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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덕왕후

신덕왕후

  • 박영목
  • |
  • 시간의물레
  • |
  • 2017-04-19 출간
  • |
  • 338페이지
  • |
  • 175 X 225 X 21 mm /567g
  • |
  • ISBN 97889651117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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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때로는 파묻혔다 세상에 다시 드러나는 것이 역사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여 즉위할 때 강씨(康氏)는 유일한 왕비다.
1371(공민왕 19)년 열다섯에 이성계를 만나 1392년 조선을 건국할 때까지 고려 말의 격변기를 헤쳐 나가거나 대처하는 지혜와 결단력이 뛰어난 철의 여인이다.
원(元)나라에서 귀화한 변방의 별 볼일 없는 장수가 벌열이 즐비한 중앙에서 어찌 뿌리를 내릴 수 있었을까? 강씨를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아무리 출중한 무장이라도 이성계는 한낱 변방을 지키던 원나라 만호의 아들에 불과했다.
이런 이성계 앞에 강씨가 혜성같이 나타난 것이다. 신천강씨(信川康氏)가 전성기에서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고 하여도 고려의 명문거족이다.
남달리 지혜로운 강씨는 자신의 가문과 결탁하여 이성계의 무재를 더욱 빛나게 했다. 이성계를 통하여 자신의 꿈과 가문의 옛 영광을 재현하는 프로젝트라고나 할까? 이성계는 강씨를 통하여 원나라에서 돌아왔다는 주위의 차가운 시선을 떨치고 어떻게든 권토중래하리라 결심한다. 강씨와 이성계의 의중이 딱 맞아 떨어진 것이다. 그러면서 이성계는 자신이 몰랐던 고려 거가대족의 실상을 알아간다.
관직에서 물러나 쉬는 동안 강씨는 남편에게 서책을 가까이 하도록 권하는가 하면, 한편으로 친정의 친척들과 어울리게 하여 인간관계의 외연을 넓히게 하였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동북면의 거친 무장이 송도의 세련된 장군이 된다. 강씨를 빼고는 이성계를 말할 수 없다.
조야에서는 이성계보다 젊고 정치적 안목이 뛰어난 강씨를 더 어려워했다. 한 치의 허점을 보이지 않는 언행과 상대를 편안하게 대하는 마력에 모두가 붙좇았다.
강씨는 사람 보는 안목이 높았다. 인재를 모으고 필요에 따라서는 정권의 실세와 인척(姻戚)을 맺음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수완을 보였다.
불자로 대덕고승과 친분을 맺어 이성계의 막강한 후원자를 만들었다. 정계와 불교계를 넘나들며 조정에서 일어나는 일과 시속의 사정에 정통했다.
이성계가 결단하는 일은 조야를 꿰뚫어보는 강씨의 조언으로 이루어졌다. 조정은 친정과 인척, 시속은 스님을 통했다. 조야에 망라한 정보망을 항상 가동하고 있었다.
당시 풍속에는 정실이니 부실이니 하는 개념이 없었다. 향처(鄕妻)와 경처(京妻)가 다 적처다. 이를 당시에는 병처(竝妻)라고 하였다. 강씨는 첩이 아니다.
조선을 건국한 최초의 왕비다. 강씨와 이방원은 서로 다툴만한 관계가 아니다. 이방원은 강씨의 적수가 되지 못했다. 신덕왕후 생전에는『조선왕조실록』어디에도 이방원과 대화한 기록이 없다.
이방원은 신덕왕후(神德王后)가 무서워 서책이나 사냥으로 소일했다. 1396(태조 5)년 신덕왕후가 죽고 난 2년 뒤 이방원이 난을 일으켜 아버지를 왕위에서 끌어내리고 조선 최초의 세자 방석과 그의 형 방번 그리고 매형 이제를 죽인다.
그리고 형 방과(芳果)를 허수아비 왕으로 앉힌다. 명나라에서 정종에게 고명(誥命:임명장)과 인장(印章:국새)을 내릴 것이라는 정보에 형마저 왕위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왕위에 오른다.
태종은 자신의 입지를 위해 신덕왕후를 첩으로 만들었다. 첩의 아들 방석은 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자신의 정통성을 인위적으로 만들기 위해 신덕왕후의 행적을『조선왕조실록』에서 아예 통째로 없앴다.
신덕왕후에 대한 책이 한 권도 없다. 신덕왕후가 건국하는 것을 보지도 못한 한씨 신의왕후(神懿王后)에게 쫓겨난 것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몇 줄 안 되는 기록과 여기저기 흩어진 사료를 모아 신덕왕후를 되살려 보았다. 그러나 ‘조선건국의 어머니 신덕왕후’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머리말
태조와 정종, 그리고 태종에 관한 조선왕조실록을 수없이 읽고 또 읽었다. 또한 그 3대에 관한 조선왕조실록 영인본을 직접 5년여 동안 번역을 해보았다. 왜 그처럼 심취했을까? 중심에는 신덕왕후 강씨가 있었다.
실록을 편찬하며 몇 번에 걸쳐 수정하고 산삭하다 보니 곳곳에 모순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는 직접 번역을 하지 않더라도 국역 CD-ROM을 자세하게 꼼꼼히 읽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현상이다. 역사라고 반드시 사실 그대로 기록되지 않는다는 것을.
신덕왕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방원이 아버지를 왕위에서 강제로 끌어내릴 때 이미 예견된 일이다. 조선은 태조와 신덕왕후가 세웠으나 방원이 권력을 잡으며 철저히 태종의 역사로 둔갑한다. 그 뒤 조선은 태종의 역사가 되었다. 복잡한 일을 깨끗이 뒷정리하여 세종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며 태종을 명군이라 치켜세운다.
조선에서 이를 부인하면 폐족이 된다. 조선역사가 끝날 때까지 이는 성역이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느 역사학자도 태종을 있는 그대로 평가하기를 꺼려한다. 아마 그 중심에는 아들 세종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역사를 아는 수양대군이 조카 단종을 폐위시키고 심지어 죽인 역사가 어찌 우연이겠는가?
강씨(康氏)는 원나라에서 귀화한 이성계를 만나 임금이 되기까지 동고동락했다. 강씨 가문과 4촌 언니의 시가인 신씨(辛氏: 신귀)가문이 함께 쇠락하던 시기에 성계를 만났으니 정략결혼이란 설득력도 떨어진다.
강씨와 성계의 나이 차는 21살이다. 그러나 강씨는 보통 여자가 아니다. 언제나 성계를 앞에서 이끄는 탁월한 정치적 감각과 인재를 모으는 지략이 뛰어났다.
향처인 한씨와 원만하게 관계를 유지하여 전쟁터로 떠도는 성계의 마음을 편케 하였다. 위기가 닥칠 때마다 자녀의 혼인 등을 통하여 슬기롭게 극복하기도 하였다. 불교를 철저히 신봉하여 급변하는 이념의 혼란을 예방하는 완충역할에도 힘썼다. 스님들을 통한 백성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성계는 언제나 이런 부인과 의견을 나누었다. 사대부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백성의 소리를 부인을 통하여 들었다. 부인은 정치적 동반자이다.
이제 정도전은 역사의 재조명을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하였다. 그러나 동지였던 신덕왕후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은 없다. 현재에도 금기시하는 것인가? 아니면 여성이라 폄하하는 것인가?
하긴 왕비임에도 출생연도를 모른다. 왕비의 생일에 사면을 하였는데 모른다고 기록한 것이 역사다. 역신은 출생과 죽은 연도를 고의적으로 기록하지 않는다. 신덕왕후를 역신의 반열에 둔 것이다.
필자는 여기저기서 자투리를 모으고 술래잡기하듯 이 글을 썼다. 태조는 도성에 왕비가 아닌 ‘조선건국 어머니’의 능을 만들고 흥천사와 3층 사리탑을 지어 그 공덕을 영원히 기리려고 하였다. 나라를 세운 일세영웅의 사부곡(思婦曲)이다. 부족하나마 소설형식을 빌려 그 베일을 벗겨보려 시도하였다.
현대의학으로도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병을 앓으면서도 신덕왕후를 연구하고 공부하는 덕분에 씩씩하게 버티고 글 쓰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손녀 아리영과 외손녀 다율이가 우리역사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목차

읽는 차례

신덕왕후의 그림자 9
첫날밤 21
개경 가랫골에서 35
환골탈퇴 47
다시 전쟁터로 65
재도약 82
위화도회군 97
명월주(明月珠)를 품은 이무기 111
위기에서 기회로 125
성만(盛滿) 156
화가위국(化家爲國) 172
현비에게 나라를 주다 195
현비의 충언 206
정권 굳히기 213
현비가문의 부흥 236
도읍천도 243
불사정진 249
대소사 259
현비, 강녕전 최초의 주인이 되다 266
왕권강화 278
중장기계획 285
불교에 귀의 291
거미줄의 물방울 303
미완의 꿈 313
임금의 사부곡(思婦曲)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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