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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역의 시비를 정하다

충역의 시비를 정하다

  • 김용흠
  • |
  •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 |
  • 2016-09-30 출간
  • |
  • 412페이지
  • |
  • 195 X 266 X 28 mm /1015g
  • |
  • ISBN 9788952117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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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영조ㆍ정조대 탕평정국에 반영된 노론 시파(時派)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당론서

조선시대 당론서(黨論書)는 정치사뿐만 아니라 이 시기의 역사를 총체적으로 담은 귀중한 기록문화유산이다. 당론서에는 해당 시기 정계와 학계를 주도했던 인물들의 구체적인 정치 행동뿐만 아니라, 그들의 현실 인식과 그 인식을 뒷받침하는 세계관, 정치적 과제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모습까지 매우 자세히 담겨 있다. 이는 실록이나 개인문집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당론서만이 가진 장점이다.
특히 이 책 『충역의 시비를 정하다』에서 다룬 『정변록』은 영조대 중반에서 정조대 중반까지의 탕평정국에 반영된 노론 시파(時派)의 시각을 살펴볼 수 있는 유일한 당론서이다. 책 제목에 암시되어 있듯, 영조 25년~정조 12년간 노론 가운데 홍인한(洪麟漢)계 북당(北黨) 세력과 김구주(金龜柱)계 남당(南黨) 세력이 연합하고, 소론 탕평당이 가담하여 사도세자 · 세손 · 정조 등에 대해 취했던 모역(謀逆)의 시도를 낱낱이 밝힘으로써 ‘백 년의 시비(是非)를 정하고 일세의 충역을 판가름’하려는 것이었다.
심낙수는 영조대 중반부터 대리청정을 시작한 사도세자를 둘러싼 신하들의 대응, 이 과정에서 발생한 세자 보호와 세자 위동(危動, 위태롭게 흔듦)의 시도를 충역의 기준으로 설정하였다. 당시의 주요 정치 세력인 노론과 소론을 막론하고 세자를 보호한 집단은 충, 세자를 공격하여 위험에 빠뜨렸던 세력은 역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 흐름은 세자의 아들인 세손에 대해서도 계속되어 그 절정은 세손 대리청정에 대한 찬반으로 나타났으며, 세손이 정조로 즉위한 후에도 정조에 대한 반역 시도가 되풀이되었다고 인식하였다.

책의 구성
『정변록』 상편은 영조대 중반 왕세자 대리청정과 왕세자를 무함한 김상로(金尙魯)ㆍ홍계희(洪啓禧) 일당의 역적 행위를 설명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왕세손 대리청정에 대한 저지 시도 및 정조대에 발생한 주요 반역 사건을 설명한 후, 김치인(金致仁)ㆍ김종수(金鍾秀) 등의 당역죄(黨逆罪)를 비판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고 있는데, 이는 정조대에 발생한 반역 사건의 와굴이 반세자 세력을 이끌었던 김치인ㆍ김종수의 남당으로 소급된다는 것을 드러내어 성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시파’ 가운데서 가장 철저한 토역론이었고, 소론 준론의 노선과 상통하는 면이 있었다.
하편은 심낙수가 1755년(영조 32)~1788(정조 12)에 걸쳐 친지 및 주변 인물들과 대화한 내용을 시간에 따라 일(一)과 이(二)로 나누어 편집한 것이다. 심낙수는 인척관계상 벽파 계열 인사가 많았다. 처형 이규위(李奎緯)와 동종(同宗)의 종씨(從氏) 심환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심낙수는 이들과 교유하면서 주요 현안에 대해서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끝내 이들과 정적이 되기까지 하였다. 한편 심낙수는 노론 가운데 홍낙안(洪樂顔), 서유린(徐有隣) 형제, 심이지(沈?之) 등 김원행(金元行) 문인 계열의 인사들 및 자신의 사돈인 권진응(權震應)과 친밀하였다. 소론인 정민시(鄭民始)와는 친교가 없다가 정조대 중반 이후로 노선을 함께하였다.

심낙수는 조선후기의 여느 사대부들과는 달리 학파 혹은 당파에 속하여 무리를 짓기 싫어하는 성향이었던 듯하다. 이는 친구인 홍낙순이 당대의 동당계 산림인 김원행을 찾아뵈라고 권하였어도 끝내 찾아가지 않았던 것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자신에게 우호적인 집단에 대해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였던 것이다. 기질상 그는 특정한 학맥이나 정파에 소속되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의론만 부합하면 노론, 소론, 남인을 가리지 않고 의기투합한 반면, 그와 반대의 경우에는 같은 당파라도 매우 엄정하게 비판하였다. 그 결과 동료 문인 집단이나 정파 차원의 체계적인 후원을 받지 못하고 곤경에 빠지는 경우도 많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정변록』은 영·정조는 물론 순조대 정치사 연구와 주요 인물의 상호관계를 파악하는 데 상당한 도움이 되고, 이 시기의 정국동향과 대립 구도를 시파의 견지에서 이해하는 데 분명한 근거를 제시해 준다. 또한 조선후기의 당론서들이 대개 영조대 중반까지를 다룬 경우가 많은데, 이 저술은 정조대 중반까지 주요 사건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영조실록』, 『정조실록』, 『순조실록』 등 관찬 역사서에서 언급할 수 없는 각 당파의 내부 동향까지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정변록』은 영 · 정조대에 발생한 주요 정치적 사건의 내막이나 이를 둘러싼 정쟁(政爭)의 맥락을 이해하는 데에도 많은 참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머리말 / v

해제: 심낙수의 정치적 생애와 『정변록』 1

『정변록』 서(序)

『정변록』 상(上): 거듭되는 역모, 그 연원과 배후
1. 기사년(1749, 영조 25)에 왕세자가 대리청정(代理聽政)하였다.
2. 정축년(1757, 영조 33) 겨울에 적신(賊臣) 김상로(金尙魯)가 공묵합(恭?閤, 창경궁 소재)에 입시해서 흉악한 말을 아뢴 적이 있었다.
3. 그해 다시 세자 시강원[春坊, 왕세자 교육 담당 관청]을 설치하였다.
4. 계미년(1763, 영조 39)에 주상이 산림의 여러 유학자들을 조정으로 불러들였다.
5. 갑신년(1764, 영조 40)에 홍봉한을 영의정에 임명하였다.
6. 경인년(1770, 영조 46) 봄에 시골 유생 한유(韓鍮)가 상소를 올려 홍봉한을 논척하였다.
7. 11월에 정이환이 흉소(凶疏)를 올렸다.
8. 신묘년(1771, 영조 47) 봄에 김한기(金漢耆)【김구주의 숙부】가 왕손(王孫) 이인(李?)과 이진(李?)의 일을 상변(上變)하였다.
9. 임진년(1772, 영조 48) 여름에 김치인이 남해로 유배되어 천극(?棘)에 처해졌다.
10. 임진년(1772, 영조 48) 7월에 김구주가 흉소(凶疏)를 올렸다.
11. 갑오년(1774, 영조 50) 겨울에 홍인한이 정승에 임명되었다.
12. 을미년(1775, 영조 51) 겨울에 왕세손(王世孫, 정조)이 대리청정하였다.
13. 병신년(1776, 정조 즉위년) 봄 삼사(三司)에서 합계(合啓)하여 역적 김상로의 추율(追律)을 청하였다.
14. 4월에 이덕사(李德師)ㆍ조재한(趙載翰)ㆍ박상로(朴相老)ㆍ유한신(柳翰申)을 국문하여 사형[正法]에 처하고, 환관 김수현(金壽賢)을 귀양 보냈다.
15. 9월에 역적 이율이 상소를 올려 홍봉한을 논척하였다.
16. 9월에 김구주가 섬으로 유배되었다.
17. 정유년(1777, 정조 원년) 가을에 궁중의 역적 홍상범ㆍ홍상길ㆍ홍술해ㆍ홍지해ㆍ홍찬해 모두 복주되었다.
18. 무술년(1778, 정조 2) 가을에 호서 역적 홍양해와 한후익이 군사를 일으키려 모의했는데, 사건이 발각되고 모두 체포되어 국문을 받았다.
19. 11월에 송덕상이 부름에 응하여 서울에 이르렀다.
20. 기해년(1779, 정조 3) 여름에 송덕상이 흉악한 상소를 올렸다.
21. 그해 가을에 홍국영이 벼슬을 그만두었다.
22. 경자년(1780, 정조 4) 정월 조참(朝參)에서 주상이 특별히 홍낙순이 권력을 농단한 죄를 물어 삭출할 것을 명하였다.
23. 신축년(1781, 정조 5) 4월에 영의정 서명선이 송상덕의 안치(安置)를 청하였다.
24. 임인년(1782, 정조 6) 여름에 이택징과 이유백이 복주되었다.
25. 9월에 세자가 탄생하였다.
26. 11월에 문인방(文仁邦)ㆍ이경래(李京來)ㆍ백천식(白天湜)이 국문을 받고 모두 복주되었다.
27. 계묘년(1783, 정조 7) 봄에 신응현(申應顯)이 상소하여 차비(差備) 의관(醫官)을 처벌하라고 청하였다.
28. 11월에 참판 윤숙(尹塾)이 상소하여 정휘량과 신만을 성토하였다.
29. 갑진년(1784, 정조 8) 7월에 역적 김하재를 국문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집안 식구는 노륙하였다.
30. 9월에 경사로 인해 김구주를 사면하여 특별히 육지로 나오도록 명하였다.
31. 11월에 이규명(李揆明)이 국문을 받았는데 형장을 맞다가 죽었다.
32. 을사년(1785, 정조 9) 봄에 김종수가 변고를 아뢰어 김두공(金斗恭)과 이율을 잡아들여 국문하고 모두 사형에 처하였으며 처자식은 노륙하였다.
33. 병오년(1786, 정조 10) 5월에 문효세자(文孝世子)가 죽었다.
34. 9월에 의빈 성씨(宜嬪成氏)가 갑자기 죽었다.
35. 10월 양사(兩司)에서 김우진(金宇鎭)을 잡아서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36. 11월에 이담이 죽었다.
37. 12월에 대간이 조시준을 잡아다가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38. 정미년(1787, 정조 11) 정월에 양사(兩司)에서 아뢰어 조시위를 잡아다가 국문할 것을 청하였다.
39. 판의금 김종정(金鍾正)이 이광운(李匡運)의 흉소를 고변하자 체포하여 국문하였다.
40. 9월에 행 사직(行司直) 정민시가 상소를 올려 물러날 것을 청하였다.
41. 무신년(1788, 정조 12) 3월에 김치인이 연주(筵奏)하여 이노춘의 석방을 청하였다.
42. 5월에 형조에서 박우(朴瑀)와 김종건의 초기(草記)를 조사하였다.

『정변록』 하(下), 일(一): 1756년~1779년 7월
1. 1756~57년, 남ㆍ북당 분열 조짐
2. 심낙수가 이규위와 사이가 나빠진 사연
3. 심낙수와 심환지의 차이점
4. 심낙수가 목격한 남당의 회합 장면
5. 김원행 문인 홍낙안이 남당을 비판하다
6. 심낙수 사돈 권진응이 남당을 비판하다
7. 홍인한은 원래 남당 사람
8. 심낙수가 심환지의 중매를 거부하다
9. 1776년(정조 즉위년) 홍봉한 처벌을 둘러싼 논쟁
10. 남당의 심낙수 포섭 공작
11. 심환지의 당심을 비판하는 심낙수
12. 홍국영의 심낙수 비판
13. 1777년 은전군(恩全君) 이찬(李?) 추대 사건에 대한 논란
14. 심낙수가 도당록(都堂錄)에 오른 사연
15. 심낙수가 홍국영을 처음 만나는 장면
16. 이규위가 남당의 정치공작에 앞장서다
17. 이규위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18. 세상물정 모르는 송덕상 발언의 파장
19. 홍국영이 남당을 끌어들인 이유
20. 남당이 사람을 끌어모으는 방법

『정변록』 하(下), 이(二): 1779년 8월~1788년
1. 심낙수와 송덕상의 첫 만남
2. 김양행과 송덕상의 차이점
3. 홍국영의 방자한 행태에 대한 소심한 반발
4. 홍국영의 치사와 그 이후 행태
5. 홍국영 퇴거 이후 심낙수의 출처
6. 홍국영 치사 만류 상소 소동
7. 남당이 소론 탕평파를 공격하는 방법
8. 심환지가 심낙수를 끌어들이려는 이유
9. 홍낙순의 심낙수 포섭 시도
10. 홍낙순ㆍ홍국영ㆍ김구주와 남당의 관계
11. 심낙수가 홍국영 처벌 상소에 참여하다
12. 홍국영 축출 이후 남당의 생존 전략
13. 심낙수가 훈련도감을 안핵할 당시의 정세
14. 심낙수의 홍국영 탄핵 상소가 나온 이유
15. 심낙수 상소의 논지와 파장
16. 심낙수 상소에 대한 이규위의 반응
17. 송환억을 다시 탄핵하여 이규위와 다투다
18. 송환억 상소에 대응하며 송덕상을 비판하다
19. 서명선이 송덕상의 처벌을 청하다
20. 김종후ㆍ김종수 형제와 이규위ㆍ이규경 형제의 차이
21. 이유백 사건 문사낭청이 되어 김종수와 갈등하다
22. 심낙수가 강동현감이 되어 백천식 옥사를 처리하다
23. 김우진이 신응현 상소를 알고 있었다
24. 윤숙 상소에 침묵하는 신료들을 비판하다
25. 심낙수와 정민시가 김종수에 대해 의견을 주고받다
26. 김종수가 자결하려 했다는 소문을 듣다
27. 모든 역적의 뿌리는 김구주다
28. 심환지가 상소하여 서명응을 공격한 것을 비판하다
29. 유악주의 심낙수 탄핵 상소가 나온 사연
30. 유악주 상소를 사주한 심환지를 힐난하다
31. 시벽 명목의 등장과 이노춘 상소가 나온 사정
32. 시파 탕평의 허점을 지적하다
33. 드디어 김종수가 삭출되다
34. 이율 옥사와 김종수
35. 김한기 상소가 나온 배경
36. 유배 간 이규위가 잘못을 후회한다고 말하다
37. 문효세자 훙서 직후의 갈등
38. 1786년 김하재와 이율을 거론한 심낙수 상소가 나온 사정
39. 모든 역모의 뿌리는 김종수인데 차마 말하지 못하다
40. 심낙수 상소에 대한 김종수 계열의 대응
41. 주변의 반응과 심낙수의 변명
42. 이규위가 심낙수 달래기에 나선 사정
43. 노론 남당이 심낙수를 소론으로 모는 방법
44. 김종수가 서유린에게 심낙수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하다
45. 김종수가 김우진의 환심을 사려고 목비를 세우다
46. 심낙수와 정민시는 의리로 통했다
47. 노론에서 시파가 나온 이유-이노술의 경우
48. 정민시는 노론 시파의 활약을 기대하다
49. 심낙수가 유배되기에 이른 사정
50. 심낙수가 유배지에서 서유린과 주고받은 편지

원문
『정변록』 서(序)
『정변록』 상(上)
『정변록』 하(下), 일(一)
『정변록』 하(下), 이(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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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tract
발간사

도서소개

백 년의 시비를 정하고 한 시대의 충역을 분변하다

“백 년의 시비(是非)를 정하고 한 시대의 충역(忠逆)을 분변하는 것, 이것이 『정변록(定辨錄)』을 지은 까닭이다.” 정조 시대 언관으로서 노론(老論)과 소론(少論)을 가리지 않고 역적 성토에 앞장서다가 벽파(僻派)의 견제로 흥양현에 유배되었던 심낙수(1739~1799)가 의리에 입각해 자신의 정론(政論)을 피력한 『정변록』을 지으면서 서두에 밝힌 말이다.

『정변록』은 다른 기록에서는 볼 수 없는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조선 후기 양반 지배층의 이익을 대변했던 당파인 노론 내부에서 사도세자와 정조를 옹호하면서 투쟁한 기록이라는 점이다. 흔히 시파(時派)와 벽파라는 말은 여기서 나온 것인데, 심낙수는 영조대 사도세자를 죽음으로 몰아간 세력이 정조대 각종 역모 사건을 줄기차게 일으킨 세력의 뿌리라는 관점에 서서 이들에 대한 철저한 토역을 주장한다.

본문은 상하(上下)편으로 나뉘는데 상편은 1749년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시작한 때부터 1788년까지 조정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강목체(綱目體)로 서술하였다. 하편은 다시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 1은 1756년 영조대 노론이 남당과 북당으로 분열되는 조짐에서 시작해 1779년 7월까지, 그리고 하 2는 1779년 8월부터 1월 흥양에 유배되기까지 저자인 심낙수가 주변 인물들과 교류하면서 토론한 내용이다.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의 『충역의 시비를 정하다』는 규장각 소장본인 『은파산고(恩坡散稿)』 권10~11에 실린 한문본 『정변록』을 쉬운 한글로 옮기고 해제와 주석을 달아 펴낸 책이다. 부록에는 원문도 함께 실었다. 이 책의 역주자들은 조선 중·후기 정치사 내지 정치사상사 전공자들로서, 2015년에 소론 준론(峻論) 입장의 당론서인 『현고기(玄皐記)』를 번역해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에서 『사도세자의 죽음과 그 후의 기억』을 냈고, 올해에 다시 노론 시파 입장의 당론서인 『정변록』을 『충역의 시비를 정하다』라는 제목으로 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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