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불학’, 전통불학과 근대 불교학의 ‘실용적 통섭’과 ‘체계적 이해’
우리는 ‘진리에 눈을 뜬 이’를 ‘붓다’라 하고, 사성제와 십이연기, 즉 중도와 연기에 눈을 뜬 ‘붓다의 가르침’을 ‘불교’라 한다. 또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붓다에 대한 연구’를 ‘불학’이라 하고, 위없이 바르고 평등한 바른 깨달음을 얻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를 ‘불교학’, 즉 ‘불교연구’라고 한다. 이러한 명명과 의미의 차이 때문에 ‘불교와 불교학’ 혹은 ‘불학과 불교학’의 같고 다름 또는 연속과 불연속에 대한 질문이 제기된다. ‘불교’가 붓다의 가르침이라면, ‘불교학’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학문적 탐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불학’이 붓다에 대한 연구라면, ‘불교연구’는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인문학자 불교학자들에게 ‘불교와 불교학’ 혹은 ‘불학과 불교학’에 대한 물음은 화두와 같다. 이들은 일상 속에서 불교가 ‘무엇’이고 불교학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불학이 ‘무엇’이고 불교연구를 ‘왜’ 해야 하는지를 배우고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책 『불학과 불교학』에 담은 내용들도 한동안 저자가 이렇게 배우고 이렇게 물은 내용들이다. 각 논문들은 유기적인 연속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교학 탐색’의 과정에서 저자가 배우고 물으며, 생각하고 분변하며, 행하고자 한 것들에 대한 고민의 내용들이다.
이 책의 부제인 ‘인문학으로서 불교학 이야기’에는 전통의 불학과 근현대의 불교학의 통로 위에서 대화하고 소통하고자 하는 저자의 바람이 담겨 있다. 불학은 과거의 ‘지혜’와 현재의 ‘성찰’을 통해 미래의 ‘성숙’으로 나아가게 하는 실용적 학문(응용불학)이다. 불교학 역시 미래의 성숙을 위해 과거의 지혜를 귀담아 듣고 현재의 성찰을 거울로 삼아가는 체계적 학문(순수불학)이다. 여기서 저자는 ‘체계불학’과 ‘실용불학’을 아우르는 중도불학으로 ‘체계’와 ‘실용’을 통섭하고자 한다. ‘실용불학’과 ‘체계불학’을 각기 세우고 아우르기 위해서는 먼저 불학과 불교학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불학자와 불교학자는 서로의 배려와 대화와 소통을 넘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으로 체화될 것이다.