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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피카소

  • 팀 힐튼
  • |
  • 시공아트
  • |
  • 2010-06-21 출간
  • |
  • 328페이지
  • |
  • 148 X 210 X 30 mm /368g
  • |
  • ISBN 9788952757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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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시대를 읽는 혜안慧眼을 가진 피카소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흔히 20세기 미술의 대표 주자로 꼽히며, 현대 미술의 중요한 흐름이었던 입체주의의 효시로 일컬어지곤 한다. 피카소만의 기발한 시도들은 시대를 앞서 나간다는 평을 받고 동시대의 미술계를 이끌어 나갔다.
피카소에게 늘 따라다니는 ‘천재 화가’라는 수식어는 재능 하나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그의 뒤에는 뛰어난 선배나 동료 예술가들의 영향이 있었으며, 전쟁으로 인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은 피카소를 미술계에서 더욱 돋보이게 해 주었다.
시공아트시리즈 53번째 책인 『시대를 읽는 천재 화가: 피카소』는 널리 알려진 〈아비뇽의 아가씨들〉과 〈게르니카〉뿐 아니라 상대적으로 국내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초기 작품들과 〈게르니카〉 이후의 작품들까지를 다루며 피카소의 면모를 상세히 밝혀 낸 연구서다. 창의적이고 도전적이었던 피카소의 모습 이면에 시대의 흐름을 읽는 날카로운 시선과 그 흐름에 동조하여 성공을 거둔 그의 영민함이 있음을 밝히며 진정한 피카소의 모습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하고 있다.

거장의 실력을 지닌 소년 피카소
피카소는 어려서부터 거장들에 비할 만큼 훌륭한 그림들을 그려 냈다. 당시 서구 미술의 중심지였던 파리를 동경해 마지않던 피카소는 마침내 그곳으로 옮겨갔고, 시대를 풍미했던 화가들의 영향을 마음껏 흡수했다. 그가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는 이유는 자신의 뛰어난 그림 실력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주제와 기법을 실험해 나간 덕분이다. 그는 일반적으로 수용되는 숙련된 그림을 거부하며 자신의 한계를 시험했다.
피카소의 청색 시기는 개인적인 요인으로 시작되어 고립되고 정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이는 그의 친구 카사헤마스의 자살이 준 죽음에 대한 충격을 경험한 때문이었다. 동시에 이 시기 지식인들 사이에는 세간에 널리 퍼진 우울에 대한 세기말적인 관심이 팽배해 있었고, 피카소도 역시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한 것으로 보인다.
그 뒤를 잇는 장밋빛(또는 서커스) 시대는 그동안 너무 모호하게 기술되어 입체주의에 이르기까지 지속된 듯한 인상을 주지만, 이는 1904년 후반부터 1905년 여름까지만 계속되었다. 이 짧았던 시기에 피카소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광대의 가족〉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시각의 혁명, 입체주의의 시작
1905년 피카소는 장밋빛 시대를 과감히 마감하고,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당시 미술계에는 선도하는 양식이 없었고, 따라서 다양한 미술이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피카소는 여러 가지 실험적인 시도들을 했고, 이것들은 모두 입체주의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이 책에서 설명하는 피카소 미술의 특징 중 하나는 노련하고 ‘잊을 수 없는’ 이미지, 일반적으로 인간적인 이미지를 창조하는 그만의 풍부한 다산성이다. 그의 미술이 가진 중요한 특징은 다양한 재능이다.
피카소의 입체주의는 여러 작품들 속에서 조금씩 선보인 후 〈아비뇽의 아가씨들〉에서 본격적으로 연구된다. 사람들은 흔히 〈아비뇽의 아가씨들〉이 세잔과 아프리카 미술에 영향을 받았으며, 훗날 입체주의의 원조 역할을 했음을 지나치게 강조한다. 하지만 이 작품의 원래 데생은 온순한 세잔 풍이었고, 캔버스로 옮겨지면서 한층 격렬해졌다.
피카소가 원시적인 아프리카 미술에 흥미를 갖게 된 것은 다른 파리 전위파보다 1년 정도 뒤였다. 1907년 후반에 그는 아폴리네르와 함께 트로카데로 박물관에 갔다가 아프리카 조각 역시 현대 미술로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강렬한 느낌에 사로잡혔던 듯하다. 이 뜻밖의 발견이 〈아비뇽의 아가씨들〉의 두 인물에게 강하게 적용되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아프리카 미술의 영향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피카소가 가졌던 아프리카 미술에 대한 열정은 1908년에 끝이 났기 때문이다.

입체주의
피카소가 본격적으로 입체주의를 시작한 것은 1908년경이었다. 〈저수지〉는 입체주의의 첫 단계, 즉 분석 단계를 명백히 보여 주는 그림이다. 집들을 분해하면서 면들을 끊임없이 그림의 표면 쪽으로 기울이는 특징들은 초기 입체주의의 발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여자와 배〉에서는 얼굴의 둥근 면이 모두 일정한 각도로 깎여 나가고 전통적인 초상화법은 무시된다.
분석적 입체주의의 전성기에는 양식에 있어 혁신이 일어났다. 타원형의 판형은 아주 흔해졌고, 입체주의 그림은 회화라기보다는 오브제에 가까워졌다. 피카소는 콜라주 요소들을 처음으로 도입하면서 수평적인 타원을 사용했으며, 밧줄로 테를 둘러 작품을 오브제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냈다.
1913년 내내 피카소는 콜라주에 몰두했다. 그러나 형식적인 면에서는 더 확실한 혁신이 있었는데, ?것이 바로 종합적 입체주의다. 종합적 입체주의는 그림 속의 근접한 요소들을 실제로 겹치거나 겹쳐진 듯 착각하게 하지 않고 넓고 평평한 면에 나열했다. 종합적 입체주의는 피카소의 작품에 과도한 장식성을 부여했고, 그는 공간에 대한 개념을 더 이상 발전시키려 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그 뒤에 자연주의적이고 전통적인 화풍으로 돌아감으로써 동료들을 분개하게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종합적 입체주의 방식으로 그림을 그렸고, 이러한 평판을 신경 쓰지 않았다.

피카소는 진정 혁신적인 화가인가?
1920년대 중엽 피카소는 정물화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이것은 그가 정물화에 새롭게 복잡한 주제를 넣고자 했다는 의미이다. 당시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정물화 속 흔한 소재에 대해 비난을 하곤 했는데, 피카소는 그 영향을 받았으리라 짐작된다. 유명한 〈세 무용수〉 같은 작품은 미로에게서 영향을 받았고, 표현주의적이지만 도해적으로 인체를 왜곡시키고 있다. 당시 세력을 키워 가던 ‘다다이즘’과 관련해서는, 〈장갑이 있는 구성〉에서 다다이즘의 형식을 빌리긴 했지만 피카소는 대체로 우상파괴적인 활동에서 벗어나 있었다.
당시 피카소는 인체의 형태에 골몰해서 인물화를 포기할 수 없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의 피카소의 미술을 연구할수록 우리가 습관적으로 혁신적인 화가로 여겼던 피카소는 이 당시 자기 자신이 만들어 낸 것과 고투를 하고 있었음이 분명해진다. 그는 유럽 인물화 전통의 마지막에 위치했으며 그 전통과 영향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
피카소의 〈볼라르 연작〉에 자주 등장하는 ‘미노타우로스’는 〈게르니카〉에서 사용한 상징주의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 사람들은 피카소를 명확한 정치의식을 가진 화가로 생각한다. 하지만 친구 D.H.칸바일러는 그를 가리켜 “가장 정치에 관심 없는 남자”라고 설명했다.
그러던 그를 자극했던 사건은 독일 연합군 소속 항공기가 게르니카에 폭탄을 투하해 도시를 파괴한 비극이었다. 이 사건에 관한 왜곡이 일어나자, 피카소는 즉시 〈게르니카〉의 예비 데생을 시작했다. 이 작품이 탄생하기까지 수많은 데생들이 그려졌는데,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보는 〈게르니카〉가 완성된 것이다. 저자는 우리가 알고 있는 피카소의 걸작 〈게르니카〉를 여러 각도에서 분석함으로써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려준다.

피카소, 또 다른 이름
피카소는 입체주의에서 세잔에 대한 깊은 공감대를 발전시키며 젊은 활기를 보여 주었고, 1930년대의 여러 작품들에서는 원로 화가들에게서 보이는 위엄을 간직했다. 피카소는 그 후에 마네, 쿠르베, 엘 그레코, 들라크루아, 벨라스케스의 작품을 자기 식으로, 익살스러운 피카소 판본으로 그렸다. 오히려 조각에 있어서는 기발함을 내세우며 〈황소 머리〉 같은 재치 있는 작품을 만들었지만, 사람들은 이것을 미술 작품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무엇인가 다른 것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는 감탄하지만 만들어진 것 자체에 대해서는 감탄하지 않았고, 재료의 실체가 변한 사실만이 중요했다.
피카소만의 숙달된 기능과 독창적인 솜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부엌〉 이후의 작품들에서는 그만의 창의성이 이전에 비해 잘 드러나지 않았고, 단지 더 많은 그림을 그리려는 절박한 욕구로 바뀌어 나타날 뿐이었다. 시대를 읽은 천재 화가였던 피카소였지만, 결국 시대를 뛰어넘지는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피카소가 20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예술가 중 하나였다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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