 합목적성은 생명과학을 정립하는 데 동력으로 작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칸트는 1790년에 그러한 생각을 표현했다. “주지하다시피 식물과 동물을 해부해서 그 구조를 연구하고 이런저런 부위들이 어떤 이유와 목적에서 존재하는지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 그런 피조물에는 ‘쓸데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준칙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또한 이 준칙에 ‘우연히 생겨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일반적인 자연과학의 원칙과 동등한 가치를 부여한다._206쪽

현재 알려진 식물 성장 모델은 유사한 물리 현상에 대한 실험에 따른 것이든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것이든 간에, 엽서학의 선구자들과 앨런 튜링이나 달시 톰슨이 제시한 관점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이 분야에서 중요한 책으로 꼽히는 《식물의 알고리듬적 미美》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현재의 식물 성장 모델에는 미적인 관점도 반영되어 있다. 이처럼 식물의 아름다움을 구조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꽃의 아름다움을 기능적 측면에서 합리적으로 설명하려고 한 다윈의 시도를 연상시
킨다._218쪽

06 진화에 사로잡힌 식물학
쥐시외는 그 식물이 아메리카나 동인도제도를 다녀온 사람들이 가져온 것과 비슷한 고사리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쥐시외로부터 한 세기 뒤, 아돌프 브롱냐르는 1718년 쥐시외의 논문이 기여한 바를 다음처럼 요약한다. “앙투안 드 쥐시외는 탄광에서 발견된 식물이 우리 지역에서 자라는 식물과는 다르면서도 적도 지역의 식물과는 유사하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주목하게 해준 사람이다.”_246쪽

사포르타와 동시대 인물로서 그를 높이 평가했던 영국의 고식물학자 윌리엄 윌리엄슨은 자서전에서 의미심장한 일화를 들려준다. 영국과학진흥협회 답사 중에 화석림化石林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지역의 목사가 지질학에서 식물에 부여한 나이가 성서의 연대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시비를 걸었다는 것이다. 이는 중요한 증언인데, 진화론의 기본서에 비추어보면 진화라는 현상이 식물과 동물에 똑같이 적용되는 게 분명해 보인다 하더라도 공개적으로 토론하는 자리에서는 사정이 달랐기 때문이다. 진화에 대한 일부 종교계의 비판은 데이지의 조상이 목련이라는 설보다는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라는 설을 겨냥한 것이었다._252쪽

07 식물, 공간, 시간
식물은 이른바 환경윤리 안에서 눈에 띄지는 않지만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식물의 가치에 관한 최근 논쟁은 뜻밖에도 존 스튜어트 밀과 오귀스트 콩트의 대립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카트린 라레르가 이러한 관점에서 두 철학자의 입장을 요약하고 분석했다. 1851년 콩트는《실증정치학 체계Systeme de politique positive》에서 식물계는 언젠가 인간에게 유용한 식물로 축소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그러한 가망성에 대해 우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렇게 축소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15년이 채 지나지 않아 스튜어트 밀은 지식의 진보와 더불어 인간에게 중요한 속성을 지닌 것으로 밝혀지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는 나쁜 식물은 없다면서 콩트를 반박한다._280쪽

08 식물학의 주관성
소설가 프로스페르 메리메는 1846년 출간한 단편소설 《오뱅 신부Abbe Aubain》에서 반어적으로 분노를 표출했다. 박식한 젊은 신부神父가 몽상적인 성격의 외로운 귀부인에게 식물학의 기초를 가르쳐주는 내용이 나오는데, 이 귀부인은 친구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를 쓴다. … 귀부인은 공개적으로 혼인하는 현화식물과 ‘비밀리에 혼인하는’ 은화식물의 차이를 친구에게 알려준 뒤 불쾌한 척하면서도 내심 흥미로워하며 이렇게 말을 맺는다. “하나같이 정말 낯 뜨거워.”_291쪽

꽃의 사례를 내세워 혼인 규범의 절대성을 부인하다 보면 근친상간을 금하는 규범을 재검토하는 데까지 이를 수 있다.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에서 한 인물의 입을 빌어 남매간의 혼인을 옹호한다. “백합을 보십시오. 남편과 아내가 한 꽃자루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둘을 낳아준 꽃이 다시 둘을 결합시키지 않나요? 더구나 백합은 순결의 상징 아닙니까? 그래서 그 남매간의 결합이 열매를 맺지 못하던가요?”_293쪽

09 흑고니와 늘푸른참나무
흑고니는 논리학 서적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새다. 오스트레일리아에 흑고니가 있다는 사실은 그전까지 유럽 관찰자의 관점에서 검증된 명제로 여겨졌던 ‘모든 고니는 흰색이다’라는 명제를 반박하면서 귀납법의 한계를 보여주었다. … 버트런드 러셀은 약간 다른 관점을 취한다. 아주 많은 수의 흰 고니를 본 사람이 관찰로부터 모든 고니가 흰색일 가능성이 크다는 결론을 끌어내는 확률론적 귀납법을 설명한 뒤, “많은 동물의 경우 색깔은 매우 가변적인 특징이기 때문에 색깔을 근거로 한 귀납법은 특히 오류에 이르기 쉽다”고 인정했다._315쪽

낙엽수와 상록수라는 특징을 염두에 두면 고니의 예와 논리적으로 유사하면서 속과 종의 개념을 고려하게 해주는 사례를 찾아낼 수 있다. 북유럽 사람들은 참나무는 당연히 낙엽수라 생각했고 ‘모든 참나무는 겨울에 잎이 진다’라는 명제를 틀림없는 참이라고 여겼다. … ‘모든 참나무는 겨울에 잎이 진다’라는 명제는 참이 아닌 것이 된다. … 늘푸른참나무의 사례는 낙엽수든 상록수든 관계없이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는 모두 같은 속으로 묶는다는 전제, 즉 잎의 특성보다는 열매의 특징이 더 큰 비중을 갖는다는 전제가 필요하다._320쪽

10 식물학적 방법으로 분류하기
소바주는 《잎에 따른 식물분류법》에서 린네의 생각을 자신의 방식으로 해석한 분류법을 내놓은 바 있다. 그리고 많은 학자들이 주목했듯 의사로서 질병의 분류법에도 기여했다. 1970년 프랑수아 다고네는 《생명의 목록Le Catalogue de la vie》에서 소바주를 비중 있게 다뤘다. 같은 해 〈메디컬 히스토리〉 지에는 소바주가 질병분류학에 기여한 바를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_345쪽

식물학자 조지 벤담은 1823년 출간한 책에서 식물의 분류와 학문의 분류를 비교한 내용을 간략히 제시했는데, 이는 자신의 삼촌 제러미 벤담의 《크레스토마티아》에서 발췌한 것이다. ‘크레스토마티아’라는 용어는 팬옵티콘을 고안한 제러미 벤담이 만들어낸 수많은 신조어 가운데 하나로, ‘유용한 지식을 배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 그리고 이러한 체계를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두 갈래식 분류법’을 제시했는데, 이는 앞에서 라마르크와 캉돌이 《프랑스 식물지》에서 사용한 분류법에 대해 얘기하며 언급했던 이분법적 방식에 해당한다._350쪽

식물군락에서부터 질병, 인간의 지식, 예술 작품, 민담, 언어, 감정에 이르는 모두가 ‘식물학적 방법으로’ 분류하려 했던 대상이다. 이 목록이 전부는 아니며, 다른 예도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본보기로 사용된 식물학의 분류법은 단순한 수사적 사용이 아니라면 개발의 밑거름이 되기도 하고, 혼란의 근원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그러한 적용이 한계와 모순에 부딪친 경우도 성공을 거둔 경우만큼이나 교훈을 준다. 요컨대 여기에서 말하는 본보기는 모방해야 할 본보기가 아니라 관찰하고 증명하고 분석해야 할 본보기다. 식물학의 분류법과 여타 분류법 사이의 차이는 무엇보다도 분류할 대상이 지닌 성질의 차이에 기인한다. 식물학이 만들어낸 분류학적 도구의 올바른 사용은 그 도구를 적용할 실체의 성질에 달려 있으며, 실체의 성질을 중시하는 것이 바로 식물학자의 방식, more botanico다._363쪽

목차

여는 글

01 철학과 식물학
나무, 지식, 능력 | 규칙과 법칙 | 철학과 이론 | 용어의 이모저모

02 식물학사의 윤곽
식물학의 뿌리 | 르네상스 시대: 식물학 문헌의 개화기 | 식물의 역사: 다양성의 목록 | 식물물리학: 식물의 생애 | 집중과 전문화 | 연속과 단절

03 명명법과 합의
어원의 함정 | 이름을 붙일 권한 | 고독한 산책자와 열거의 즐거움 | 라마르크의 온건한 린네주의와 명명법 | 철학적 경쟁 | 지방명을 보존할 것인가? | 철학자와 보편성과 권력

04 분류: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 사이
퐁트넬과 다양한 분류법 | 라이프니츠와 식물의 성 | 가능한 계산 | 결정과 분류 | 식물분류법과 식물해부학 | 연속성 대 불연속성

05 목적, 형태, 기형
꽃은 어떤 역할을 할까? | 풀잎을 설명해줄 뉴턴이 나올까? | 자연이 직접 하는 실험 | 잎의 배열 | 꽃의 아름다움이 식물에게 도움이 될까? | 맹목적 합목적성

06 진화에 사로잡힌 식물학
흔적기관과 손재주꾼 | 계통과 분류 | 화석과 자연경관

07 식물, 공간, 시간
서식지와 원산지 | 교대와 순환 | 천이와 균형 | 지배와 자산

08 식물학의 주관성
몸에 이로운 지식 | 식물의 혼인 | 다양한 개체성 | 있을 법하지 않은 감각 | 주관의 올바른 사용 | 외관: 뭔지 모르는 어떤 것

09 흑고니와 늘푸른참나무
모순적인 귀납법 | 실재론과 유명론 | 종류 혹은 종 | 본질주의는 실재론인가?

10 식물학적 방법으로 분류하기
계界를 넘나들다 | 식물군락의 분류 | 질병의 분류 | 학문의 분류 | 예술작품, 법, 언어, 민담, 감정

맺는 글
위인의 전설 | 식물학자의 그림자 | 상상의 식물도감

감사의 말
참고문헌
주석
인명 찾아보기
그림 목록

저자소개

저자 장 마르크 드루앵은 파리자연사박물관의 철학 및 과학사 교수이며 과학기술사연구소인 알렉상드르쿠아레센터의 부센터장이기도 하다. 식물학과 생태학의 역사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고 있으며, 펴낸 책으로 《진화에 관한 여러 이론들》《종의 기원-찰스 다윈》《생태학과 생태학사-자연을 재발견하다》《기억과 추억-오귀스탱 피람 드 캉돌》들이 있다.

도서소개

식물학 속에 숨어 있는 철학

철학사에 빛나는 ‘사랑스런’ 식물학의 발견『철학자들의 식물도감』. 식물학은 대립, 동맹, 협상을 수반하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과학 지식의 사회사 영역에 속하기도 하고, 채집 기구나 표본 도구, 정원, 기계, 출판물 등이 없었다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는 과학 연구의 물질사 영역에 속하기도 한다. 또한 식민지 개발 역사를 비롯한 정치사나 남성 및 여성의 이미지와 어떤 관계에 놓여 있었는지 등 다양한 사회적ㆍ역사적 논의가 있어왔다. 17세기 이후 식물학과 관련된 주요 문제들은 각기 ‘철학적인’ 이론을 양산했는데, 이 책에서는 철학과 식물학의 일부 경계를 살펴보며, 식물학자가 철학에 대해 언급한 말과 철학자가 식물학에 대해 언급한 말을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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