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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

  • 사이토 다카시
  • |
  • 뜨인돌출판사
  • |
  • 2010-10-20 출간
  • |
  • 317페이지
  • |
  • 145 X 205 X 30 mm /514g
  • |
  • ISBN 9788958073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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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가르는 1퍼센트 결정적 차이

나치스 독일의 공군사령관이자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헤르만 괴링의 집에서 위작이 발견되면서 온 유럽이 발칵 뒤집어졌다. 조사 결과 그 그림을 그린 메이헤른이 체포되었고, 그는 자신의 죄를 순순히 인정했다. 한데 놀라운 것은 그가 그린 다수의 베르메르 위작들이 당대의 비평가들, 네덜란드 3대 미술관 관장들, 그리고 나치스 콜렉터의 눈까지 오랫동안 감쪽같이 속인 채 완전한 진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는 점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와 판 메이헤른……. 재능과 기술적인 면만을 고려했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겨우 1퍼센트의 차이밖에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위대한 화가로 추앙받고, 다른 한 사람은 파렴치한 도둑으로 역사에 남았다. 평범한 그림과 위대한 걸작을 가르는 1퍼센트 결정적 차이는 무엇인가.

이 책은 전작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과 마찬가지로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지양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누가 봐도 잘 그렸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고 단순한 그림을 우주의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탁월한 ‘표현력’, 누구도 흉내 내거나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영역이자 고유한 양식을 만드는 ‘스타일’, 확고한 세계관의 바탕이 되며 현실을 뛰어넘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기반으로서의 ‘자기세계’, 그림이 캔버스의 좁은 틀을 단숨에 벗어나 현실세계를 종횡무진 누비고 다닐 수 있게 도와주는 독특한 ‘아이디어’, 그리고 한 가지에 올인함으로써 미술사라는 무림에서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게 해주는 ‘몰입’이라는 다섯 가지 힘(코드)의 관점에서 위대한 화가 50인을 선정해 미술사 전반을 날카롭게 통찰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전문가의 도움 없이 좋은 그림을 판별하는 심미안 키우기

지금까지 단행본 예술서 시장에 나온 책들을 보면 세부 콘셉트 면에서 차이는 있을지언정 거의 예외 없이 그림과 미술세계에 대한 확고한 권위와 객관적인 지식을 갖춘 전문가가 특정 그림과 화가를 선정한 뒤 그 그림을 왜 좋은 그림으로 꼽을 만한지, 또 그 화가를 왜 위대한 거장의 반열에 올릴 만한지 날카로운 식견과 풍부한 지식을 곁들여 조목조목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그런 책들은 분명 유익하고, 그림과 미술세계에 대한 지식을 키워준다. 문제는 비슷비슷한 그런 콘셉트의 책을 아무리 많이 읽어도 처음 보는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아닌지 스스로 판별하는 눈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 책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은 그런 면에서 시중에 나와 있는 수많은 예술서들과 확연한 차별점을 갖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스타일이란 개념을 명확히 이해하기 위해 중학교 때 배운 ‘함수’를 사용해봅시다. 학창 시절 수학시간에 우리가 배운 내용 가운데 ‘함수’의 개념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때 함수의 방법을 사용하면 매우 편리하고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함수는 y = f(x)의 ‘f’를 말합니다. 이것은 사상(mapping)이라고도 하는데, 누구나 중학교 수학시간에 배웠을 겁니다. y = 2x + 1과 같은 형식을 일차함수, y = 3 + 2x + 1과 같은 형식은 이차함수라고 하죠. 쉽게 말해서, ‘x를 하나 대입하면 y가 하나 결정된다’는 것이 함수이고, 함수의 식은 그 ‘변환방식’을 나타내는 겁니다. 예를 들어 y = 2x + 1이라는 식의 경우 x에 1을 대입하면 y의 값은 3이 되고, x에 2를 대입하면 y는 5가 되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요소, 즉 x에 대입하는 숫자가 아닙니다. x가 무엇이든지 그것은 우연히 넣어본 것일 뿐 여기서 정말 중요한 것은 ‘f’, 즉 x에 무언가를 대입했더니 y는 이렇게 되더라, 하는 일종의 규칙 및 법칙성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미술의 스타일이라는 개념에 적용하면, 스타일이란 y = f(x)라는 변환작용이 되는 겁니다. 그리고 일차함수, 이차함수 등으로 표시되는 다양한 함수식은 ‘화가 개개인의 스타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똑같이 나부(裸婦)를 주제로 그림을 그려도 세잔과 르누아르의 그림은 전혀 다르다고 했는데, 그것은 세잔이 갖고 있는 변환작용, 즉 함수식과 르누아르의 함수식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똑같이 x = 1을 대입해도 y = 2x + 1이라는 식에서는 y의 값은 3이 되고, y = 3 + 2x + 1에서는 y는 6이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f는 변환작용이므로 x에 무엇을 대입하든지 y는 f의 법칙에 따라 값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결국 주제가 무엇이든 완성된 그림은 그 화가의 스타일이 되는 것이죠. 따라서 화가의 스타일은 수학에서 말하는 함수, 즉 변환의 법칙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함수로 이해하는 미술세계의 스타일」 중에서 (32~35p.)

긴 인용으로 다소 장황해졌지만, 이 정도면 미술세계의 ‘스타일’이라는 개념이 명확히 잡힌다. 이런 식으로 저자는 먼저 그림과 미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다섯 가지 키워드(힘)를 제시하고, 그 개념을 명확히 이해시킨 뒤 구체적인 그림과 화가를 예로 들어가며 차근차근 독자의 심미안을 키워준다.

저자가 ‘명화를 결정짓는 다섯 가지 힘’의 첫째 요소로 꼽은 ‘표현력’에 관한 내용도 흥미롭다. 얀 반 에이크가 그린 〈아르놀피니의 결혼〉을 예로 들어보자. 그에 따르면, 이 그림은 미술사의 수많은 걸작들 중에서도 단연 으뜸으로 꼽아도 좋을 만큼 대단한 걸작이라고 한다. 왜 그런가? 82.2×60센티미터로 의외로 작은 사이즈의 이 작품은 이토록 좁은 공간의 캔버스 안에 아무리 확대해도 흔들리지 않는, 굉장히 치밀한 구성의 그림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그림을 확대해보면 어딘가 부족한 점이 드러나기 마련인데, 무려 5백 년도 더 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아무리 확대해도 구성이 흐트러지지 않고 단단함을 잃지 않을 만큼 매우 정교할 뿐만 아니라 최첨단 하이비전 방송에 필적할 만큼 치밀하게 그려져 있는 것이다. 이렇듯 굉장히 치밀하고 구성이 너무도 완벽해서 하나의 우주가 되는 그림은 얀 반 에이크처럼 위대한 화가의 천재적인 표현력에서만 나올 수 있다. 표현력의 뛰어남을 간파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저자는 위에서 언급한 ‘확대해보기’와 그림의 일부 요소를 ‘가리고 보기’를 제안한다.
그렇다면 네덜란드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요하네스 베르메르는 왜 위대한가? 이 책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그림이 갖는 ‘질감’에서 실마리를 발견한다.

인간에게는 이렇듯 ‘사물을 촉감으로 인식하려는 본능적인 습성’이 있습니다. 어린아이는 무엇이든 손으로 만져 확인하려고 하는 성향이 있는데, 그런 행위를 반복함으로써 차츰 ‘질감’을 익혀가는 겁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손으로 만져보지 않고 눈으로 보기만 해도 사물의 질감을 알 수 있는 것은 이렇듯 어릴 때부터의 경험이 시나브로 축적된 결과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사물을 인식할 때 그 질감, 실재감, 손의 느낌을 구체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며 보는 겁니다. 따라서 만일 어떤 그림에 구체적인 질감이 표현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인간의 오감 중 하나인 촉감이 자극을 받게 되는 거죠.
베르메르의 그림이 동시대 다른 화가의 그림들과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촉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화가들 역시 나름 정교하고 치밀하게 그림을 그리지만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구현된 그 뛰어난 ‘촉각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직물 하나를 비교해도, 베르메르가 그린 직물에서는 따뜻함이랄까 인간적 온기랄까, 그런 게 느껴집니다. 이것은 그의 그림에 손의 감촉을 촉발하는 ‘질감’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 질감이 손의 감촉을 환기시키기 때문에 그림 속 직물에서 따뜻함이 느껴지는 것이죠.
― 본문 「베르메르 - ‘직물의 온기’와 ‘공기의 질감’까지 캔버스에 완벽하게 담아낸 촉각의 대가」 중에서 (83~84p.)

저자에 따르면, 베르메르의 그림에서 느껴지는 것이 그런 직물의 따뜻함만은 아니다. 도기의 차가움과 물이 지닌 습기, 실제로는 손으로 만질 수 없는 공기조차 그의 그림을 보면 촉각적인 것으로서 살아나 우리의 감각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는 본래 손으로 만질 수도 없고 그림으로 그려낼 수도 없는 공기의 질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은 베르메르의 그림 외에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한데 그런 미세하고 투명한 대상의 구체적인 질감을 캔버스에 생생하게 표현해내는 일이 결코 말처럼 쉽지 않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몸에 두르는 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반사하는 마루, 인물이 가진 피부의 질감, 물건의 촉감 등 모든 면에서 완벽히 재현되었을 때 본래는 만지거나 그릴 수 없는 ‘공기 자체의 촉감’이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렇듯 베르메르의 그림을 감상할 때 표현력의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질감’(혹은 촉각)의 측면에서 세밀히 살펴보면 그의 그림이 위대한 걸작으로 손꼽힐 수밖에 없는 비결을, 또 그가 위대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명확히 이해하게 된다.

[책속으로 추가]
다 빈치의 탁월함은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모나리자〉(1503~06년, 패널에 유채, 77× 53cm, 파리 루브르 미술관)는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초상화인데, 자세히 살펴보면 그림의 배경이 조금 이상합니다. 배경에는 창세기를 연상케 하는 대지에 강이 흐르고 있고, 그 바로 앞에 왼손에 오른손을 살포시 얹은 여성이 미소를 짓고 있는, 단순한 부조화를 넘어 현실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점에 대해 어떤 어색함이나 불편함도 느끼지 않고 퍽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베르메르 그림의 경우, 일상 속의 한순간이 절묘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점에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풍경에서 한순간을 떼어내어 영원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만드는, 그 점이 바로 베르메르의 탁월함이죠.
그에 반해 다 빈치는 약간은 어색하게 느껴질 정도의 비일상적인 조합을 캔버스에 조화롭게 담아냄으로써 단순한 아름다움을 넘어서는, 굉장히 고차원적인 세계를 표현해냅니다. 한데, 대중이 그의 그림에서 느끼는 것은 그런 거창한 사상(思想)이나 철학의 자기주장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편안한 존재감입니다. 이상한 풍경에 인물이 결합된 형태를 자연스럽게 느끼게 만들 정도의 회화적 탁월함이 다 빈치의 그림에는 살아 있습니다.
이러한 탁월함은 〈최후의 만찬〉에서도 발견됩니다. 〈최후의 만찬〉은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저마다 다른 감정을 표현하고 있어 마치 연극무대를 보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역동적이고 혁신적인 작품입니다. 다 빈치가 이 그림에 담고자 하는 것은 예수가 입을 벌리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안에 나를 배신한 자가 있다”라고 말하는 극적인 순간입니다. 제자들은 그 말을 듣고 다양한 반응을 보입니다. 화면 오른쪽 끝의 세 사람은 도대체 누가 그런 짓을 했을지 갑론을박하고 있고, 예수 바로 오른편의 세 사람은 예수에게 ‘그게 저입니까?’ 하고 당황해하며 묻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림의 왼쪽을 보면 예수 바로 옆에 있는 요한만 슬픈 듯 고개를 숙이고 있고, 다른 다섯 명은 시선을 예수에게로 향한 채 자신들의 결백을 주장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 진짜 배신자인 유다는 비록 시선은 예수를 향해 있지만 몸을 반대편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 몸짓에서 배신자라면 반드시 가질 수밖에 없는 두려움이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 그림을 매우 자연스럽게 느끼면서, 그런 정황들을 세밀하게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것은 현실 속에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예수가 “이 안에 나를 배신한 자가 있다”라고 말한 순간과 놀란 제자들이 예수에게 그것이 누구인지 케어 묻고, 갑론을박하기까지에는 일정한 ‘시간’의 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즉, 이 그림 안에는 그런 ‘저마다의 시간’이 잘 녹아 있습니다.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어떤 심리상태에서 어떤 감정으로 예수의 말을 들었을지 생각해본 다 빈치는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시간을 하나의 화면에 동시에 녹여냄으로써 각 제자들을 독자적인 내면세계를 가진 인간으로서 표현해낸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후의 만찬〉은 ‘르네상스적’이라는 단순한 수사를 훨씬 뛰어넘는 비범함과 탁월함으로 무장한 그림입니다.
― 본문 「다 빈치 ―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시간’과 ‘공간’을 캔버스에 창조해낸 진정한 천재」 중에서 (76~78p)

보통으로는 그리고 싶지 않다, 보통과 정반대로 행동하고 싶다는 그의 마음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예술가란 본시 개인의 개성과 표현을 중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개인의 생활까지 철저히 괴짜로서의 삶을 추구한 달리는 역시 평범한 화가는 아닙니다.
자서전에는 그의 그런 생각이 “사실 일생동안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혼란스러운 ‘정상성’에 익숙해지는 것이 몹시 괴롭고 힘들었다”라는 말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평범한 사람들의 지극히 정상적인 행동에 늘 당황하며 ‘나는 인간이 그토록 환상을 품지 못하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늘 똑같은 짓을 반복하는 인간의 맹목적이고 지루한 습성은 나를 경악케 만든다. 왜 인간은 이렇듯, 한 줌도 안 되는 환상밖에 품지 못하는 걸까’ 의문을 품습니다.
그리고 그 의문은 “나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레스토랑에서 구운 가재요리를 시켰을 때 왜 바싹 구운 전화기를 갖다 주지 않는지, 또 은행직원이 수표를 먹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 이전의 어떤 화가도 ‘흐늘거리는 시계’를 그리려 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하는 단계로까지 나아갑니다. 아무튼 달리는 참으로 재미있는 발상의 소유자이자 대단한 정신의 유연성을 가진 화가라 할 수 있습니다.
그의 이런 말을 통해 우리는 〈기억의 고집〉이라는 유명한 작품에서 흐늘거리는 시계가 나무에 늘어져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은 그에게는 ‘은행직원이 고객의 수표를 먹어버리는 일’과 같은 일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튼 달리의 심리 상태는 일관되게 절대로 평범함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는 보통인 사람이 보통으로 생각하고 보통으로 행동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왜 그렇게 개성적이지 못하냐, 평범하냐, 당연한 세계에 당연하게 살면서 무엇이 그렇게 재미있냐, 하고 그는 자신의 그림을 통해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달리는 아프리카 오브제(objet, 초현실주의 미술에서, 작품에 쓴 일상생활 용품이나 자연물 또는 예술과 무관한 물건을 본래의 용도에서 분리하여 작품에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느낌을 만들어내는 상징적 기능의 물체―옮긴이) 반대, 모던스타일 오브제 반대, 조형미술 반대, 정물화도 반대, 하는 식으로 모든 것에 반대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적’과 ‘아군’으로 나눠갑니다.
“그 적들은 누구였나? 모두 다였다. 아니, 갈라(달리의 아내)를 제외한 거의 모두가 나의 적이었다”라고 말하는 그에게 “적은 단순성이고 아군은 복잡성, 적은 평등주의고 아군은 위계질서, 적은 음악이고 아군은 건축”이었습니다. 또한“여자들이 적이고 아군은 갈라, 남자가 적이고 아군은 나 자신, 시간이 적이고 아군은 흐늘거리는 시계들’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그의 자서전에는 ‘렘브란트가 적이고 베르메르가 아군’, ‘시금치가 적이고 달팽이가 아군’ 하는 식으로 알 수 없는 구별까지 되어 있습니다.
달리라는 화가는 항상 격렬하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사람들을 자극했습니다. 따라서 그에게서 아이디어를 제거하면 달리는 더 이상 달리가 아니게 됩니다. 하지만 그렇듯 넘치는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었던 ‘비딱한 정신’을 토로한 자신의 자서전조차 사실은 거짓투성이라며 달리는 나중에 고백한 바 있을 정도이니, ‘보통’이 싫기는 정말 싫었던 모양입니다.
달리는 단순히 작품뿐 아니라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까지 비범한 아이디어를 연출하고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현대적이고 새로운 예술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본문 「달리 ― 예술가로서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면에서 ‘진정한 괴짜’였던 화가」 중에서 (200~204p)

저자소개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메이지대학 문학부 교수. 1960년 일본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났고, 도쿄대학교 법학부 및 동 대학원 교육학연구과 박사 과정을 거쳤다. 2001년 출간된 『신체감각을 되찾다』로 ‘신초 학예상’을 수상한 그는 지식과 실용을 결합한 새로운 스타일의 글을 선보이며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는 현재 일본에서 가장 주목받는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획기적인 교육 방법론을 주창한 인물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낭독의 중요성을 이야기한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일본어』는 17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밀리언셀러가 되어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그 후 그는 교육학, 신체론, 경제경영학, 커뮤니케이션론 등을 기초로 통합적 지식을 담은 관련 서적을 다수 집필했으며, 최근 NHK와 테레비도쿄에 정기적으로 출연하여 특정 분야의 틀에 갇히지 않은 열린 시각과 날카로운 분석으로 수많은 마니아 시청자를 확보하고 있다.
지금까지 펴낸 책으로 『세계사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질문의 힘』,『절차의 힘』,『독서력』 등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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