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
컬트(cult)에서 컬처(culture)로…
“제인 오스틴은 모든 작가들이 꿈꾸는 별과 같은 존재다.” _조앤 K. 롤링
지난 7월 마거릿 대처에 이어 영국 역사상 두 번째로 여성 총리에 오른 테리사 메이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단 한 권의 책’으로 《오만과 편견》을 꼽았다. ‘해리 포터’ 시리즈로 유명한 조앤 롤링 역시 자신에게 영감을 준 작가로 제인 오스틴을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출신과 결혼으로 좌우되던 18세기에 태어나, 평생을 미혼으로 살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 남성 못지않게 분별 있고 당찬 근대적 여성상을 탄생시킨 제인 오스틴. 당대에는 관습의 벽에 부딪혀 자신을 숨기고 ‘어떤 숙녀(A Lady)’라는 이름 뒤에 숨어 글을 발표해야 했던 그녀는 두 세기가 지난 오늘날 셰익스피어와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영국 작가이자 ‘제인주의자(Janeite)’라 불리는 열혈 독자들을 수없이 거느린 대중문화의 아이콘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2017년은 오스틴이 세상을 떠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에 발맞춰 영국중앙은행은 2017년부터 변경되는 10파운드 화폐의 새 모델로 오스틴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제 제인 오스틴이라는 이름은 잠깐의 유행이나 소수가 향유하는 컬트를 넘어선, 영국문학의 상징이자 문화적 자존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적인 데뷔작부터 미완성 유작에 이르기까지
제인 오스틴의 전 작품을 망라한 결정판!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
제인 오스틴 사후 200주년을 앞두고 시공사에서는 국내 최초로 ‘제인 오스틴 전집’을 출간한다. 오스틴은 국내에서도 가장 영향력 있는 고전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특히 키라 나이틀리 주연의 2005년 작 <오만과 편견>을 비롯, 오스틴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상 작품들이 꾸준히 소개되면서 국내외 어느 현역 작가 못지않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 그간 오스틴의 작품은 대표작 한두 종을 위주로 여러 출판사에서 드문드문 소개되는 데 그쳤으나, 이번에 출간되는 ‘시공 제인 오스틴 전집’은 첫 출간작인 《이성과 감성》부터 대표작 《오만과 편견》, 오스틴 사후에 발표된 《노생거 수도원》과 《설득》까지 장편소설 여섯 편을 빠짐없이 소개한다. 뿐만 아니라 10대 시절 오스틴의 반짝이는 감성을 느낄 수 있는 중편 <레이디 수전>과, 아버지의 죽음을 마주하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써 내려간 <왓슨 가족>, 죽기 직전까지 집필 의지를 꺾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소설 <샌디턴> 등 지금껏 한 번도 정식으로 소개된 적 없는 초기작과 미완성 유작들을 한 권으로 엮어 국내 초역으로 선보인다. 정확하고 감각적인 번역으로 원작의 묘미를 살리고, 독자들이 보다 편히 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 당대 영국의 관습과 표현 등은 충실한 주석을 달아 보완했다. 이에 더해 영국 문화를 알리는 가장 공신력 있는 기관인 주한영국문화원의 추천을 받은 이번 전집은 제인 오스틴을 아끼고 사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는 더없이 반가운 선물이 되어줄 것이다.
사람들이 사랑하고 행복한 결혼을 꿈꾸는 한
영원히 사랑받을 고전
젊은 시절의 몇몇 습작과 미완성 소설을 제외하면 오스틴이 남긴 작품은 장편 여섯 편에 불과하다. 1811년 출간된 첫 소설 《이성과 감성》을 비롯, 《오만과 편견》(1813), 《맨스필드 파크》(1814), 《에마》(1815) 등 살아생전 발표한 소설 네 편과, 사후에 출간된 유고작 《노생거 수도원》, 《설득》이 전부이다. 그럼에도 오스틴의 작품은 20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해석되며 더욱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1999년 영국 BBC가 ‘지난 천 년간 가장 위대한 문학가’를 묻는 설문을 실시했을 때, 오스틴은 영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걸출한 작가들을 제치고 ‘대문호’ 셰익스피어에 이어 2위에 오르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 이처럼 오스틴의 작품이 먼지 쌓인 고전에 머무르지 않고 당대의 젊은 독자들과 계속해서 호흡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삶의 본질적인 요소가 그 속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스틴의 작품이 대부분 우리와 하등 상관없어 보이는 18세기 영국의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우리는 아무런 거부감이나 어려움 없이 등장인물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몰입하고 공감하게 된다. 분별 있는 주인공이 온갖 불리한 조건들을 극복하고 사랑하는 상대와 맺어지는 것을 보면서 대리 만족을 느끼고, 작가가 허영과 자만과 독선으로 가득 찬 인물을 신랄하게 풍자하는 걸 보며 쾌감을 느끼기도 한다. 상대의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정작 결혼이라는 현실 앞에서 온갖 조건을 따지는 모습, 그로 인해 갈등하고 좌절하는 모습,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각자 처한 상황에서 행복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근본적으로 오스틴이 살았던 200년 전 영국이나 우리가 살고 있는 21세기 한국 사회나 조금도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온갖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여전히 진실한 사랑과 행복한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판타지’를 꿈꾸는 한 오스틴의 작품은 앞으로 200년이 더 흐른 후에도 변함없이 유효한 ‘현역’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