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목중봉 스님은 남송 말에서 원나라 초기에 활동하였다. 스님의 도덕과 법력이 알려져 마침내 원나라 인종(仁宗) 임금까지도 감화되어 ‘불자원조광혜선사(佛慈圓照廣慧禪師)’라 호를 내리고 금란가사를 보내오기도 했다. 많은 납자들을 제접하다가 영종(英宗) 3년(1323)에 “나에게 한 구절이 있으니 대중에게 분부하노라. 다시 묻는다. 무엇이 의지할 만한 근본이 없는 것인가?”라는 임종게를 남기고 시적하니 세수는 61세, 법랍 37하(夏)였다. 그 후 북정자적(北庭慈寂) 스님에 의해 유저(遺著)로 『천목중봉화상광록(天目中峰和尙廣錄)』 30권이 편집되었고, 원나라 혜종(惠宗) 원통(元統) 2년(1334)에 대장경에 편입되었다.
이 『광록』의 내용은 시중(示衆), 소참(小參), 염고(拈古), 송고(頌古), 법어(法語), 서문(書問), 불사(佛事), 불조찬(佛祖贊), 자찬(自贊), 제발(題跋), 『산방야화(山房夜話)』, 『신심명벽의해(信心銘闢義解)』, 『능엄징심변견혹문(楞嚴徵心辯見或問)』, 『별전각심(別傳覺心)』, 『금강반야약의(金剛般若略義)』, 『환주가훈(幻住家訓)』, 『의한산시(擬寒山詩)』, 『동어서화(東語西話)』, 부(賦), 기(記), 설(說), 문(文), 소(疏), 잡저(雜著), 게송(偈頌) 등이 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