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휠체어를 타는 어린 나를 보고 동정하며 안타까워하고 힘들 거로 생각했지만, 친구들은 내 휠체어를 때론 재밌는 놀이기구이고 내가 가진 특별한 액세서리로 여겼다.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나의 일부분으로 여겼다. 우리는 그렇게 같이 자랐다.
이렇게 여느 아이들과 다름없이 나를 대해 준 친구들.
그들이야말로 내 장애가 나의 전부가 아닌 부분일 뿐,
나는 나라고 담대하게 말할 수 있는 원천이 아닐까.
_「손과 다리가 되어 주고 싶어」, 33면
나의 장애가 우연히도 엄마가 때린 매를 맞고 일어났을 뿐이지, 절대로 그것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할 수는 없는데도, 사람들은 너무나 쉽게 엄마를 비난했다. 그때 알았다. 가장 쉬운 게 남 이야기라는 것을.
엄만들 자책이 들지 않았을까? 그런데도 엄마는 그 일로부터 자 유했다. 아니 자유하려고 했다. 사건과 자기 자신을 분리하는 작업을 마쳤다. 그저 여느 엄마들처럼 내게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에 온 힘을 다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고, 다른 의미부여도 없이 말이다. 아마 진정으로 자유하지 못했다면, 감당하지 못했을 나날들이었을 거다. 그게 엄마의 몫이었다. 자책감을 떨쳐내고 ‘예솔이 엄마’라는 사명감으로 생각을 전환하는 것.
_「필사적으로!」, 100면
하나의 문이 닫히면 또 다른 문이 슬며시 열려있었다. 나는 그 문 뒤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었지만, 닫힌 문 안에 있는 것보다 박차고 열고 나가기로 했다. 자신의 인생길에서 어려움을 맞닥뜨린 사람들이 ‘왜?’라는 질문으로 오랜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누군가 어두운 터널 속을 지나고 있다면, 질문을 멈추고 다가오는 오늘을 딱 하루만 견뎌보기를 부탁한다.
상황을 피하지 말고, 벗어나려고 애쓰며 몸부림치지 말고 잠잠히 오늘을 보내는데 의미를 두자. 그러면 터널 속에서 희미한 길이 보일 거라고 확신한다. 그리고 그 시간이 오늘의 강한 나로 성장하게 해주는 매우 이로운 사건이라는 걸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될 것이다. 뜻 모를 어둠의 시간은 반드시 이유가 있다.
_「답은 정면 돌파야」, 122면
하지만, 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 이제는 휠체어를 타고 산 시간만큼, 휠체어와 나를 구분하는 게 의미가 없어진 지금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최소한 ‘스스로 자신의 가능성을 얕보거나 제한하지 말자’는 것이다. 나의 능력을 과대평가해서도 안 되겠지만, 어떤 일 앞에서든 의식적으로라도 부정적인 생각들을 떨치고 시작해야 한다.
모든 부정적인 요소들을 비워도 우리는 끊임없이 근심하는 사람이니까. 인생의 약점을 갖고 있는 우리는 대개 부정적인 것에 기대어 일찍 포기하기 쉬운 사람이니까…….
길이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인생을 산다는 그 평범하고도 자연스러운 일을 끝까지 해봐야 아는 것이 아닌가. 어렵지만 그래도 도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 일이 정말 내게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면 할 수 없을 것이라 미리 규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못한다고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한 번 해보자’는 마음만 준비된다면 진짜 할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인생의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
_「안 하는 것과 못하는 것」, 194-195면
나는 현재 다시 걷겠다는 목표를 향한 레이스 위에 있다. 20년 동안 곤히 잠자고 있던 근육들을 깨우고 있다. 오빠와 재활 운동을 하면서 몸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흐물흐물 탄력이 없던 허벅지에 근육이 붙기 시작했다. 몸통을 지탱하는 복근과 등허리 근육이 탄탄해져서 통증 없이 휠체어 앉아있을 수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꾸준한 팔과 어깨 강화 운동으로 네발로 기는 자세가 가능해졌으며, 현재 손으로 바닥을 짚은 상태에서 무릎 서기도 가능하다. 마치 누어만 있던 아기가 혼자 기고, 앉고, 무언가를 짚고 일어서는 것처럼, 아주 천천히 단계적으로 그리고 감격스럽게 벌어지고 있다.
_「할 수 없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 생각하기」, 2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