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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을 낳은 후궁들

왕을 낳은 후궁들

  • 최선경
  • |
  • 김영사
  • |
  • 2007-09-14 출간
  • |
  • 234페이지
  • |
  • 150 X 220 mm
  • |
  • ISBN 9788934926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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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1. 조선 왕실의 비극적인 사건과 문제적 임금 뒤에는 후궁들이 있었다!

“사도세자를 죽여주시옵소서.”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생을 마감한 비운의 왕자 사도세자! 그의 죽음 뒤에는 생모인 영빈 이씨가 있었다. 그렇다면 영빈 이씨는 왜 친아들의 죽음을 사주했을까? 여기에는 노소론의 갈등이 주된 이유로 작용했다. 노론인 영조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신료들이나 영조로부터 세손(정조)의 안위를 보장받으려 했던 것이다. 만약 영빈 이씨가 사도세자의 죽음을 요청하지 않았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정조가 무사히 왕위에 오를 수 있었을까?
조선왕조 500년 역사에 비극으로 남은 왕 단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영조, 사도세자는 모두 후궁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내면에 영향을 준 건 왕의 생모들이었다. 후궁, 즉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내면에 연민과 콤플렉스를 남겼다. 정통성 논란에 휩싸여 왕권을 위협당하기도 하고 이러한 논란을 불식시키고자 생모추존에 열을 올려 또 다른 논란을 불러오기도 했다. 후궁이었던 생모들의 비극적인 삶이 그 자식들에게도 정신적인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그동안 왕비나 궁녀에 관한 책은 다수 출간되었으나 후궁의 삶을 본격적으로 다룬 책은 없었다. 남아 있는 기록이 미비하기도 하거니와 왕을 낳은 어머니로서 그들이 받은 대접이 세인들의 관심을 끌 만큼 대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에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 속 여성 이야기 발굴에 앞장서고 있는 여성문화유산해설사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저자인 최선경은 왕의 ‘여자’보다는 왕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추어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삶과 그녀들을 통해 새롭게 해석되는 조선 왕의 모습을 그린다.
??어머니! 당신의 못난 아들이 이제야 당신을 제대로 모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조는 자신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을 짓고는 직접 제문을 지어 올리며 흐느껴 울었다고 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후궁들은 남편보다는 아들과의 관계에서 절절한 사연을 더 많이 남겨놓았다.
왕의 어머니였던 후궁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왕을 이해하고, 조선의 역사를 이해하는 또 다른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왕을 낳은 후궁들》은 남성의 시각만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비뚤어진 역사 인식을 바로세우며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2. 여성문화유산해설사의 색다른 시각으로 구중궁궐 속 내밀한 풍경을 엿본다!
여성문화유산답사는 고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잊혀진 ‘여성의 역사(herstory)’에 주목하여 우리의 문화유산을 살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2004년부터 꾸준히 여성문화유산답사를 진행해온 저자는 여러 유적지를 답사하고 그곳에서 역사를 설명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통해 독자들이 쉽게 역사에 다가갈 수 있도록 안내자 역할을 한다. 또한 여기에는 양성평등의 시각으로 문화유산 보기를 실천해온 저자의 시각이 곳곳에서 드러난다.
질투가 심해 패악을 부리다 궁에서 쫓겨난 것으로 알려진 폐비 윤씨. 왕비가 되어 아들까지 낳았으니 더 이상 부러울 것이 없었으나 윤씨가 원한 것은 성종의 사랑이었다. 그러나 성종은 재임기간 동안 정비 세 명과 후궁 열 명을 두었고 그 자손만도 16남 12녀를 둔, 한마디로 바람기가 다분한 왕이었다. 세상에 남편의 바람기를 묵인하고 넘어가는 여자가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윤씨는 남성의 여벽은 죄가 될 수 없으나 여성의 질투는 죄가 되는 시대에 살고 있었다. 남성중심 이데올로기에 희생된 한 여인의 일생이 여성문화유산해설사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된다.
폐비 윤씨와 장희빈을 여성의 시각에서 비교하는 대목 또한 흥미롭다. 염문이 많았던 성종과 숙종 그리고 사약을 받은 폐비 윤씨와 장희빈은 상황이 유사하지만, 둘 사이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복수의 대상과 주체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점이다. 폐비 윤씨는 자신에게 사약을 내린 성종을 원망하기보다는 다른 두 후궁 엄씨와 정씨를 저주했다. 반면 장희빈은 그 책임을 숙종에게 물었다. 그리고 죽기 직전 자신의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든 것은 숙종과 왕실에 대한 복수이자 부계 중심의 가부장 사회에 대한 복수이기도 했다.
여성 간의 불화와 갈등을 발생케 한 축첩제는 근본적으로 가부장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제도였다. 축첩제는 여성의 적을 여성이게 했다. 한 남자를 놓고 본처와 첩이 서로 다투는 일이 많았고 심지어 살인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동안 우리의 역사는 여성의 행위만을 놓고 그들을 악의 화신으로 그려온 절름발이 역사였다. 이제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역사를 입체적으로 복원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왕을 낳은 후궁들》은 소외된 계층과 인물에 대한 관심을 통해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3. 후궁이 없었다면 조선의 역사 또한 없었다!
후궁과 후궁의 소생이라는 신분은 태생적으로 비극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왕의 총애만 얻으면 정비와 세자를 물리치고 권력의 중심에 설 수 있었던 이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당쟁의 아귀다툼 속에서 정치적으로 이용당하기도 하고, 왕의 사랑을 차지하기 위해 정치를 주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왕의 사랑을 얻어 후궁에서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더라도 손바닥 뒤집듯 쉽게 변하는 왕의 마음으로 인해 다시 미천한 신분이 되기도 했다.
후궁이 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왕실에 후사가 없을 경우에 정식 간택을 통해 양반가의 딸을 후궁으로 들였다. 이런 경우는 후궁이라 해도 처음부터 지위가 높았다. 또 다른 방법은 궁녀의 신분으로 궁에 들어가 임금의 성은을 입는 경우였다. 그러나 수많은 궁녀들 속에서 임금의 성은을 입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후궁의 자리에 올랐다 하더라도 그네들의 삶은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시대 가장 모범적인 후궁의 덕은 겸손과 양보였다.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는 “나라가 불행하여 왕비에게 적손이 태어나지 않고 우리들 후궁들만 자녀가 있으니, 이는 잠시 전하께서 우리들의 배를 빌렸을 따름이므로 너희들을 자녀로 대하기가 어렵다”고 하여 후궁의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정비에게 후사가 없을 경우 후궁의 아들을 정비의 양자로 입적시켜 왕위를 잇게 하였으니, 후궁들은 자신의 아들조차도 쉽게 대할 수 없었다.
후궁의 말년은 쓸쓸했다. 병이 들면 궁 밖으로 나가 치료를 받아야 했다. 특히 자손이 없는 후궁은 왕이 승하하고 나면 동대문 근처에 있는 정업원에 들어가 비구니의 신분으로 선대 왕의 명복을 빌며 말년을 보냈다. 살아서는 정비의 질투심에 치이고 당쟁의 중간에서 정치적으로 이용을 당하고, 죽어서 또한 제대로 된 왕의 어머니 대접을 받을 수 없었던 기구한 운명의 여인들. 후궁들의 일생은 이렇듯 고단하기만 했다. 여성의 기록이 늘 그러하듯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남아 있는 기록은 거의 없다. 고단한 삶을 살았던 이들은 죽어서도 그 고단함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목차

책을 내면서: 역사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
들어가기 전에: 후궁-첩 이야기

1. 죽어서도 아들을 지킨 어머니 - 단종의 어머니 현덕왕후 권씨
2. 조선 최초의 왕비 살해사건 - 연산군의 어머니 폐비 윤씨
3. 아들과 함께 폐서인이 된 어머니 - 광해군의 어머니 공빈 김씨
4. 후궁은 왕비가 될 수 없게 하라 - 경종의 어머니 희빈 장씨
5. 왕을 낳은 무수리? -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
6. 아들을 버린 어머니 - 사도세자의 어머니 영빈 이씨
7. 대비가 된 후궁 - 순조의 어머니 수빈 박씨
8. 망국의 한을 품다 - 영친왕의 어머니 황귀비 엄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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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지은이_최선경

2003년 9월에 시작한 서울시여성가족재단 주최 ‘여성문화유산해설 자원활동자’ 양성과정을 시작으로 여성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2004년 3월 여성문화유산해설사 모임이라는 동아리를 만들어 직접 발로 뛰면서 여성의 유적지를 찾아다니고 있다. 처음엔 유적지 해설과 관련된 조선의 왕비사부터 공부했다. 궁궐에 가서도 왕비와 궁녀 등 남성 중심 사회에서 억압 받으며 살아야 했던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살폈고, 왕릉도 왕비 능을 위주로 답사했다. 2004년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 여성관련 유적지 지도를 만들었고, 2005년에는 이를 자료집으로 묶어내면서 조선시대 왕비를 중심으로 한 답사코스를 개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제는 허난설헌과 신사임당, 의병대장 윤희순 등 여성인물을 찾아 떠나는 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여성의 시각에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후궁의 이야기는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계층과 인물에 대한 관심은 역사의 진실에 접근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도서소개

후궁들의 삶을 통해 잃어버린 조선의 역사를 복원하다

역사의 다양한 표정을 전해주는『표정있는역사』시리즈. 당대인의 삶의 모습 그 자체, 그 시대의 희로애락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역사를 지향한다. 왕의 표정에서 노비의 표정까지 이 땅에 존재했던 모든 삶을 담아내고자 했다. 그 여덟 번째 <왕을 낳은 후궁들>은 궁궐 안 깊숙이 감춰진 후궁들의 삶을 조명한 최초의 대중역사서이다.

조선왕조 역사에 비극으로 남은 단종, 연산군, 광해군, 경종, 영조, 사도세자는 모두 후궁의 아들이었다. 후궁, 즉 첩의 자식이라는 꼬리표는 조선 최고의 권력자인 왕의 내면에 연민과 콤플렉스를 남겼으며, 정통성 논란으로 왕권을 위협하기도 했다. 후궁이었던 생모들의 비극적인 삶이 그 자식들에게도 정신적인 상처가 되었던 것이다.

역사 속 여성 이야기 발굴에 앞장서고 있는 여성문화유산해설사가인 저자는 왕의 여자보다는 '왕의 어머니'에 초점을 맞추어 왕을 낳은 후궁들의 삶을 살펴보고, 그녀들을 통해 조선 왕의 모습을 새롭게 해석하였다. 권력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어머니와 아들의 사연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좀 더 다양한 시각에서 입체적으로 복원하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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