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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고전을 만나다

현장에서 고전을 만나다

  • 설고운
  • |
  • 좋은땅
  • |
  • 2012-09-07 출간
  • |
  • 245페이지
  • |
  • 152 X 225 mm
  • |
  • ISBN 9788964494400
★★★★★ 평점(10/10) | 리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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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서평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인 열하일기, 목민심서, 기측체의, 세한도의 현장을 두루 여행한 저자가 현장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고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책이다. 자칫 어렵고 딱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고전의 핵심내용을 현대의 언어로 쉽게 풀어 쓰고 현장감 있는 배경 설명을 곁들여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게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숙명처럼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 가는 현대인들이 고전으로부터 통찰의 단서를 얻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 삶의 활력소를 되찾길 바라고 있다.

우리 현대인들에게 고전은 무엇일까?

고전은 여전히 현대인들의 삶을 의미 있게 하는 등불이 되어줄 수 있을까?


현대인들은 불안하다. 과학과 기술이 물질적인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능력주의를 앞세운 자본주의적 강화될수록 존재로적 공허감과 사회적 지위상실에 대한 공포도 함께 커져 간다. 현대인들은 물질적 안락함과 함께 정신적 고통도 숙명처럼 안고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되고 말았다.

현대인들은 위로와 힐링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에게 고전이 필요한 이유이다. 고전은 오랫동안 우리들의 곁에서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 어려울 때 우리의 영혼을 위로해 준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고전에는 삶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기어 있고 시공간을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 아름다움과 교훈이 깃들어 있다. 넓고 깊은 고전의 바다를 유영하다 보면 시나브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사유의 단단함을 얻게 된다. 고전은 현대인들에게 통찰의 단서를 던져주고, 따뜻한 위로를 주고, 삶의 활력소가 되어 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땅에서 우리의 조상들이 남겨준 아름다운 고전들을 현대인들이 감상하는 것이 최신 영화를 보거나 요즘 유행하는 음악을 듣는 것만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어떻게 고전감상의 어려움을 헤치고 고전의 진수에 다가갈 것인가?

이 책은 여행이야말로 고전에 이르는 지름길이 되어 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고전감상을 위해서는 과거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고 과거를 체험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여행인 것이다. 이 책은 여행이라는 현장체험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어 줄 것이니 여행을 통해 고전의 향기를 편안하게 즐기는 기회를 가지라며 현대인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하고 있다.

여행문학의 기념비적 최고봉, 熱河日記

열하일기는 조선후기 북학파 실학자이자 대문호인 연암 박지원(1737∼1805) 선생이 1780년 당시 청나라의 수도였던 연경(지금의 북경)을 거쳐 열하(지금의 승덕)을 다녀와서 여행과정에서 체험한 일화, 목격한 선진문물 및 여행 중 느낀 감회 등을 기록한 ‘연행록’이다.
열하일기는 노가재 김창업이 지은 ‘노가재 연행일기’, 담헌 홍대용의 ‘담헌연기’와 함께 3대 연행록으로 불리는 연행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저자는 몇 년에 걸쳐 열하일기 창작의 배경이 되었던 6,000리 연행길을 빠짐없이 답사하였다. 압록강에서 요양, 심양, 산해관, 계주, 통주, 북경, 고북구, 열하에 이르는 중국지역 연행노정과 국내의 의주대로를 답사한 저자는 이 여행경험을 바탕으로 열하일기의 감상법을 제시한다. 열하일기 중에서도 명문장으로 꼽히는 “밤중에 고북구를 나서며”(夜出古北口記)와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며”(一夜九渡河記)의 현장인 고북구, ‘천하의 장관론’을 펼쳤던 산해관, 그 유명한 ‘호곡장론’이 탄생한 요동, 그리고 청나라 황제의 칠순연이 있었던 열하의 피서산장, 라마승 판첸라마 접견의 소동이 벌어졌던 찰십륜포, 맹강녀 사당과 백이숙제 사당 등의 현장에서 열하일기가 전하는 연행의 이모저모, 당대 청나라의 정치사회적 현실과 이를 직시하지 못하는 조선 위정자들의 허위의식, 인간 본성에 대한 치밀한 철학적 성찰 등을 제대로 읽어 낼 수 있도록 열하일기의 생생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려주고 있다.

“...... 한 가지 더 주목할 만한 것은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연암의 방식이다. 연암은 딱딱하고 지루하게 들릴 만한 주제임에도 이를 결코 가볍게 다루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암의 글을 읽는 독자들은 그 글을 전혀 지루하게 느끼지 않는다. 이는 연암이 핍진하면서 적절한 비유와 허를 찌르는 반전으로 이야기를 전개함으로써 독자들을 매료시키기 때문이다. ......”
“...... 산해관이 비록 군사적 기능은 잃었지만 통상과 문화교류의 중요한 통로 역할은 계속되었으므로 연암 당시에 국가적 통제는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었다. 산해관의 통관 절차가 매우 까다로웠던 것이다. 연행사들은 산해관에 도착하기 전 미리 통역관을 보내 사신이 도착함을 통지하여야 했고, 관문 앞에 도착하여서도 사람과 말의 수를 적은 단자를 들여보낸 후 단자에 따라 일일이 점검을 받고 나서야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과거의 까다로운 통관 절차의 역사를 기억하는 듯이 지금도 산해관에서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통관문첩을 판매하고 있다. 통관문첩을 사면 청나라의 복식을 차려입은 익살스런 표정의 노인이 통관문첩의 내용을 낭랑한 목소리로 읽은 후 건네주어 흥미를 돋운다. 지금 우리는 단순히 재미삼아 이벤트를 즐기고 있으나, 그 옛날 연암이 이곳을 통과할 때는 백여 명의 군졸이 칼을 차고 도열하여 삼엄한 분위기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리기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연암이 통관문첩을 읽어 주는 노인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나누었을까?”

“......울음터라니? 그동안 꿈에서조차 그리던 요동벌판에 마침내 이르렀는데 선비의 호연지기를 운운하고, 천하의 장관과 이치를 논하여도 모자랄 판에 울음터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허를 찌르는 반전과 오묘한 역설에 익숙한 독자들은 이내 눈치를 챌 것이다. ‘연암이 또 한바탕 이야기보따리를 풀려고 하는구나’ 하고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그렇다. 예사롭지 않은 말로 시작되는 이 문장이 바로 유명한 열하일기의 ‘호곡장론’(好哭場論)이다. 열하일기 도강록편에 수록되어 있는 호곡장론은 연암의 철학적 성찰과 벼린 문장, 그리고 역설과 반전의 미학이 담겨 있는 명문장이다.
연암의 사유를 따라가 보자. ......”

백성을 위한 진정한 학문을 꿈꾸다, 牧民心書

실학을 집대성한 실학자로 유명한 다산 정약용(1762∼1836)선생의 대표작인 목민심서는 유배지였던 전라도 강진에서 집필된 이른바 발분지서(發憤之書)이다. 지금으로 치면 ‘지방자치단체장 업무수행지침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 이 책에는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바로 세우고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고자 했던 다산선생의 간절하고 고뇌에 찬 희망이 담겨 있다. 목민심서에는 삼정의 문란 등 조선후기의 사회 상황과 백성들의 참혹한 실상이 매우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어 당시의 사정을 이해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저자는 다산의 유배길과 유배지, 다산의 생가 그리고 다산학의 뿌리가 된 성호선생을 기리는 학술세미나의 현장이었던 봉곡사 등을 두루 여행하고 목민심서가 탄생한 배경, 목민심서에 담긴 당대 민중의 고통스런 현실상황, 목민심서를 통해 다산선생이 제시한 구체적 민생 구제책을 읽어낸다.

“......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다산에게 씌워진 이 억울함과 정치적 좌절이 목민심서라는 위대한 고전을 탄생시킨 자양분이 되었다. 목민심서는 유배라는 고통스런 시련과 한 인간의 피맺힌 불굴의 의지, 그리고 제자들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헌신이 함께 어우러져 이루어진 찬란한 보석인 것이다. ......”

“...... 다산이 살아가던 19세기 초는 정치적으로 절박하게 변혁이 필요한 시기였고, 전정ㆍ환정ㆍ군정의 문란으로 대표되는 참담한 사회현실에서 백성들을 구제해야 할 과제가 집권층에게 부여되어 있었다. 그렇지만 집권 노론세력은 근대적 질서로의 변화에 대응할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고,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 줄 의지도 방법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렇다 보니 벼랑 끝으로 내몰린 농민들은 쟁기 대신 칼을 들고 항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다산은 이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비록 유배된 몸이지만 이 모순된 현실을 그냥 방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다산은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할 개혁안을 제시하고자 했다. 강진 유배 초기에 다산이 유학의 경전 연구에 몰두하였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유교 경전의 원래 모습에서 이 모순된 현실을 개혁할 사상적 원동력을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18년에 걸친 피나는 노력으로 개혁을 위한 학문적 이해와 철학적 토대가 형성되었을 즈음 이제 다산은 구체적 현실과 맞설 결심을 하였고,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개혁 방법을 제시하기 위해 탄생한 저작이 바로 해배되던 해에 쓰인 “목민심서”였던 것이다. ......”

“...... 현재의 봉곡사가 다산이 머물며 성호선생 추모 학술대회를 열었던 봉곡사는 아닐 것이다. 학술대회가 1795년에 열렸으니 당시 봉곡사는 경헌(敬軒)스님과 각준(覺俊)스님에 의해 대웅전과 요사채가 막 중건되어 있는 상태였을 것이다. 다산에 의하면 당시 봉곡사에는 거주하는 중이 30여 명이고 정결하고 전망이 좋은 빈 방도 두 개나 있었다고 하니 10여 명의 학자들과 하인들이 머물며 학술대회를 진행하기에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당시 봉곡사에 거주하는 인원과 절의 규모 등을 고려해 봤을 때 현재의 봉곡사 자리는 당시의 봉곡사 건물들을 수용하기에는 비좁아 보인다. 아마도 현재의 봉곡사 아래편 평평한 지점 어디에 봉곡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든다. 다산이 학술대회를 열었던 당시의 봉곡사도 소실되어 그 후에도 여러 차레 중수가 되었으므로 지금의 봉곡사는 그 중수 과정에서 어느 때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을 것이다. ......”

오백년 생각의 틀을 바꾸다. 氣測體義

기측체의는 조선후기 실학자인 혜강 최한기(1803∼1877)선생이 1836년에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은 혜강선생이 평생을 통해 이룩한 학문체계인 ‘기학(氣學)’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인식론에 관해 저술한 책이다. 기측체의는 기학이라는 혜강의 우주론 중에서 우주 만물은 어떻게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지, 인간은 어떻게 사물을 인식하는지, 사물의 인식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인간의 사유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의 인식론적 문제를 따로 설명하기 위해 쓰여진 책인 것이다.

저자는 혜강선생의 주체적 서양학 수용의 상징성이 있는 남대문을 기점으로 기측체의가 서술된 혜강유거를 추적하고, 기측체의가 간행된 북경 유리창을 답사하며 기측체의가 가지는 사상사적 의미를 심도있고 흥미롭게 풀어주고 있다.

“...... 기측체의(氣測體義)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혜강의 철학 체계인 ‘기학(氣學)’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 기측체의가 혜강의 기학이라는 독창적이고 종합적인 이론 체계 하에서 인식에 대한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

“......이렇게 남대문은 조선이 세계와 소통하는 주요한 관문으로 대부분의 선진문물이 남대문을 통해 유입되었다. 따라서 새롭게 수입된 서양의 과학기술을 학문 체계의 토대로 삼고 있는 혜강에게 남대문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평생을 남대문 근처에서 생활한 것은 남대문을 통해 들어온 북경의 신간서적을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유용함 때문이기도 하겠고, 문호개방과 선진문물의 수용을 주장한 혜강에게 남대문이 던져주는 소통의 상징성 때문이기도 하였을 것이다. ......”

“......혜강은 자신의 학문에 매우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혜강이 초기의 대표작이라 할 신기통과 추측록을 집필하였을 때의 학문적 성취감은 남달랐을 것이다. 혜강이 빛나는 자신의 작품을 출판의 세계적 중심지였던 유리창에서 간행하고 싶어한 것은 자연스런 인지상정이다. 혜강은 신기통과 추측록을 집필한 것을 계기로 북경을 오가는 사신 일행 중 아무개에게 부탁을 하여 유리창에 있는 인화당에서 기측체의를 출판하였던 것이다. ......”

지조와 의리의 선비정신이 예술로 승하하다, 歲寒圖

“...... 세한도는 위리안치의 유배형을 받은 추사의 유배지 제주에서 탄생한 예술작품이다. 세한도는 유배라는 현실의 고통과 정치적 좌절이 예술로 승화된 작품인 것이다. ......”

“...... 대정에 도착한 추사는 처음 송계순의 집에 거처를 정하였다. 이곳에서 2년을 보낸 추사는 송계순의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던 강도순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다. 제자들을 가르치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조금 더 큰 집이 필요했던 것이다. 추사는 강도순의 집에서 1848년 유배생활이 끝날 때까지 살았다. 추사는 현재 추사유배지로 지정된 강도순의 집에서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불후의 명작 세한도를 그렸다. ......”

“..... 세한도는 조ㆍ청 문화교류의 산물이다. 추사는 청나라의 학문과 예술 경향에 지대한 영향을 받았고 이러한 영향은 세한도를 비롯한 그의 작품 곳곳에 배여 있다. 추사의 이러한 경향성은 청나라 문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했던 스승 박제가의 영향도 있었지만 추사 그 자신이 연행에 올라 북경에서 청나라의 학문과 예술을 직접 체험하고 귀국한 후에도 청나라의 명사들과 지속적인 교류를 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세한도는 연행을 통한 문화교류의 산물이었고, 연행을 통해 예술적 완성도를 이룬 시대의 걸작이었던 것이다. ......”

목차

프롤로그

①여행문학의 기념비적 최고봉…熱河日記
ㆍ열하일기의 모티브가 된 장소, 열하(熱河)
고북구|물, 그리고 이별|쌍탑산과 경추봉|태학|필담|관제묘|피서산장|찰십륜포
ㆍ문명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관문, 산해관
천하의 장관|천하제일관|노룡두|맹강녀 사당|백이숙제 사당
ㆍ크게 한번 울 만한 터, 요동
호곡장|법고창신|초란선생|동경성|요양백탑과 광우사|태자하

②백성을 위한 진정한 학문을 꿈꾸다…牧民心書
ㆍ목민심서를 탄생시킨 유배지, 강진
애절양|발분지서|다산초당
ㆍ다산실학이 완성된 다산의 고향, 마형
다산생가|봉곡사

③오백년 생각의 틀을 바꾸다…氣測體義
ㆍ새로운 사상의 모태, 한양 남대문
책벌레|기학|남대문
ㆍ세계를 향한 창구, 유리창
실학|유리창|깐진후통

④지조와 의리의 선비정신이 예술로 승화하다…歲寒圖
ㆍ새한도를 탄생시킨 유배지, 제주
세한도 감상하기|이상적|추사유배지
ㆍ추사예술의 뿌리, 북경 법원사
제찬(題贊)|법원사

저자소개

저자 설고운은 강원도에서 태어났다. 깊은 산과 맑은 강이 있는 수묵화와 같은 풍경, 그리고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들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 그는 넓은 세상을 두루 여행하고, 삶에 대한 통찰을 얻겠다는 꿈을 키웠다. 대학을 다니게 되면서부터 회색빛 도시 속에 살게 되었지만 아직 어린 시절의 꿈을 잊지 못하고 있다. 책을 통해 대화하고, 여행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며, 글을 써서 자신을 완성하는 것, 그것이 그의 삶의 철학인 까닭이다. 이 책은 그가 지난 수년간 그의 꿈을 향해 한걸음 한걸음 걸어왔던 삶의 발자취이기도 하다.

도서소개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 고전의 향기『현장에서 고전을 만나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고전인 열하일기, 목민심서, 기측체의, 세한도의 현장을 두루 여행한 저자 설고운이 현장의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독자들이 고전들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쓴 책이다. 자칫 어렵고 딱딱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고전의 핵심내용을 현대의 언어로 쉽게 풀어 쓰고 현장감 있는 배경 설명을 곁들여 일반인들도 흥미롭게 고전에 다가갈 수 있도록 하였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본주의적 가치관 속에서 숙명처럼 정신적 고통을 안고 살아 가는 현대인들이 고전으로부터 통찰의 단서를 얻고, 따뜻한 위로를 받고, 삶의 활력소를 되찾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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