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나는 이렇게 영화를 시작했다
내 인생의 첫 영화 <울트라 Q>
J호러, 신인 발굴의 등용문
허구 세계에 매혹된 꼬마
중학교 영화연구부 시절
영화 언어의 열쇠를 준 <포세이돈 어드벤처>
열두 편의 영화를 만들고 졸업한 고등학생
인디 프로듀서 롤 모델, 가도카와 하루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이 준 희망
패기 넘치던 대학 시절 자주영화
제2장 무서운 것 없던 신입 프로듀서 시절
감독에서 프로듀서로 전향하다
프로듀서는 꼭 운전면허가 있어야 하나?
월급은 받았지만 갑갑했던 도쿄 생활
프로듀서 데뷔작의 흥행 참패
<꿈꾸는 듯 자고 싶어>로 베니스영화제에 초청
나의 확고한 상업영화 지향성
제작비 10억 엔의 <제도이야기> 프로듀서를 맡다
1927년 긴자 거리 세트에 2억 엔 투자
패기라곤 찾아볼 수 없는 일본 영화계
프로듀서 이치세의 필살기는?
제3장 엔터테인먼트 천국 홍콩을 가다
<천녀유혼>의 충격
<공작왕>의 제작 과정에서 느낀 문화 차이
홍콩의 뿌리 깊은 ‘엔터테인먼트 지상주의’
대타로 감독한 <제도대전>의 실패
감독의 사고방식 vs 프로듀서의 사고방식
홍콩을 넘어 할리우드로
제4장 영화로 돈을 벌 수 없으면 의미가 없다
미국 법인 ‘오즈라픽처스’ 설립
3주는 미국에서, 3주는 일본에서
할리우드 변방에서 제작한 ‘V 시네마’
비고 모텐슨, 러셀 크로우 캐스팅
‘일본 오타쿠’ 사뮤엘 하디다와의 만남
할리우드의 색다른 자본 조달 구조
상품인가 작품인가의 문제
청빈한 프로듀서가 믿을 만한 프로듀서인가?
제5장 <링>,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새로운 발상 ‘오메가 프로젝트’의 설립
멀티플렉스와 일본 영화 산업의 지각 변동
<링>, 배수의 진을 치고 제작에 임하다
J호러 최강의 콤비, 나카타 히데오와 다카하시 히로시
최종 편집권은 프로듀서인 나에게 있다
여배우 발탁에 뛰어난 감각
<링>의 흥행 근원은 휴대전화
시미즈 다카시의 신세대 호러 감각
제6장 <주온>, 전대미문의 흥행기록
100만 달러에 팔린 <링>의 리메이크권
제작위원회 방식의 한계
대기업 배급 방식의 대안 찾기
초저예산 호러비디오 <주온>의 성공
<주온>, <주온 2> 연속 개봉 마케팅
‘리메이크의 왕’ 로이 리와의 만남
샘 레이미에게 한 수 배우다
할리우드 테스트 스크리닝의 폐해
아시아적인 감각으로 세계를 꿰뚫다
할리우드 영화를 일본에서 찍는 이점
2004년 핼러윈 시즌을 사로잡은 <그루지>
제7장 나는 아직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것이 아니다
폭스와 ‘퍼스트 룩’ 계약을 맺다.
폭스를 선택한 세 가지 이유
폭스가 나에게 기대하는 것
일본 영화펀드의 문제점
일본 영화 ‘제작비 급등’이라는 거짓말
제작자는 최선을 다해 그럴듯하게
관객도 대충 속아주지 말아야 한다.
내가 롯폰기 힐스에 사는 이유
다시 시작된 일본·미국 양다리 프로듀서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